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계발에 진심인 남편. 남편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존재라는 아내. 남편의 요구에 아무런 저항을 못하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믿으며 최선을 다해 맞춥니다. 남편은 가족을 위한다는 명분아래 더 많은 걸 요구하기에 이릅니다. 어쩌면 감시이고 어떤 면에서 구속이자 속박입니다. 아내는 지치고 힘이 들어도 내색하지 않습니다. 자칫 자신의 태도가 남편의 심기를 건드릴까 싶어 불안했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는 그런 아내의 상태를 한 마디로 정의합니다. '이미 세상에 없었을 수도 있다'라고요. 그런 아내를 남편은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입니다. 엄살이거나 더 열심히 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치부해 버립니다. 남편의 태도에 제 입이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자기 계발을 잘못 배웠구먼. 세상에 바꿀 수 없는 게 상대방이라는 걸 모르나 보다. 차라리 자기 할 일 열심히 하는 게 상대방을 바꾸는 가장 쉬운 방법인 걸 모르네."
혀를 끌끌 찼지만, 그 남편에게서 몇 년 전 제 모습이 보였습니다. 저도 자기 계발에 진심으로 미쳤던 적 있었습니다. 그때 미쳤기에 그나마 지금은 사람 구실하며 사는 중입니다. 그 당시 저도 아내에게 자기 계발을 하라고 무언의 압력을 가했습니다. 그런다고 호락호락할 아내는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아내는 그런 제 모습을 가만히 두고 봤습니다. 수개월 동안 밖으로 나돌았습니다. 집에서도 책만 읽을 뿐 가정일에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고립무원의 상황을 스스로 만들었습니다. 참다못한 아내가 먼저 이혼을 말했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나만 잘 살자고 자기 계발한 게 아니었는데 알아주지 않아서 저 또한 상처였습니다. 따져보면 제가 잘한 건 없었습니다. 정말로 가족을 위했다면 가족에게서 불만이 나와서는 안 됐습니다. 내가 무얼 하는지 설명하고 이해받고 응원해 주는 게 올바른 방법일 것입니다. 긴 시간 서로 노력한 끝에 다행히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상대방의 호의에 착각해 사랑을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사랑도 얼마든 깊고 오래 이어갑니다. 그러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 있습니다. 서로에 대해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자신을 희생하는 노력입니다. 사랑하는 사이 내가 손해 좀 보면 어떤가요. 사랑한다면 상대가 하기 싫어하는 일도 해줄 수 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자존심도 기꺼이 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내가 먼저 상대방을 위하면 상대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상호성의 원칙에 따라 준만큼, 아니 준 것 보다 더 되돌려 받을 수 있습니다. 그게 사랑하는 사이라면 당연한 게 아닐까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말처럼 쉬웠다면 이 세상 어느 부부가 이혼할까요? 생각처럼 되지 않기 때문에 전문가의 도움도 받고 스스로 더 공부하고 노력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입니다. 중요한 건 내가 먼저 노력하면 상대방도 노력한다는 점입니다. 무턱대고 상대가 달라지기만을 바라지 않는다면 말이죠.
손뼉도 어떻게 마주치냐에 따라 아름다운 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같은 수고로 소리가 난다면 이왕이면 듣기 좋은 소리가 좋지 않을까요? 사랑이 시작될 때 기분 좋은 설렘과 서로를 아꼈던 마음이면 충분히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을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