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달한 팬케익 시럽보다 더 달달했던 딸과의 데이트

[가족] 하루 한 페이지 나를 돌아보는 글

by 김형준

몇 주간의 우울한 기분을 씻겨줄 만큼 맑은 하늘이었습니다.

맑은 물이 푸른빛을 내듯 하늘빛도 눈이 부실만큼 푸르렀습니다.

큰 딸과 아침 산책을 나왔던 기억이 가물 할 정도였습니다.

지난 밤 함께 가고 싶다면 알람까지 맞추며 잠들었던 큰 딸은 제 시간에 일어나 준비를 합니다.

몇 개월 째 집에 갇혀 있는 생활을 이어오던 아이에게 오랜만에 산책은 약간의 흥분감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마침 날씨도 화창해 기분을 끌어올리기에 더 없이 좋은 아침이었습니다.

단 둘이 산책하기에 이보다 좋을 순 없었습니다.

아이가 정한 목적지는 호수공원 분수대였습니다.

왕복해도 30분이면 충분한 거리입니다.

오랜만에 본 맑은 하늘을 느끼기엔 충분치 않아보였습니다.

좀 더 걸을 수 있는 핑계가 필요했다. 일단 걷기 시작했습니다.

아파트 단지를 막 빠져나올 때 아이가 한 마디 내뱉습니다.

“아빠 배고파.”

“그래? 어제 저녁을 일찍 먹어서 그런가?”

“그런 것도 있고 밥 먹을 때 고추를 먹었는데 그게 너무 매워서 허겁지겁 먹었더니 더 그런가봐.”

“어쩌지 근처에 문 연 곳도 없을 텐데. 일단 공원까지 가보자.”

머릿속이 바빠집니다. 8시도 안된 때라 문 연 상점이 없는 게 당연했습니다.

아이와 함께 먹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 떠올랐습니다.

라페스타에 24시간 맥도날드였습니다. 가는 데만 30분 정도 걸어야 합니다. 조심스레 물었습니다.

“30분 정도 가면 맥도날드 나오는 데 거기서 아침 먹을까?”

“맥도날드? 좋아좋아!”

생각대로 따라주니 감사했습니다. 목적지를 정하고 공원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날씨 탓인지 평소보다 많게 느껴졌습니다. 지나는 길마다 스치는 사람이 제법 많습니다.

아이도 슬슬 기분이 좋아지고 있는 게 느껴집니다.

새 학년이 되고 새로운 친구를 만나지도 못한 체 몇 개월을 집에서만 보냈습니다.

어떤 친구가 같은 반 인지도 모르겠다고 합니다.

또, 5학년이 되면서 가장 기대했던 건 학교 내 방송반 활동이었습니다.

몇 차례의 선발 과정을 통해 어렵게 합격했지만 활동다운 활동을 못했습니다.

그런 아쉬움을 쏟아냅니다. 걷는 내내 이런저런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학교도 학원도 마음대로 못 가는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지 물었습니다.

이제 어느 정도 적응이 되다보니 오히려 편하다고 합니다.

학원 안가고 집에서 자유롭게 하는 게 잘 맞는다고 합니다.

진도와 분량을 스스로 정하고 매일 하는 게 좋다고 합니다.

다만 이해 안 가는 부분만 따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아내도 아이가 자율적인 학습태도를 갖게 된 게 다행이라고 합니다.

규칙적인 생활이 어려운 상황에서 스스로 원칙을 세워 지키고 있었습니다.

학기 초엔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아이도 아내도 낯선 경험에서 오는 불안으로 올바른 대처를 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몇 달은 걱정과 잔소리가 필요했습니다.

그런 상황을 잘 이해하고 받아들여 준 아이가 고마웠습니다.

아이에게 고맙다고 표현했습니다.

배고픔에 지칠 때 쯤 맥도날드가 보입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팬케익과 쉐이크로 아침을 먹었습니다.

달달한 시럽과 부드러운 팬케익의 조합은 꿀맛이었습니다.

거기에 달달한 바닐라 쉐이크는 떨어진 당을 채우기 충분했습니다.

달달한 팬케익을 사이에 두고 더 달달한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비었던 배와 떨어진 당을 채우고 다시 밖으로 나왔습니다.

버스를 타고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아이는 걷겠다고 합니다. 저도 걷는 게 좋았습니다.

그렇게 돌아가는 길 내내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걸으며 닿는 시원한 공기가 더 신선하게 느껴집니다.

오랜만에 걸어 약간 힘들어 보였지만 표정은 밝은 것 같아 다행이었습니다.

다음 주에도 또 산책하자고 할 겁니다. 그때는 제 얘기를 더 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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