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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Sep 02. 2024

연애, 결혼, 이혼 어느 것도 만만하지 않다

연애 경험이 적을수록 상대방 행동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친분이 있거나 자주 만난 사이에서 뜻하지 않은 호의를 받게 되면 의미를 부여해 버립니다. 자기 편한 대로 말이죠. 대개는 상대방이 나에게 호감 있는 걸로 착각하는 게 대부분입니다. 그런 환상(?)에서 금방 깨어나면 별 일 아니게 지나가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짝사랑이 되거나 지나치면 집착으로 이어지기도 하지요. 한편으로 이런 사소한 관심이 계기가 되어 운명 같은 사랑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쩌면 이런 기대 때문에 상대방의 호의를 쉽게 지나치지 못하게 아닐까요. 나에게도 운명 같은 인연을 만나길 바라면서 말이죠.


순식간에 날아든 화살을 맞고 사랑을 시작하거나, 긴 시간 곁을 지키다 연인이  되기도 합니다. 전자의 경우는 간혹 착각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막상 만나보니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인 거죠. 그런 면에서 후자의 경우는 표가 나지 않게 서로에게 스며들어 어느새 떼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고 맙니다. 사랑도 그만큼 더 깊고 애절해지겠죠. 아마도 많은 사람이 인연을 만난다면 후자의 경우를 더 바랄 것 같습니다. 번개 맞듯 시작된 사랑보다는 더 안전할 테니까요.


어떤 계기로 사랑을 시작하든 영원히 변치 않는 경우는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더 애틋해지고 끈끈해지는 사랑도 존재합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이런 경우는 극히 일부라는 겁니다. 외모, 태도, 생각, 가치관, 성향, 식성까지 같은 게 없으니 부침이 존재하는 게 당연합니다. 긴 시간 원만한 관계를 이어가는 이들은 이런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시작이 어떠하든 관계를 오래 지속하는 방법은 결국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게 출발선이 되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만남과 이별을 주제로 한 예능 프로그램이 인기입니다. 그중 JTBC에서 방영 중인 <이혼 숙려 캠프>를 가끔 봅니다. 매회 출연 부부마다 사연이 구구절절합니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것처럼 문제를 파헤쳐보면 결국 두 사람의 잘못인 경우가 전부입니다. 그들도 시작은 그렇지 않았을 겁니다. 번개를 맞았든, 청국장처럼 오래 연애했든 진정한 사랑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결혼으로 이어졌을 겁니다. 얼마 안 가 서로의 단점이 보이고 간섭하고 잔소리하면서 원치 않는 균열이 생깁니다. 아마 사랑하는 방법은 열심히 배웠지만, 상처를 주지 않고 치료하는 방법은 배우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치료 없이 부딪칠수록 서로에 대한 원망만 쌓여갑니다. 결혼을 결정한 건 스스로 내린 선택이니 틀렸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니 더 포기할 수 없습니다.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상대방이 노력해 주겠지. 나는 노력하지 않으면서 상대 탓으로 모든 문제를 결론짓습니다. 그나마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부부는 극복할 의지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부부는 서로에 대한 원망만 남긴 채 부부 생활을 마무리합니다.


자기 계발에 진심인 남편. 남편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존재라는 아내. 남편의 요구에 아무런 저항을 못하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믿으며 최선을 다해 맞춥니다. 남편은 가족을 위한다는 명분아래 더 많은 걸 요구하기에 이릅니다. 어쩌면 감시이고 어떤 면에서 구속이자 속박입니다. 아내는 지치고 힘이 들어도 내색하지 않습니다. 자칫 자신의 태도가 남편의 심기를 건드릴까 싶어 불안했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는 그런 아내의 상태를 한 마디로 정의합니다. '이미 세상에 없었을 수도 있다'라고요. 그런 아내를 남편은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입니다. 엄살이거나 더 열심히 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치부해 버립니다. 남편의 태도에 제 입이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자기 계발을 잘못 배웠구먼. 세상에 바꿀 수 없는 게 상대방이라는 걸 모르나 보다. 차라리 자기 할 일 열심히 하는 게 상대방을 바꾸는 가장 쉬운 방법인 걸 모르네." 


혀를 끌끌 찼지만, 그 남편에게서 몇 년 전 제 모습이 보였습니다. 저도 자기 계발에 진심으로 미쳤던 적 있었습니다. 그때 미쳤기에 그나마 지금은 사람 구실하며 사는 중입니다. 그 당시 저도 아내에게 자기 계발을 하라고 무언의 압력을 가했습니다. 그런다고 호락호락할 아내는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아내는 그런 제 모습을 가만히 두고 봤습니다. 수개월 동안 밖으로 나돌았습니다. 집에서도 책만 읽을 뿐 가정일에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고립무원의 상황을 스스로 만들었습니다. 참다못한 아내가 먼저 이혼을 말했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나만 잘 살자고 자기 계발한 게 아니었는데 알아주지 않아서 저 또한 상처였습니다. 따져보면 제가 잘한 건 없었습니다. 정말로 가족을 위했다면 가족에게서 불만이 나와서는 안 됐습니다. 내가 무얼 하는지 설명하고 이해받고 응원해 주는 게 올바른 방법일 것입니다. 긴 시간 서로 노력한 끝에 다행히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상대방의 호의에 착각해 사랑을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사랑도 얼마든 깊고 오래 이어갑니다. 그러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 있습니다. 서로에 대해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자신을 희생하는 노력입니다. 사랑하는 사이 내가 손해 좀 보면 어떤가요. 사랑한다면 상대가 하기 싫어하는 일도 해줄 수 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자존심도 기꺼이 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내가 먼저 상대방을 위하면 상대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상호성의 원칙에 따라 준만큼, 아니 준 것 보다 더 되돌려 받을 수 있습니다. 그게 사랑하는 사이라면 당연한 게 아닐까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말처럼 쉬웠다면 이 세상 어느 부부가 이혼할까요? 생각처럼 되지 않기 때문에 전문가의 도움도 받고 스스로 더 공부하고 노력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입니다. 중요한 건 내가 먼저 노력하면 상대방도 노력한다는 점입니다. 무턱대고 상대가 달라지기만을 바라지 않는다면 말이죠. 


손뼉도 어떻게 마주치냐에 따라 아름다운 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같은 수고로 소리가 난다면 이왕이면 듣기 좋은 소리가 좋지 않을까요? 사랑이 시작될 때 기분 좋은 설렘과 서로를 아꼈던 마음이면 충분히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을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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