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도 때리지 마라"라는 말은 어떤 폭력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8,90년대 학교에서는 선생님의 체벌이 당연했습니다. 잘못한 우리도 몽둥이로 맞는 걸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그 당시 부모님은 선생님의 그림자도 밟아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니 숙제를 해가지 않거나 준비물을 챙겨가지 않았을 때 혼나는 건 당연했고, 여럿이 줄을 서 매를 기다리는 풍경도 익숙했었습니다. 문제는 먼저 맞는 친구를 보며 내 순서를 기다릴 때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불안했었습니다.
그때만큼은 내 순서가 오지 않길 바랐고, 내 앞에서 매질이 멈추길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랐습니다. 불행히도 원하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잔뜩 겁을 먹은 체 매질을 당하면 느낌적으로 고통도 더 했던 것 같습니다. 차라리 제일 먼저 맞으면 선생님의 넘치는 힘 때문에 아픔은 커도 두려움은 덜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맞고 나면 마음은 홀가분했습니다. 그러고는 매질당하는 친구들을 여유롭게 지켜볼 수 있었죠. 또 기다리는 이들에게 고통의 크기를 애써 설명해 주는 친절도 베풀 수 있었습니다.
잘한 일로 상을 받지 않는 이상 순서를 기다리는 건 그리 유쾌한 기분은 아닙니다. 진료 순서, 학교에서 과제 발표, 회사에서 프로젝트 프레젠테이션 등 차례를 기다리는 건 때로는 피를 말리기도 합니다. 이때도 먼저 매 맞는 심정으로 먼저 해치우면 그나마 홀가분해집니다. 먼저 할 용기 내지 못한 탓에 굳이 경험하지 않아도 되는 불안을 느끼게 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결과를 떠나 준비한 만큼 먼저 해치우는 게 오히려 인생을 그나마 수월하게 사는 방법 중 하나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일의 경중을 떠나서 해야 할 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건 밥 먹고 이빨 사이에 낀 고기처럼 내내 신경 쓰이기 마련입니다. 양치하든 치실을 하든 이빨에 낀 고기는 빨리 빼면 뺄수록 후련해지는 법입니다. 그래야 이빨을 당당하게 드러낼 수도 있죠. 빨리 해결하지 못하면 내내 이빨을 드러내 웃지도 못하고 말할 때마다 신경 쓰일 것입니다. 이처럼 인생을 살다 보면 고기가 이빨에 끼는 경우가 더러 생기기 마련입니다. 미리 해치우지 못한 일로 인해 다음 일이 계속해서 지장 받을 때가 있습니다. 불안을 달고 사는 꼴이죠.
직장인으로 20년 살아보니 직장일만 열심히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압니다. 승진을 위해 자기 계발은 필수이지요. 더 좋은 조건으로 자리를 옮기는 데도 오랜 준비가 필요하고요. 로또 맞듯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게 없었습니다. 매일 정성을 들이는 만큼 실력이 쌓이고 직급도 오르고 연봉도 많이 받는 게 순리이죠. 그러다 보니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 플러스 자신에게 투자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불행히도 출퇴근 전 시간으로 한정된 게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이 시간을 얼마나 만드냐에 따라 결과도 달라집니다.
십수 년 동안 아홉 번 이직하면서 다양한 스펙에 도전했었습니다. 결론은 이력서에 제대로 된 한 줄을 넣지 못했습니다. 원인을 분석해 봤습니다. 의외로 단순했습니다. 먼저 매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선순위가 항상 직장 다음이었습니다. 퇴근하고 하려니 계획한 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퇴근할 때쯤이면 몸도 정신도 피곤하고, 수시로 생기는 술자리에 잦은 야근이 방해했었습니다. 그때마다 상황 탓만 하며 번번이 실패를 반복했었죠. 바꿔보려고 노력하지 않으니 결과는 늘 같았습니다. 같은 결과를 손에 넣으니 늘 불안했었죠.
마흔 넘어서도 이어진 습관을 고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직장에 다니면서 고치는 건 더더욱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그래도 바뀌지 않으면 인생이 달라질 수 없다니 시도했습니다. 나에게 중요한 것들에 우선순위를 달리했습니다. 직장 일보다 중요한 책 읽고 글쓰기 위해 아침 시간을 활용하기 시작했죠. 잠을 줄이는 무리수가 필요했지만, 원하는 인생을 위해서 어느 정도 희생을 감수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당장 직장을 그만둘 게 아니니 어떤 식으로든 방법을 찾아야 했죠. 다행히 성과를 낸 덕분에 희생도 빛을 발했습니다.
8년째 매일 출근 전 3시간씩 읽고 쓰는 시간을 만들었습니다. 읽고 쓰는 게 직장보다 우선순위라고 정했고, 먼저 매 맞는 심정으로 새벽에 일어납니다. 무엇보다 내가 좋아서 시작했고 좋은 걸 하니 피곤도 덜 했습니다. 막무가내로 줄인 수면 시간도 요령이 생기면서 점차 일어나는 시간을 조금씩 늘리는 중입니다. 스스로 정한 해야 할 일을 먼저 해내면서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러니 직장에서 보내는 하루가 홀가분합니다. 일에도 더 집중할 수 있고요. 퇴근 후 시간은 덤입니다. 하고 싶은 일에 더 집중하고 불안도 줄이는 효과가 있죠.
우선순위는 스스로 정하기 나름입니다. 각자의 생활 패턴에 맞추는 게 먼저입니다. 저녁형 인간이 억지로 새벽에 일어나는 건 오히려 역효과만 납니다. 중요한 건 자신이 정한 원칙을 지키지 못했을 때 느낄 불안입니다. 수시로 변하는 주변 상황 때문에 할 일을 하지 못했다면 불안은 커지기 마련입니다. 의심도 들겠죠. 그러다 과거의 저처럼 합리화하며 포기하고 말 겁니다. 다음에 다시 시작하면 된다면서 말이죠. 그러한 악순환을 십여 년 넘게 했었습니다. 제가 내린 결론은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지 못하면 반복된다였습니다.
다행히 저는 아침 시간이 맞았습니다. 일을 시작하기 전 해야 할 일을 해치워버리죠. 할 일을 하지 않고 찜찜한 기분으로 하루를 보내는 게 아니니 태도나 감정도 이전보다 훨씬 나아졌습니다. 물론 제 생각이기는 하지만요. 무엇보다 꾸준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게 우선순위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성과를 낸 덕분에 막연했던 작가라는 직업에 어느 정도 자신감도 붙었습니다. 꾸준함이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했습니다. 매일 우선해서 하고 싶은 일을 해낸다면 분명 실력도 더 좋아질 거로 믿습니다. 먼저 맞는 매 덕분에 맷집도 좋아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