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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Jul 04. 2024

부모가 돼 보니 자식으로 사는 게 더 쉬웠네


24살에 독립도 스스로 결정했습니다. 대학, 군대, 복학까지 부모님과 상의하지 않았습니다. 부모님 품에 있을 때조차 조언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서른 살에 사업을 말아먹고 일자를 구할 때도 혼자였습니다. 서른셋에 결혼을 결정할 때도 일방적인 통보였습니다. 삼 형제 중 첫 결혼이라 어머니는 신경이 많이 쓰였나 봅니다. 사소한 것까지 티격태격했습니다. 어떤 결정은 어머니 뜻에 따랐고 어떤 결정은 결코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결혼을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싸웠던 것 같습니다. 지지고 볶아도 결국 원만하게 결혼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짐작건대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처럼 많은 부분 양보해 주셨기에 가능했던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이를 키우며 비슷한 상황을 겪어보니 그때 어머니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됩니다.



큰딸은 일곱 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습니다. 엄마를 닮아서인지 음을 구분하는 능력도 남달랐습니다. 원장님도 큰딸의 재능을 눈여겨봤습니다. 탁월하지는 않았지만 연습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겠다고 했습니다. 무엇보다 피아노를 즐기는 것 같았습니다.

배운 지 3년쯤 됐을 때 콩쿠르에 나갔습니다. 어느 정도 수준이 되면 실력도 검증하고 동기부여도 할 겸 의례 대회에 출전시킨다 했습니다. 큰딸도 욕심을 냈던 것 같습니다. 준비하는 동안 평소보다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콩쿠르 당일, 300석이 넘는 공연장 무대에서 심사위원과 학부모가 지켜보는 가운데 1분 남짓 연주했습니다. 큰 실수는 없었지만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했었나 봅니다. 무대에 내려와서는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아내와 저는 좋은 경험이었다고 등을 토닥여 주는 게 전부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2년 넘게 계속 다녔습니다. 그러다 한날은 이제 피아노는 그만 배우겠다고 선언을 했습니다. 그만둘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큰딸도 뚜렷한 이유 없이 단지 흥미를 잃어서 그만 배우겠답니다. 며칠 동안 설득했지만 결정을 되돌릴 수 없었습니다.



7년을 배운 피아노를 하루아침에 그만두었습니다. 이유는 석연치 않았지만 계속하길 강요할 수 없었습니다. 큰딸의 입장에서 한 번 생각해 봤습니다. 어쩌면 말은 안 했지만 그 사이 그만두고 싶었었던 때가 자주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부모의 기대를 모른척할 수 없었던 게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큰딸도 콩쿠르에서 결과가 시원찮으니 재능이 없다고 여겼을 수도 있고요. 반드시 배워야 한다고 강제하지는 않았지만 슬쩍슬쩍 기대를 내비친 게 큰딸에게는 부담이었을 수 있을 겁니다.


중학교 2학년이 되면서 다니던 미술 학원마저 그만뒀습니다. 그 후 줄곧 영어 수학 학원에 집중해 왔습니다. 예체능에는 재능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조금 더 다녀보라고 권했지만 듣지 않았습니다. 아내와 저도 큰딸 의견을 존중했습니다.



피아노 미술 학원을 그만둘 때나, 영어 수학 학원에 다니기 시작할 때나 큰딸의 의견을 따랐습니다. 다른 선택을 하길 바랐지만 내 의지대로 안 될걸 알기에 일찍 포기했습니다. 나중에 큰딸이 저를 원망하지 않기만을 바랍니다. 큰딸도 섣부른 판단이었다고 후회할지 모릅니다. 설령 부모 고집으로 미술과 피아노 학원을 계속 다녔더라도 이 또한 후회할 선택이 될 수도 있습니다. 결과는 누구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중학교 3학년인 큰딸과 아직까지 진로 문제로 크게 부딪치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도 본인이 가고 싶은 곳을 정했고 아내와 저는 따랐습니다. 자녀의 진로 결정은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닙니다. 서로의 의견 조율을 통해 보다 더 현명한 선택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굳이 의견을 주고받으며 감정이 격해질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제가 결혼할 때 어머니와 살벌하게 다퉜던 게 다 부질없는 거였다고 지금에야 생각합니다. 그걸 경험하고 나니 큰딸의 진로 문제에도 조금은 여유를 갖게 된 것 같습니다.


앞으로 두 딸의 진로 문제로 자주 부딪칠 것 같습니다. 다퉈봐야 답은 정해져 있습니다. 자식을 이길 부모 없기 때문입니다. 저도 부모이니 자식을 이기지는 못할 것입니다. 질 때 지더라도 두 딸이 조금 더 현명한 판단을 하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보다 현실적인 조언을 해줄 수 있는 부모이고 싶습니다. 일방이 아닌 쌍방향 소통으로 말이죠. 그러고 보면 부모 노릇 참 쉽지 않습니다. 자식일 때가 좋았던 것 같습니다. 이제야 철이 드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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