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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부터 변해야 나답게 산다

by 김형준


인터넷에 떠도는 명언 중 사람 사이 둥글둥글 처세하는 게 좋다고 말하는 걸 보지 못했습니다. 둥글둥글은 나보다 상대방에게 맞추는 걸 의미합니다. 한 마디로 간 쓸개 빼주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 쉽게 볼 수 있죠. 바로 직장인입니다. 직급이 낮을수록 이런 경향이 더 강합니다. 일종의 사회생활을 위해 필요한 태도라고 배우죠. 동료는 물론 상사의 비위에 맞춰야 고가도 잘 받고 승진도 빠를 거라고 믿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사람은 대개 이용만 당하고 맙니다. 둥글둥글하니 이 발 저 발 차이다가 결국 호구 소리 듣고 나다워지는 것과 거리가 멀어지죠.


직장 생활 20년 차입니다. 그동안 아홉 군데 회사를 다녔습니다. 네댓 명인 곳부터 수백 명이 근무하는 곳까지 다양하게 경험했습니다. 일 머리가 좋아 똘똘하게 일하지 못했지만, 시키는 일은 야무지게 했습니다. 물론 실수도 많았습니다. 성격상 앞에 나서거나 적극적으로 일을 차고 나가지 못합니다. 주변에서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러니 이 사람 저 사람 엮여 이 일 저 일 떠안을 때가 많았죠. 내 일이 아닌데도 부탁하면 거절하지 못했습니다. 일은 많았지만 사람 좋다는 소리는 잃지 않았습니다. 그런 덕분인지 누구 하나 적을 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더러는 10여 년 이상 관계를 유지하는 이들도 있죠. 어쩌다 연락해도 불편하지 않는 그런 관계가 더 많았습니다. 둥글둥글했던 덕분이었죠.


그때는 그게 처세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할 수 있으면 기꺼이 돕는 게 상대와 회사를 위한 거라 믿었죠. 그런 생각과 태도가 점점 굳어진 것 같습니다. 직급이 올라가도 위아래 사람이 시키고 부탁하는 일도 마다하지 못하게 됐죠. 스스로 그렇게 만들어 왔던 것 같습니다. 상대방의 어떤 부탁에도 나는 그걸 들어줘야 하는 사람이라는 '착한 사람 콤플렉스' 같은 겁니다. 한편으로 자기 합리화입니다. 내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있다는 게 곧 나의 사회적 능력이라 생각했죠. 누구처럼 앞장서 멋들어지게 일하지는 못해도 내 나름대로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고 나에게 합리화한 거죠.





내가 나를 정의하니 행동과 생각도 그렇게 변했습니다. 부당한 지시에도 입을 닫았고, 내 일도 다 못하면서 동료 부탁부터 들어주니 말입니다. 누구는 미안해하고 고마워했을 수 있지만, 누구는 당연하게 여겼을 수 있습니다. 그들이 보는 나는 싫어도 싫은 소리 못하는 그런 사람인 거죠. 호의를 권리로 받아들인 달까요? 그들을 탓할 게 아닙니다. 내가 그렇게 행동했으니 제 잘못인 거죠. 어쩌면 그런 과정 때문에 이 일이 싫어지고 재미없고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대체적으로 저와 반대로 행동하는 직장인이 실력 있고 능력을 인정받는 것 같습니다. 자기 관리를 잘한다고 할 수 있죠. 맺고 끊는 게 분명하니 시간 관리도 잘하고 자기 계발도 하면서 자기 일을 더 잘합니다. 회사는 그런 사람을 더 필요로 하죠. 동료애는 조금 부족해도 성과는 분명히 낼 테니까요. 동료보다 탁월해 보여야 능력을 인정받고 승진도 빠르고 성공한 직장인이 되는 겁니다. 한편으로 그런 태도가 경쟁에서 살아남는 처세일 수 있습니다. 둥글둥글한 저보다는 훨씬 능력 있어 보이겠죠.


보통 한 회사에는 저 같은 사람과 저와 반대되는 직장인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서로 다른 두 성격이 가끔 충돌하는 일도 있죠. 승부욕이 앞서 상대를 배려할 줄 모르는 동료와 저 같은 사람은 상극이죠. 저는 대개 먼저 숙이는 편이었습니다. 적을 만들 필요 없고 좋은 게 좋은 거라 생각했죠. 부딪쳐봐야 남는 것도 없고 상황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니까요. 둘 중 한 사람이 져야 끝난다면 제가 그 역할을 했죠. 속으로 끙끙 앓아도 말이죠. 상대는 그걸 알리 없지만요.


나흘 사이 동료 두 명과 심하게 싸웠습니다.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상대방의 태도가 문제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되겠다고 마음먹었죠. 상대도 저에게 못마땅한 게 있었을 겁니다. 그러니 목소리가 커졌고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다 토해냈죠. 옆에서 봐도 분위기 살벌할 만큼요.


제가 그동안 만만하게 보였던 걸까요? 아니면 저에 대해 잘 몰라서 그랬을까요? 당연히 지켜야 할 선이 있는 법인데 그걸 넘으니 저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거죠. 이제까지 제가 그어놓은 선을 넘는 사람을 가만히 뒀습니다. 그도 회사를 위해 잘하려고 노력하는 거라 여겼습니다. 한배를 탔고 회사가 잘 돼야 서로 좋은 거니까요. 하지만 이제까지 두고 본 결과가 저를 막대해도 되는 사람으로 만든 거였습니다. 중요한 건 상대방이 나를 다르게 대해주길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거죠. 사람은 절대 바뀌지 않으니까요. 다른 결과를 바란다면 저부터 달라져야 했습니다. 똑같은 상황에서 다른 선택을 해야 했죠.


직장뿐 아니라 사회생활에 필요한 처세가 있기 마련입니다. 처세에 따라 그 사람이 평가됩니다. 딱 부러지게 행동하는 사람이라면 일과 관계에서도 노선이 분명합니다. 저처럼 민숭민숭한 사람은 일도 관계도 흐리멍덩했던 거고요. 그러니 주변 사람도 저를 쉽게(?) 대했던 것 같습니다. 언제까지 그런 태도로 살 수 없을 겁니다. 분명 태도에 변화가 필요합니다. 앞에서 말했듯 상대방은 절대 달라지지 않습니다. 바꿀 수 있는 건 오직 자신 뿐입니다. 생각과 태도를 바꿔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나부터 달라지면 상대방도 나를 다르게 대합니다. 유연하면 부러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계속 잔 바람에도 흔들리고 말겠죠. 때로는 버티고 설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때로는 바른 소리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게 나만의 색을 갖고 나로 사는 방법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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