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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그 녀석에게 휘둘리지 않겠다

by 김형준

"당했네, 또 당했어."

그의 목표는 명확했다. 자신을 둘러싼 수십 명 중 단 한 명이라도 자기 말을 믿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는 언제나 적어도 한 사람은 자신의 말을 믿게 했다. 믿음에 옳고 그름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하는 말이 그 순간에는 진리요 계시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의 말은 믿은 대부분은 시간이 지나 그 말이 틀렸고 논리에 맞지 않고 심지어 자신이 속았다는 걸 그제야 알아차렸다. 일부는 다시는 속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그와 마주했다. 하지만 그가 하는 말에 여지없이 무너졌다. 일말의 의심도 없이.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은 달라지지 않았다. 언제나 그가 하는 말에 속았고, 속았다는 걸 뒤늦게 알아도 다음번에도 똑같이 당했다. 속수무책이었다. 다행히 시간이 많이 지나 누군가는 그의 말에 속지 않는 방법을 알게 된다. 방법을 알았지만 완벽하지 않았다. 또다시 허점을 파고드는 그의 말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이런 싸움은 반복됐다. 누가 이기나 갈 때까지 가보자는 식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싸움이었다. 이 싸움에서 누가 이겼을까? 불행히도 그는 아직까지 그들을 속이고 있다. 그들은 여전히 그에게 속고 있다.


앞에 이야기에 '그'는 누구일까? 누구길래 모든 사람을 속일 만큼 대단한 능력을 가졌을까요? 또 절대로 지지 않는 논리로 사람들을 속일까요? 여러 번 상대했으면 한 번은 이길 법도 한데 말이죠. 왜 번번이 지기만 할까요? 과학이 발달하면서 정복하지 못하는 게 점점 줄어드는 요즘입니다. 인공지능 개발과 발전으로 가속도가 붙었죠. 인간의 뇌와 인공지능을 더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지 않을까요? 안타깝지만 아직까지 그를 이겼다는 소식은 전해지지 않습니다. 그는 바로 우리 '마음'입니다.


직장 생활 20년째입니다. 그동안 아홉 번 이직을 경험했습니다. 직장에서 직장으로 옮겨 다니며 파리 목숨을 이어왔습니다. 직장을 잃는 건 낙오자나 다름없습니다. 월급을 벌어오지 못하면 무능력하다고 손가락질받습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낙오자가 되지 않으려 안간힘 썼습니다. 싫은 소리도 받아내고, 하기 싫은 일도 웃으며 하고, 찬밥 더운밥 가리지 않고 주는 대로 먹는 게 직장인의 숙명입니다.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싶었습니다. 용기를 내려니 두렵습니다. 이마저도 잃을까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래도 한 번은 용기 내야 할 때가 오는 건 변하지 않습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이왕이면 빨리 벗어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용기 내지 못하고, 망설이고, 포기하고, 주저앉았던 건 다 내 마음이 만든 이야기 때문이었습니다.


상사에게 들은 잔소리를 술로 풀었습니다. 동료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폭식으로 이겨냈습니다. 더위를 식히려 물 대신 맥주 한 캔 들이켰습니다. 추위에 몸을 녹이려 따뜻한 캐러멜 마키아토를 마셨습니다. 술로 음식으로 달달한 걸로 위로를 받는다고 여겼습니다. 일상은 반복입니다. 직장에 다니는 동안 상사의 잔소리는 계속되고, 스트레스는 끊이지 않고 사계절은 알아서 돌아옵니다. 그러니 그럴 때마다 먹는 걸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그래야 버틸 수 있다고, 그거라도 해야 살아낼 수 있다고 마음이 말했습니다.


호기심에 덜컥 신청했습니다. 한 번도 뛰어본 적 없는 거리였습니다. 경기 당일 몸 상태도 최상은 아니었습니다.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출발선에 섰습니다. 믿는 구석은 딱히 없었지만, 그렇다고 완주하지 못한다는 생각은 안 했습니다. 평소 연습한 대로 페이스를 조절하며 내 속도대로 달렸습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반복하며 달린 거리가 늘었습니다. 반환점을 돌 때까지 해볼 만했습니다. 달린 거리보다 달려야 할 거리가 줄었습니다. 조금만 더 힘을 내면 완주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몸 이곳저곳에서 신호를 보냅니다. 조금만 버티자고 다독였습니다. 결국 난생처음 21.0975킬로미터를 완주했습니다. 할 수 있다고 나를 믿어준 마음 덕분이었습니다.


마음은 시시때때로 우리에게 말을 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지금 용기 내면 가족 생계는 어떻게 책임질 건데? 당장 월급만큼 벌 수 있어? 월급이 안 들어오면 아이들 학원도 못 가, 또 외식이나 한 번 할 수 있어? 그러지 말고 그냥 살던 대로 살아, 적어도 월급으로 적당히 살 수 있잖아." 마음이 하는 말에 매번 주저앉았습니다. 속주머니에 사직서를 꺼내지 못했습니다. 마음이 하는 말에 매번 타협하고 말았습니다.


"그래그래 알겠어, 오늘만 마시고 내일부터는 끊는 거야. 오늘은 마실만한 일이 있었잖아. 너도 힘드니까 술이든 음식 로든 위로를 받아야지. 이런 말 있잖아,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라고.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은 법이야. 그러니까 오늘은 허리띠 풀고 마음껏 먹어. 너는 먹을 자격 충분해." 숙취에 정신 못 차리고, 야식에 밤잠을 설쳐도 먹어야 버틸 수 있다고 합리화했습니다. 비만에 콜레스테롤에 염증이 생겨도 말이죠. 그렇게 번번이 마음이 하는 말에 놀아났습니다.


가끔은 마음이 옳은 소리도 합니다. "이제 3킬로미터밖에 남지 않았어. 이제까지 잘 달렸어. 달린 게 아까워서라도 여기서 포기하면 안 되지. 이보다 더한 고통도 이겨냈잖아. 군대에서도, 사업을 말아먹었을 때도, 개인회생도 버텼잖아. 이까짓 몸이 힘든 걸 그때의 고통에 비하겠어. 조금만 더 힘내보자. 결승선을 통과하는 네 모습을 상상해 봐. 또 완주한 소식을 가족에게 전하는 모습도. 결승선이 보인다 힘내자고." 육체가 고통스러울 때는 물론 정신이 힘들었던 순간에도 마음은 말을 걸었습니다. 버틸 수 있다고. 이겨낼 수 있다고 말이죠. 그 덕분에 지금 이곳에서 이렇게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은 어떤 이야기든 만들 수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만드는 건 오롯이 자기입니다. 내가 어떤 생각 태도 기준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누구나 더 나은 이야기를 바랍니다. 부정보다 긍정을 바라죠. 마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이야기를 만들어 냅니다. 여러분은 어떤 이야기를 듣길 원하세요? 원하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내가 만든 이야기는 내가 주인공입니다. 조연보다 주연으로 사는 삶, 마음먹기 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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