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힘든 순간이 찾아올 때 나를 믿어주는 한 사람만 있어도 버틸 수 있습니다. 절망적인 순간 나에게 손을 내밀어 준 그가 있어서 다시 시작할 기회를 갖게 되지요. 모든 걸 잃고 혼자라고 느낀 그때 나를 기억해 준 존재 때문에 다시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아무리 최악의 상황에서도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대상이 있다면 세상은 살아갈만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존재가 있으신가요?
20대 마지막 날 실업자가 되었습니다. 4년 반을 믿고 따랐던 대표가 하필 12월 31일에 야반도주를 했습니다. 해가 넘어간 1월 1일부터 출근할 곳이 사라졌습니다. 무엇부터 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대학 졸업장도 없었고 전공과 다른 일을 해왔던 터라 이력서를 어떻게 쓸지 막연했습니다. 그렇다고 의지가 강하지도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에 왜 나에게 생겼는지 탓만 하며 지냈습니다.
그러다 아무 생각 없이 대학 동기에게 전화했습니다. 이런저런 대화를 이어가다가 실직자가 됐다고 이실직고했습니다. 가만히 듣던 친구가 일자리를 알아봐 주겠다며 제안했습니다. 형부가 다니는 회사인데 현장사무실에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찬밥 더운밥 가릴 게 아니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다음 날 면접 약속 잡았다며 친구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아무 조건 없이 도움을 준 친구 덕분에 그다음 주부터 출근했습니다. 10년 우정이 저에게 동아줄이었습니다. 친구의 도움으로 시작한 일을 20년째 해오고 있습니다. 대학 전공과도 다른 일을 하나씩 배워가며 이제까지 버텨왔습니다. 그 친구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마도 먼 길을 돌아가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때 도움받지 않았다면 지금의 이런 호사를 누리지 못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죠.
저는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입니다. 거절을 못 한다는 건 반대로 상대방을 쉽게 믿는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제까지 여러 종류의 보험을 들었습니다. 무턱대고 걸려온 전화 상담원의 말에 홀려 가입한 경우도 여럿입니다. 그보다 보험 설계사 친구에게 가입한 게 더 많았습니다. 그 친구와 함께한 시간이 거절을 못 하게 했고, 믿음을 갖게 했었습니다. 중요한 건 그렇게 가입했던 보험은 모조리 해지했다는 거죠.
보험 계약도 친구와의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사는 게 내 마음처럼 되지 않을 때가 더러 있었습니다. 먹고살기 빠듯해지니 보험부터 해지했습니다. 가입도 내 의지도 해지도 내 마음이기는 하지만 친구와 관계 때문에 한편으로 미안했습니다. 그 친구는 나 하나 해지한다고 심각한 타격을 입는 건 아닐 겁니다. 그렇다고 한들 나 좋자고 약속을 깨는 게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그 친구에게 직접 들은 적은 없었지만, 나 때문에 곤란한 상황을 맞았을지 모를 일입니다. 힘든 상황에 내가 더 힘들게 했었을 수도 있고요. 정말 중요한 순간에 도움이 되지 못했을 수도 있을 터였습니다. 짐작이기는 하지만 내가 먼저 약속을 어겼기 때문에 늘 마음 한곳이 불편했던 게 사실입니다. 어떤 이유로든 신뢰가 깨진 관계는 믿음이 생기기 어려울 테니까요.
50년 가까이 살아보니 몸으로 체득한 인생의 진리가 있습니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는 겁니다. 내가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누군가를 도울 수도 있는 게 인생입니다. 상대방의 도움으로 인해 내가 새로운 인생을 살 수도 있습니다. 나의 선의로 인해 상대방은 또 다른 희망을 품을 수도 있지요. 그렇다고 물질적인 도움만이 최선은 아닐 것입니다. 진심을 담은 위로의 말 한마디, 기꺼이 내어 준 곁이면 충분합니다.
사회생활을 잘 못하는 편입니다. 주변에 사람이 많지 않지요. 짐작건대 나에게 곁을 내어줄 친구 두 세명은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아니면 인생 헛살았겠죠. 대신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믿어줄 유일한 존재는 갖게 되었습니다. 이제까지 읽은 책과 앞으로 읽을 책입니다. 책은 힘들었던 순간에도, 절망에 빠진 시기에도 제 곁을 지켰습니다. 저에게 꼭 필요한 해답을 찾게 이끌었습니다. 그때 찾은 답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지요.
책도 결국 사람이 썼습니다. 저와 비슷한 경험을 했던 이도 있었고,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최악의 상황을 이겨낸 이도 있었습니다. 그들의 말 한마디 지혜 하나가 저를 이겨내게 했습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바로 책입니다. 내가 먼저 선택한다면 말이죠. 만약 지금 더 이상 갈 곳이 없을 만큼 사는 게 막막하다면 책에 의지해 보는 건 어떨까요? 아무 조건 없이 자신을 믿어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