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8시 이제 막 문을 연 카페에 첫 손님으로 기록을 남긴다. 지난주까지 방명록에 이름과 체온 등을 적더니 지금은 시간과 연락처만 적는다. 어제도 첫 손님이었다. 이제 얼굴을 기억하시는지 고맙게도 주문이 자동으로 들어간다. 깔끔하고 아담한 실내에 몽환적인 음악이 흐른다. 그래서 좋다. 가사가 들리는 노래보다 멜로디 위주의 잔잔한 음악이 좋다. 듣고 있으면 마음이 가라앉는다. 마음만은 바쁘지 말라며 속삭이는 것 같다. 바쁜 일상을 살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어보라고 한다. 음악은 그런 것 같다. 같은 음악도 내가 어떤 상태에 있느냐에 따라 다르게 들린다. 마음이 급할 땐 아무리 좋은 음악도 소음으로 들린다. 반대로 마음이 여유로울 땐 시끄러운 음악에도 빠져들게 되는 것 같다. 음악도 책만큼이나 삶을 풍요롭게 해 준다. 사람 성격이 다양하듯 음악도 다양한 장르가 있다. 클래식이 최고라는 이도 있고, 힙합의 반항정신에 심취한 이도 있고, 팝의 경쾌함을 좋아하는 이도 있고, 트로트의 구수한 매력을 즐기는 이도 있다. 어느 장르가 우월하다고 가리는 건 의미 없는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변한다. 지금은 힙합이 좋다가도 어느 순간 트로트에 빠질 수 있는 게 사람이다. 또 어떤 상황에 있느냐에 따라 좋아하는 음악이 달라질 수도 있다. 음악적 취향을 갖는 건 필요하지만 굳이 이 음악 아니면 안 된다는 딱딱한 사고는 불필요해 보인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트로트가 대세인 요즘이다. 트로트는 나이 든 이들의 전유물로 생각했지만 이제 그들도 좋아하는 마음을 당당히 드러내고 있다. 송가인, 임영웅 등의 팬층을 보면 이를 실감할 수 있다. 50대 이상의 어르신들은 점잖음을 버리고 좋아하는 가수를 향해 팬심을 드러내는 걸 보면 10대의 팬덤 못지않다. 오히려 당당하게 그들만의 문화로 발전시키고 있다. 또 아이돌만 좋아할 것 같은 1,20대가 그들의 노래를 흥얼거리는 걸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처럼 팬층이 넓어진 이유는 트로트는 성인만 부른 다는 고정관념을 깬 10대 가수의 등장이 한몫했다. 흔히 트로트는 한이 서려 있어야 제 맛이라고 한다. 한을 담아내려면 인생의 굴곡이 있어야 하고, 굴곡은 나이로 인해 드러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어린 가수들은 성인 못지않은 감성을 담아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 낸다. 전문가가 아니라 그들의 감성을 평가하지 못하지만 듣다 보면 자연히 빠져들게 되는 걸 보면 꼭 한이 서리지 않아도 노래 자체에 힘을 느끼게 된다.
유행은 돌고 돈다고 했다. 대중에게 외면받던 트로트가 어느 순간 주류가 되듯 시대와 상황에 따라 유행은 변한다. 유행은 그 시대의 상황을 반영해 준다. 지금처럼 웃을 일 없이 하루하루를 힘들게 보낼 땐 음악이 큰 위로가 된다. 최근 BTS의 ‘Dynamait’가 빌보드 싱글 1위가 될 수 있었던 이유를 묻는 질문에 힘든 시기를 보내는 요즘 자신들의 노래를 통해 위로와 힘을 얻었다는 이들이 많았기에 가능했다고 전했다. 분명 음악에는 힘이 있다. 위로가 필요할 땐 마음을 보듬어 주고, 우울할 땐 밝은 기운을 전해주고, 즐거울 땐 더 즐겁게 해주는 게 음악이다. 바쁘고 여유가 없을 뿐 음악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계절이 바뀔 때 흥얼거리는 노래가 있고, 비가 오면 생각나는 음악이 있고, 맑은 날 흥을 돋아 주는 자기만의 노래가 있다. 또 살면서 아픔을 겪을 때 듣는 노래가 모두 나를 위한 노래처럼 들리 듯 음악이 갖는 치유의 힘을 경험해 보았을 거다. 나도 첫사랑을 떠나보낸 뒤 삼일 밤낮을 울며 듣던 노래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들을 땐 아픈 기억이 솟아나지만 상처를 말끔히 없애기 위해 드러내는 건 치료에 꼭 필요한 과정이다. 음악을 통해 치유받으며 성장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