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기가 울리지 않는다

2025년 6월 10일 두 번째 글

by 김형준


2025년 6월 10일 두 번째 글.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월요일 하루 동안 걸려온 전화가 없었습니다. 전화할 곳도 없었네요. 나를 찾지 않는 게 이렇게 편한지 이제 알았습니다. 직장에 다닐 땐 언제 찾을지 모르니 휴일에도 신경이 쓰였었죠. 주말에 전화 오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그렇다고 마음 놓지는 못했습니다.


근무 중에 일이 터지는 건 대개 전화에서 비롯됩니다. 전화는 늘 사건사고를 전달해 줬습니다. 전화로 혼이 빠질 만큼 정신없을 땐 손에 든 전화가 야속하기도 했습니다. 할부금만 아니면 집어던지고 싶었던 게 말도 못 하죠. 꺼버리고 싶은 충동은 인내심을 시험하기 충분했습니다.


좋은 일도 대개 전화를 타고 전해집니다. 얼굴 보는 게 쉽지 않으니 전화로라도 서로 안부를 전합니다. 영상 통화는 차치하고 전화기 넘어 목소리 만으로 서로의 감정을 전달하기도 하죠. 이때 전화기는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히 다룹니다. 이게 없었으면 어쩌나 싶을 만큼요.


요즘은 스마트폰이 애물단지입니다. 전화기 역할보다 오락에 더 큰 기여를 하니 말입니다. 잠자는 시간 빼고 손에서 떨어지는 시간이 1초도 안 되지 않나 싶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손에서 내려놓지 못하는 이들을 심각하게 바라봤지만, 요즘은 그냥 그러려니 하는 것 같습니다.


통화 기능만 있는 전화기를 사용했을 땐 그것만으로도 생활이 편리했습니다. 일의 속도도 빨라지고 더 자주 만남도 갖게 되었죠. 기능이 더 많아졌으면 더 좋아지는 게 당연할 터, 어쩌면 거꾸로 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손 안에서 모든 게 이루어지니 굳이 누구를 만나는 게 불필요한 세상인 거죠.


저처럼 퇴직하면 찾는 사람이 줄어 심하면 우울감이 든다고도 말합니다. 소외된 느낌이라고 하더라고요. 정말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분 단위로 울리던 전화가 잠잠해지면 말이죠. 저야 일할 때도 저를 찾는 전화가 많은 편이 아니었는데도 괜히 한 번씩 전화기를 확인하고 하네요.


중년 이후에는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라고 조언합니다. 직장에서 쌓은 관계는 직장을 벗어나면 신기루처럼 사라진다고 해서요. 맞는 말입니다. 업무 때문에 연락했던 수많은 사람이 업무가 없어지면 당연히 연락해 올 일이 없죠. 그 자리를 대신해 새로운 관계로 채우라는 의미입니다.


나이 들수록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집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때로는 혼자 있는 시간도 삶을 충만하게 해주기도 합니다. 또 꼭 필요한 사람만 만나는 것도 인생이 풍족해지는 방법이죠. 불필요한 만남으로 에너지를 빼앗기면 그만큼 삶의 질도 떨어질 테니까요.


한동안 전화기는 울리지 않을 겁니다. 그 시간 동안 오롯이 혼자 지내는 연습을 합니다. 그러고 나서 새로운 관계를 만듭니다. 중년 이후를 책임 질 관계인 거죠. 저를 필요로 하는 이들과 제가 필요한 이들로 다시 채울 것입니다. 중년 이후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꼭 필요한 사람으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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