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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Jul 07. 2024

눈곱 끼고 떡진 머리도 글감이다


30분째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오늘처럼 유난히 집중이 되지 않는 날 있다. 이런 날이 한 번씩 오면 시간만 흘려보냈었다. 한 시간 넘게 딴짓만 하다가 제대로 된 글을 써내지 못했다. 이유를 생각해 봤다. 미련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떠오르는 글감이라고 다 글이 되지 않는다. 이 주제를 쓰면 사람들이 읽을까? 이 내용을 끝까지 쓸 수 있을까? 다 쓰고 나면 내가 얻는 건 무엇일까? 정작 써보지도 않고 이런저런 생각으로 미리 재단해 버린다. 걱정과 미련이 뒤섞이면서 결국 한 글자도 못쓴다.




그러다 방법을 찾았다. 지금처럼 망설일 때는 그 모습을 쓰는 거다. 고민해도 글이 써지지 않는다고 솔직하게 시작한다. 글이 잘 써지지 않는 모습도 글감이 된다는 말이다. 글감 앞에서 망설이는 거 나만 그렇지 않다. 누구나 다 글감이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억지로 써보려고 해도 잘 써지지 않는 날이 더 많다. 나도 똑같은 고민을 한다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거다. 솔직한 내 모습을 쓰기 시작하면 의외로 쉽게 써진다. 또 진심은 항상 통하는 법이다. 숨김없이 쓸 때 손가락도 자유로워진다.



첫 글감은 세수도 하지 않고, 모자도 쓰지 않은 채 스타벅스에 앉아 있는 나를 써보려고 했다. 주말 아침에는 6시에 일어난다. 일기와 필사를 마치면 7시다. 그 시간에 문 여는 스벅에 모자만 눌러쓰고 간다. 글 한 편 쓰는 두 시간 동안 빈자리 없이 사람으로 채워진다. 나도 그들을 신경 쓰지 않듯 그들도 이런 나를 신경 쓰지 않는다. 그래서 주말마다 세수도 머리도 감지 않고 당당하게 집 밖으로 나온다. 휴일을 시작하는 나만의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주말까지 남 눈치 보고 싶지 않다. 솔직히 예의까지는 모르겠고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다. 나에게 주어진 나를 위한 시간이니까.





나오기 전에 '10년 후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라는 문장을 필사했다. 1년짜리 계획은 세우면서 10년을 투자할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10년은 너무 멀기 때문이다. 아마 10년 전 나라면 이런 생각 이런 글 쓸 생각조차 못 했을 거다. 아니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이제까지 그저 그런 인생을 살았었다. 2018년부터 책을 읽으면서 내 인생에도 변화가 생겼다. 변화를 이어온 지 7년째다. 달리 생각하면 7년 동안 목표를 세우고 계획을 실천해 오는 중이다. 7년 동안 이 일을 해올 수 있을지 7년 전에는 장담하지 못했었다. 장담하지 못했던 그 일을 7년째 해오고 있다. 바꿔 말하면 지금부터 앞으로 10년 동안 무엇을 할 지도 정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지치지 않고 아침 일찍 벌떡 일으켜 세울 그런 일이라면 10년을 투자할 수 있지 않을까? 한 가지 목표를 정해 앞으로 10년 동안 꾸준히 해낸다면 10년 뒤 나는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아마도 10년 동안 했던 그 일에 전문가가 되어 있지 않을까? 또 근사한 결과물도 손에 쥐고 있을 것이다. 10년 뒤라고 해봐야 58살이다. 무엇을 할지 신중하게 고민해 볼 가치 있다. 




쓸 말이 없다고 시작한 글이 어느새 1천 자가 넘었다. 멍하니 생각만 하면 한 글자도 쓰지 못한다. 또 할 수 있을까 걱정만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쓸 말이 없어도 아무 단어나 끄적이다 보면 다음 문장으로 이어진다. 침대에 누워서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글 한 편 쓰는 것도 목표한 걸 이루는 것도 결국에는 몸이든 손이든 움직여야 한 줄씩 한 발씩 나아간다. 휴일이라고 해가 뜨지 않고, 주말이라고 세상이 멈추지 않는다. 주말에도 해야 할 일을 한다면 그만큼 나아진다. 다만 휴일인 만큼 남 눈치 보지 않는 자유를 누리는 건 스스로 만드는 특권이다. 내가 세수를 했는지 머리를 감고 나왔는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면 겉으로 보이는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되더라. 이런, 결국 오늘도 이렇게 글 한 편 쓰고 말았다.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눈곱 낀 얼굴과 떡진 머리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홀가분하게 이제 운동하고 씻으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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