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를 만드는 건 꾸준함이다. 반복, 성실, 성취 이런 단어가 나를 말해 주는 대명사였다. 특출 나게 잘하는 게 없으면 성실해야 한다고 배워왔다. 7년 전 책을 읽기 시작하면 내가 남들보다 잘하는 게 무엇이 있는지 찾았었다. 냉정하게 나를 봤지만, 가진 게 없다는 게 참담했었다. 성인이 되고부터 그때까지 뭐 했나 싶었다. 남들과 차별되는 어떤 것도 없었다. 책은 나 같은 사람도 기회가 있다고 귀띔했다. '지금부터 시작하면 된다'라고 말했다. 시작하고 계속하고 될 때까지 멈추지 않으면 반드시 기회가, 나를 알리고 알아줄 기회가 온다는 것이었다. 다만,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누구도 장담해 주지 않았다. 그 말이 얼마나 무책임한 말인 줄 아냐고 따지지도 못했다. 아니, 이미 수많은 사람이 그런 방식으로 성공했다고, 그러니 믿고 따르기만 하라는 식이었다. 다른 생각할 여유 없었다. 성공이 고팠고, 성장이 절실했었다. 배운 대로 시작했다. 오르막과 내리막, 달리다가 걷고, 걷다가 뛰고, 질러가고 돌아가며 여기까지 왔다. 7년을 한달음에 내달렸다.
7년 전 나와 지금의 나, 얼마나 달라졌을까? 제목도 기억나지 않고, 내용도 떠오르지 않는 책을 1,500권 이상 읽었다. 그때는 많이 읽기를 선택했지만, 지금은 숫자에 집착하지 않는다. 제대로 된 한 권을 꼭꼭 씹어 먹는 게 더 절실해졌다. 얇고 넓게 아는 것도 필요하지만, 깊고 좁게 이해하는 것도 중요했다. 차이를 알았지만 그때 나는 전자를 선택했고 이제까지 밀어붙였다. 결과는? 내가 나에게 만족하지 못한다. 얕은 지식이 탈로 날까 노심초사다. 반론이 치고 들어올까 안절부절이다. 제법 그럴듯하게 만들어진 가면을 쓰고 있는 것 같다. 누구나 가면을 쓰고 산다. 누구의 가면은 얼굴과 다르지 않아 쉬 벗겨지지 않는다. 나는 누군가 손으로 낚아채면 속절없이 벗겨질 그런 가면이다. 이런 차이를 만드는 건 과정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느리고 더뎌도 점 하나하나에 정성을 다해온 사람과 나처럼 느리고 더딤을 참지 못하는 사람이 만드는 결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7년 전에는 이런 가면조차 없었다. 그나마 이제까지 쉼 없이 달렸기에 지금의 '나'로 살 수 있었다. 지금의 나가 정말 나다운 건지 의문이 들었다.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과 방법대로 달려온 게 과연 잘 한 건지 의아했다. 성과가 나지 않는 건 각자의 속도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위로받았다. 이 또한 그렇다고 믿었다. 때가 되지 않았기에 아직은 터널 안이라고 나를 다독였다. 정작 그때가 언제 올진 아무도 장담해 주지 않았다. 확답을 바라지도, 확신을 줄 사람도 없다. 그들 또한 때를 알지 못했기에 무작정 내달리기만 했을 테니까. 안타까운 건 어느 누구도, 심지어 나 조차도 그만두라고 말을 꺼내지 못했다. 이제까지 '그만두기'는 선택지에 없었다. 그만두기를 고민하는 건 이제까지 성공한 모든 사례를 부정하는 꼴이었다. 부정하려면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했다. 나에게는 그럴 용기가 없었다. 신념을 저버리는 행위나 다름없었다. 만약 있지도 않은 용기를 냈다가는 이제껏 만든 모든 게 설탕이 물에 녹듯 없어져 버릴 것 같았다. 그게 가장 두려웠다.
그만두기로 했다. 정확히는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우선순위를 다시 정하기로 했다. 이 선택이 맞다는 확신은 없다. 멀리 돌아갈 수도, 틀린 길일 수도 있다. 묘수가 악수일지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스스로 그만두기를 선택했다. 믿었던 것들에 의심을 가졌다. 이제까지 해왔던 것들에 의문을 품고 나를 좀 더 냉정하게 보기로 했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무작정 반복만 하는 게 과연 맞는지? 반복해도 왜 달라지는 게 없는지? 방법이 틀린 건 아닌지? 틀렸다면 어떻게 바로잡아야 하는지? 이 일을 시작했을 때도, 멈추지 않고 내달릴 때도, 그리고 지금도 질문으로부터 시작한다. 답을 찾으려면 질문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질문을 던지려면 의문을 가져야 한다. 내가 했던 모든 것들에 의문을 갖고 다시 원점에서 시작해 보려고 한다.
그만두기는 나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다. 한숨 돌릴 시간을 갖고, 걸어온 길을 돌아볼 기회를 주고, 틀린 부분을 바로 잡게끔 선택하고, 내가 누구이고 어떤 사람이 되아야 할지 고민해 볼 수 있다. 그만두기는 나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다. 내가 믿는 것들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해 준다. 멀찍이 떨어져 둘러보면 보이지 않던 걸 볼 수도 있다. 그게 무엇이든 이전에 보지 못했던 것일 수 있다. 자신에게 기회와 자유를 주는 건 용기가 필요하다. 가던 길에서 벗어나는 게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처럼. 기회와 자유는 누구나에게 필요하다. 필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선뜻 주지 못하는 건 그 이후에 일어날 일 때문이 아닐까? 결과를 아무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남들이 다 가는 길에서 벗어나면 낙오자가 되는 기분이랄까? 그 기분을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반대로 이겨낸 사람은 자신에게 진정한 기회와 자유를 줄 수 있다. 자기 자신으로 사는 것이다.
이런 고민을 하는 이유는 하나다. 나답게 살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뜻대로만 되지 않는 게 세상일이다. 아마도 지쳤다는 신호이지 않을까 싶다. 불확실을 견디지 못해 더 좋은 대안이 없는지 기웃거리는 것일 수 있다. 이왕이면 조금 더 빨리 좀 더 분명한 결과를 바라는 조바심이 만든 감정일지 모른다. 이유야 없던 든 이런 생각이 들었다는 건 분명 변화가 필요한 시점인 건 분명하다.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선택한다면 이전과 다를 바 없는 길을 또 가게 될지 모른다. 그러고 싶지 않다. 아마 어떤 방법을 선택하든 이미 누군가는 성공했을 입증된 방식일 수 있다. 세상에 새로운 건 없다고 하니 말이다. 중요한 건 나답게 살 방법을 찾는가 이다.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사는 게 아니라 어디서나 나답게 사는 거다. 틀려도 맞아도 오롯이 내가 책임지는 삶이다. 누구의 말에 휘둘리지 않는 인생이다. 남의 뒤를 따르기보다 혼자여도 내 길을 가는 것이다. 그래야 후회도 없을 것이고 비교도 않을 테다. 나는 나답게 살기 위해 그만두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