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하루 한 페이지 나를 돌아보는 글
6개월 째 월급을 못 받고 있었다. 사장은 파푸아뉴기니에 체류한지 1년이 되어갔다. 현지 사업이 틀어지면서 주 정부에서 우리 회사를 신뢰할 수 없게 되었다. 불신은 공사대금 미지급으로 이어졌다. 현지 직원이 백방으로 뛰어다녀도 돈 받을 가능성은 희박해져 갔다. 그 사이 현지 현장 직원은 하나 둘씩 귀국했다. 그들에게 월급은 수 천 킬로미터 가족과 떨어져 밀림 속에서 더위와 싸우며 버텼던 원동력이었다. 기름 떨어진 자동차가 움직이지 않듯 체불은 더 이상 그들을 현지에 잡아두지 못했다. 국내에 남아 있던 나는 현지에서 돌아오는 그들의 퇴직 절차를 마무리 해 주었다. 더 이상 정상적인 운영이 불가능하다 판단했고 퇴사 하겠다 의사를 전했다. 사장은 조금만 기다려 달라며 남아 있길 원했다. 곧 돈 들어 올 예정이니 그때 체불금 일체를 해결해 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몇 달을 보냈다. 1년이 된 무렵 사장쪽 움직임이 수상했다. 현지 사무실 임대료 포함 수 백 만원의 생활비로 이전과 다름없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때를 같이 해 한국 사업자 폐업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 사업자를 폐업하면 못 받은 월급을 받기 힘들어질 것 같았다. 대책이 필요했다.
나를 포함 10여 명이 모였다. 우선 노동부에 체당금 신청을 했다. 신청자 중 반은 체당금으로 체불 된 월급을 해결할 수 있었다. 나머지 반은 체불 된 금액에 반도 못 미쳤지만 그나마 받을 수 있음을 감사했다. 우리 중 가장 액수가 많았던 건 나와 내 부하 직원이었다. 우리 둘은 또 다른 대안이 필요했다. 변호사와 상담도 하고, 법률공단을 찾기도 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은 사장 명의로 된 재산 압류였다. 불행히도 국내에는 그들 명의로 된 어떤 재산도 남아있지 않았다. 국내에는 그들 가족 앞으로 된 재산만 있었고, 그것들은 압류 대상이 안 된다고 했다. 남은 건 사업장에 속한 재산뿐이었다. 현장에서 사용하기 위해 투입 된 대부분의 장비나 차량은 현지로 옮겨져 그마저도 압류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딱 하나 남아 있던 장비가 있었다. 현지에 보내기 위해 대기 중이었던 1억 원 상당의 장비였다. 우선 법원에 압류 신청을 했다. 신청이 들어가고 소유자에게 통보가 갔다. 압류 결정이 나기까지 시간이 걸렸고 그 사이 사장은 적극적으로 해결해 줄 거라 믿었다. 기대를 한 내가 바보였다.
사장은 본심을 드러냈다. 오히려 우리 둘을 천하에 배은망덕한 놈이라 표현했다. 기다리면 다 해결해 줄 건데 그렇게 까지 할 줄은 몰랐다며 배신감이란 단어를 꺼냈다. 배신이란 단어를 사장 입에 올려서는 안 되었다. 배신감은 1년을 믿고 기다렸던 내가 꺼내야 될 단어였다. 사장은 무조건 미안하다고 하는 게 순서였다. 압류하기 전 장비를 팔아서 마련해 주겠다고 말이라도 하는 게 순서였다. 우리에게 정말 미안해한다면 장비를 다시 사는 한이 있더라도 그렇게 하는 게 순리라 생각했다. 기대할 사람에게 기대 했어야 했다. 사장의 행태는 한 술 더 떴다. 장비에 압류 결정이 나기 전이라 언제든 옮길 수 있었다. 그들이 손쓰기 전 다행히 보관하고 있던 업체의 도움으로 그들보다 먼저 움직일 수 있었다. 하지만 큰 대가를 치러야 했다. 압류 결정이 나기 전까지 소유자는 사장이다. 사장의 동의 없이 무단으로 옮길 경우 절도죄에 해당된다. 단, 사장이 신고하지 않으면 아무 문제없다. 또 한 번 뒤통수를 맞게 된다.
간발의 차이로 우리가 마련해 놓은 장소로 옮길 수 있었다. 며칠 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경찰서였다. 사장은 우리를 절도범으로 신고했다. 체불임금으로 인한 절박한 사정은 이유가 되지 못했다. 신고가 들어간 이상 죄는 성립된다고 했다. 수사를 담당한 형사도 우리 사정이 딱하긴 하지만 합의와는 상관없이 처벌을 면하긴 어렵다고 했다. 그리고 옮겨 놓은 장비는 무조건 제자리로 되돌려 놓아야 했다. 원래 있던 곳에 옮겨 놓고 나니 압류 결정이 났다. 쓰레기 보다 못한 사장 덕분에 몸과 마음이 너덕너덕해졌다.
