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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Jul 08. 2024

월요병 활용법

주변이 고요할 때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를 들어보셨나요? 리듬감이 있다고 할까요? 가만히 듣고 있으니 마치 이불속으로 들어가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습니다. 출근하기 싫더라고요. 월요일이라 원래 출근하기 싫었는데 빗소리 때문에 엉덩이가 더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적 없으신가요? 출근을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마도 '월급'이 통장에 찍혀도 잔고 앞자리가 요동치지 않을 만큼 두둑하다면 모를까, 대책 없이 땡땡이치면 뒷감당 안 될 겁니다. 통장 잔고를 떠올리며 냉정을 되찾고 주섬주섬 챙겨 출근한 월요일 아침입니다.

월요일은 왜 누구에게나 힘이 들까요? 시작은 언제나 설레는 법인 데 유독 한 주의 시작인 월요일만은 설렘을 주지 않는 걸까요? 어차피 한 주를 살아야 한다면 이왕이면 즐겁게 시작할 수는 없는 걸까요? 주말 동안 편히 쉬면서 에너지 충전했다면 더 활기차게 시작해야 하지 않나요? 주말을 잘 쉬어도 월요일이 오는 게 두렵고, 휴일을 의미 있게 보내도 월요일 아침은 오지 않길 바랍니다. 왜 그런지 생각해 본 적 있으신가요?


개중에는 월요일을 기다리는 이도 있습니다. 학교 가는 게 즐겁고, 회사에서 일하는 게 신나고, 손님 맞는 게 기다려지는 사람이겠죠. 어떤 마음가짐이면 이들처럼 월요일을 맞을 수 있을까요? 인생을 통달한 이들은 말합니다. 내 일에서 의미를 발견하라고 말합니다. 의미에 가치를 둔 삶은 기꺼이 모든 걸 즐길 수 있다고 말이죠.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말입니다. 학생은 공부에서 의미를 찾고, 직장인은 직업에서 의미를 찾고, 자영업자는 서비스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일 년 내내 월요일이 싫은 건 아닐 겁니다. 살다 보면 다양한 일을 겪습니다. 원하든 원치 않든 여러 상황에 놓이게 되지요. 좋은 일만 일어나지 않습니다. 실패와 좌절도 겪고, 사소한 오해가 다툼으로 이어지고, 시기와 질투로 자신을 괴롭히기도 합니다. 힘든 순간을 지날 때는 좋았던 것도 좋아 보이지 않고, 사소한 것에도 짜증이 올라오기 마련입니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기에 외부 상황에 휘둘리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아마 월요일이 즐거운 이들에게도 이런 시련은 있기 마련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받아들이는 태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상황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결괏값이 달라지는 법입니다. 같은 크기의 시련도 마음가짐에 따라 그 크기가 달라질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 또한 지나간다고 여기고, 다른 사람은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기냐고 탓합니다. 이 둘 중 누가 더 얻는 게 많을지는 누구나 다 짐작할 것입니다.

새벽부터 SNS에는 저마다 가장 빛나는 순간을 드러내기 바쁩니다. 하나씩 보고 있으니 내 마음에도 태풍이 몰아칩니다. '나는 뭐 하고 있냐?' 여전히 그 자리를 맴돌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도 빨리 저들처럼 빛나는 순간이 지금이라고 자랑하고 싶어 집니다. 하지만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같은 일만 반복해야 합니다. 언제쯤 바라는 기회가 찾아올지 막연하게 기다리면서 말이죠. 반드시 때가 온다고 애써 나에게 최면을 걸어봅니다.


한편으로 과거의 나보다 훨씬 나아진 지금이 대견합니다. 그 사이 더 나아지려고 애쓴 탓에 그때는 없었던 것 들을 갖게 되었고, 그때는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점점 더 굳건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나를 흔드는 것들에 점차 의연해지는 중입니다. 누구에게나 장단점이 있기 마련입니다. 단점만 보면 한없이 초라해집니다. 반대로 장점에 집중하면 나도 꽤 괜찮은 사람입니다. 분명 우리는 매일매일 조금씩 나아지고 있을 것입니다.

월요일에 출근하기 싫은 것도 일종의 시련이 보내는 신호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잘 이겨내면 스스로를 단련시킬 겁니다. 시련에 단단해질수록 목표를 향해 걷는 걸음에 힘이 붙습니다. 어떤 시련도 기꺼이 헤쳐나갈 것이고요. 삶은 무수히 많은 시련의 연속이라고 했습니다. 하다못해 월요일 출근길마저 그중 하나이지요.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 시련을 대수롭지 않게 대하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시련을 극복하는 데 긍정, 부정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이왕이면 긍정이 낫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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