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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Jul 18. 2024

글 쓰게 만드는 강력한 동기, 반작용


잠잠하던 비도 내가 우산을 들고 나서면 폭우로 바뀝니다. 구름 낀 하늘이라 빈손으로 나왔더니 소나기가 쏟아집니다. 급한 대로 편의점에서 우산을 사서 나오니 다시 멀쩡합니다. 이런 경험 저만 있나요? 누구에게나 이런 경우 있었을 겁니다. 비가 나만 쫓아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이런 경우 빠지지 않는 한 마디가 있죠. "재수 더럽게 없네."


자가용을 몰고 출근하는 내내 비가 왔습니다.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40분 달려 회사 근처 주차장에 주차했습니다. 내릴까 말까 고민에 빠집니다. 우산 써도 카페에 가는 동안 옷이 젖을 게 뻔합니다. 안 가자니 해야 할 일이 눈에 아른거립니다. 가자니 젖은 옷 때문에 찝찝해할 제 모습이 선합니다. 1분 동안 고민이 이어졌습니다. 둘 중 누가 이겼을까요? 맞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걸 보면 옷이 젖을 각오로 카페에 왔습니다. 당연히 바지와 운동화, 그 안에 양말까지 홀딱 젖었네요.



눈 한 번 질끈 감고 사무실로 출근하면 옷이 젖지는 않았을 겁니다. 몸은 편했겠지요. 그런데 왜 굳이 신발까지 젖어가며 이곳에 왔을까요? 할 일 때문입니다. 아침마다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이 일을 하지 않으면 하루 동안 옷이 젖은 느낌보다 더 찝찝한 하루를 보내게 될 겁니다. 이미 여러 번 경험했기 때문에 그 느낌이 어떤지 잘 알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바지와 신발이 젖는 게 차라리 낫다고 생각할 만큼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하루를 보내는 건 조금 과장하면 지명수배로 쫓기는 기분이랄까요? 아마도 그렇게 생각했던 탓에 다행히 7년째 매일 글 한 편씩 써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빵이 주는 단맛을 끊지 못하겠습니다. 배가 고플 때면 늘 제일 먼저 빵부터 생각납니다. 크림이 가득 들어간 빵을 먹고 나면 기분도 좋아집니다. 중독이나 다름없습니다. 먹고 나면 늘 마음이 불편합니다. 자책합니다. 다음에는 반드시 안 먹겠다고 다짐하지만 다시 무너지기를 반복해 왔습니다. 의지만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압니다. 다른 방법이 없나 고민했습니다. 책에서 알려줬습니다. 반작용을 이용하라고 합니다.




담뱃갑에 의무적으로 담배로 인해 손상된 폐나 간 사진이 인쇄되어 있습니다. 담배 피우는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함입니다. 담배 피우기 전에 담배가 주는 피해를 인지하라는 의미이지요. 누군가는 그 사진 때문에 담배를 끊었을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은 게 문제이기는 합니다. 이런 효과를 뇌의 반작용을 활용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반작용은 당장 느낄 쾌락으로 인해 이후에 겪게 될 고통을 떠 올리게 하는 것입니다.  빵을 끊는 것도 같은 방법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순간의 충동으로 빵을 먹고 난 뒤 내 몸에 생길 안 좋은 변화를 생각하면 빵을 선택하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같이 비가 퍼붓고 한 겨울에 폭설이 내리면 편한 걸 찾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스스로도 타협할 것입니다. 타협한다고 비난받을 일은 더더욱 아닙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해야 할 일이 있을 때 자신을 움직일 방법이 있습니다. 앞에서 말한 '반작용'입니다.



그렇습니다. 아스팔트가 패일만큼 퍼붓는 비에도 기어코 글을 쓰러 왔습니다. 그러니 기필코 출근 전까지 글 한 편을 완성해야 합니다. 딴짓할 틈 없습니다. 손가락을 쉬어 줄 여유 없습니다. 머릿속은 슈퍼컴퓨터보다 더 빠르게 돌아가는 중입니다. 물론 그만큼 논리적이거나 치밀하지는 못합니다.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이 글을 끝내려고 애쓰는 중입니다. 그래야 비에 젖은 바지에 덜 미안하고, 물에 빠진 신발을 볼 염치가 생길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내 선택에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습니다.


비는 오다가도 그칩니다. 아침에 내린 비에 옷은 젖었어도 부지런히 글 한 편 썼습니다. 글을 쓰는 동안 비가 잠잠해지길 바라면서요. 이 글을 다 쓰고 다시 사무실에 갈 때 비가 계속 올 수 있습니다. 가는 길에 또 옷이 젖을 겁니다. 대신 마음은 한결 가볍겠지요. 주차장에 차를 댄 뒤 비를 핑계로 사무실로 출근했다면 찝찝한 채 일을 시작했겠지요. 주차장에 차를 댄 뒤 비에 옷이 젖어도 카페로 왔고 이렇게 글 한 편 마무리해서 상쾌한 기분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선택의 순간, 두 개의 선택지 중 반작용에 따라 글을 다 쓰고 났을 때 얻게 될 좋은 느낌을 따랐습니다. 덕분에 오늘도 성취감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비 때문에 재수 없는 날이 될 수도 있었지만, 해야 할 일을 해낸 덕분에 재수 좋은 날이 될 것 같습니다. 이러니 글을 쓰지 않을 이유가 없네요. 다행히도 비가 잠잠해지는 것 같습니다. 이제 출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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