압류 결정이 된 장비는 해상 운송 업무를 담당했던 거래처 창고에 보관되어 있었다. 감정가는 8천만 원 이었다. 첫 경매기일에 낙찰이 되는 게 최상의 시나리오였다. 기대는 반반이었다. 그 장비는 국내에선 활용도가 떨어졌고, 가성비 대비 고가였다. 그래도 기대했다. 그동안 몸 고생 마음고생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길 바랐다. 첫 기일 다니던 회사에 휴가를 내고 구미로 향했다. 당사자는 필히 참석해야 했다. 4시간을 달려 도착하니 장비 주변으로 여러 명이 보였다. 희망이 보였다. 인사를 나누고 명함을 받았다. 실 구매자가 아닌 중계업을 하는 분들이었다. 그들은 나 같은 사람에게 실 구매자를 찾아 연결해 주고 일정수수료를 받는 일을 한다고 소개했다. 그 자리에 있던 서로는 안면이 있어보였다. 그들은 이름이 생소한 장비가 경매 나오니 궁금해서 찾아왔다고 했다. 김샜다. 법원 집행관이 왔다. 신분 확인 절차를 거친 후 사람들을 불러 모은 후 경매 집행을 알렸다.
“본 장비에 대한 입찰의사 있으신 분 손 들어주세요.”
누구 한 사람은 손을 들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다. 수 초간의 적막이 흘렀다.
“입찰자 없는 걸로 알고 유찰시킵니다. 다음 경매 기일은 별도 고지하겠습니다. 다음 경매 시 금번 금액에서 30% 감액 후 입찰 진행하겠습니다.”
‘30%’ 다리가 풀렸다. 기대도 절반이 날아갔다. 한 번은 감수하기로 했으니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니 포기하긴 일렀다. 다행인건 이날 참석한 중계업자에게도 기대해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 돌아오는 내내 감정이 널뛰었다. 이런 상황 속에 있는 내가 한심했다. 모든 일의 시작에 인 사장이 죽일 만큼 미웠다. 경매 결과에 조바심이 났다. 장비를 필요로 하는 누군가가 없다는 게 원망스러웠다. 나는 경매가 진행되는 내내 이런 감정들에 휘둘렸다.
다시 몇 주가 흘렀다. 그동안 중계업자에게선 아무 연락도 없었고, 두 번째 기일이 되었다. 당시 다니던 회사는 입사 한 지 1년 도 안 된 때라 또 휴가 내는 게 눈치 보였다. 핑계 댈게 없었다. 임원 분께 사정 설명을 했다. 다행이 이해해 주셔서 그 뒤로 이어진 기일도 가벼운 마음으로 참석할 수 있었다. 그렇게 다시 구미로 향했다. 오늘은 임자가 나타 날껄로 믿었다. 도착하니 보관 업체 직원 몇 분만 보일 뿐 구매자처럼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곧 도착한 집행관은 분위기 파악이 빨랐다. 간단히 신원 확인 후 곧바로 유찰을 알렸다. 다시 경매가의 30%가 한 숨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집행관은 앞으로 남은 절차를 빨리 진행하길 원했다.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기간이 짧아진다면 오고 가는 시간과 비용 부담이 커진다. 집행관에게 사정 설명을 하니 다음 번 부터는 보관 업체 중 한 분이 대리 참석하는 걸로 양보해 주었다. 처음 기대는 이미 잊은 지 오래다. 최악의 경우 십 원 한 푼 손에 못 쥐고 경비만 축내고 끝날까 두려웠다.
이후 두 번의 경매가 진행됐다. 기대를 내려놓은 그때 보관 업체 직원분의 연락을 받았다.
“임자가 나섰습니다. 그동안 마음고생 많으셨습니다.”
죽으란 법은 없는가 보다. 부대비용을 제외하고 손에 쥔 게 팔백 만원 정도였다. 기대에 못 미쳤지만 그거라도 받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간의 노력과 못 받은 임금을 해결하기엔 턱없이 부족했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한편으로 사장의 범죄자 취급에 대한 우리가 할 수 있는 복수라 생각하고 서로를 위로했다. 1억 원에 구매한 장비가 여러 차례 유찰 후 이천 만원도 안 되는 금액에 팔렸다. 사장 입장에선 땅을 칠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정당한 절차를 통해 권리를 행사했다. 이로써 우리를 범죄자 취급한 사장에게 나름의 복수라 생각하고 서로를 위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