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하루 한 페이지 나를 돌아보는 글
예년에 비해 술자리가 많이 줄었습니다. 사회 분위기가 오락가락 하니 맘 편히 술자리 갖기도 녹녹치 않습니다. 주변에서 술자리를 권하는 횟수도 줄었습니다. 술자리를 권하는 자체가 민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분위기 탓인지 요즘은 집에서 한 잔 하는 날이 늘어갑니다. 장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우선은 주량 조절이 가능합니다. 먹고 싶은 만큼만 먹을 수 있습니다. 밖에서 마시면 분위기에 휩쓸려 2차,3차로 이어집니다. 집에서는 차려 놓은 만큼만 먹고 정리하면 됩니다. 밖에서 마시면 싫은 사람과도 몇 시간을 함께 해야 합니다. 집에서는 가족과 함께 하며 관계를 돈독히 할 수 있습니다. 밖에서 마시면 졸려도 집까지 와야 하는 시간이 걸립니다. 집에선 마시다 졸리면 방에 들어가면 그만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 갖는 술자리 덕분에 대화도 많이 늘었습니다. 가끔은 술기운을 빌려 아이들에게도 속내를 터 놓기도 합니다. 놀라지 않을 만큼의 수위 조절은 필요합니다.
오랜만에 약속을 잡았었습니다. 일 년에 한두 번 갖는 모임입니다. 이런 분위기에 술자리를 간다면 쉽게 허락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눈치만 보다 결국 약속을 취소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반대해도 갖은 핑계를 대며 만나러 갔을 겁니다. 지금은 스스로도 안 가려고 생각하는 게 달라진 것 같습니다. 서울로 출퇴근 하다 보니 약속 잡을 핑계를 만들기 수월했습니다. 아내도 그러려니 하고 이해해 주었습니다. 요즘 상황엔 핑계를 만들 게 없습니다. 오히려 지금이 더 잘 된 것 같습니다. 불필요한 약속에 끌려 다니지 않아도 된 것 같습니다. 더 좋은 건 약속을 피할 핑계를 안 만들어도 된다는 겁니다. 이렇게 저녁 시간을 갖게 되니 할 수 있는 게 많아집니다. 일단 퇴근이 일정해 졌습니다. 집에서 저녁 먹는 날도 많아졌습니다. 살림도 돕습니다. 책도 읽습니다. 잠도 일찍 잡니다. 유익한 선순환이 이어집니다. 내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건 여러 장점이 있습니다. 앞으로도 사회 전반적으로 지금 같은 분위기가 이어지길 바라봅니다.
금요일은 긴장을 풀고 한 잔 하는 날로 정해 놨습니다. 맛있는 안주도 준비하고, 다양한 주종을 준비합니다. 주량은 주종 불문 각 1병입니다. 딱 적당한 양입니다. 둘이 마실 만큼 근사하게 준비해도 밖에서 마시는 1차비용도 안 나옵니다. 가정 경제에 큰 보탬이 됩니다. 확실히 예전보다 냉장고 반찬이 줄었습니다. 만든 지 일주일 지난 반찬도 좋은 안주가 됩니다. 반찬의 회전율이 좋아졌습니다. 반찬의 종류도 다양해집니다. 기본적으로 식사를 위한 반찬을 만들지만 안주를 감안하고 만들어 놓는 것도 있습니다. 덕분에 아내는 주방 체류 시간이 늘었지만 나쁘지 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혼자만의 생각일 수 있습니다)
유난히 술이 당기는 날이 있습니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기 전까지 세 개의 워드 파일에 반도 못 채우고 멈췄습니다. 아무리 쥐어짜도 이어지질 않았습니다. 오늘은 글렀다 생각하고 일찍 퇴근했습니다. 아내가 반가운 소식을 전해줍니다. 장모님께서 싱싱한 전복과 돔을 보내 주셨습니다. 반찬이 너무 좋습니다. 이런 반찬을 그냥 지나치는 건 반찬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습니다. 간단히 식사를 하고, 며 칠 전부터 냉장고 한 곳에 자리하고 있던 막걸리 한 병을 소환합니다. 막걸리가 술술 넘어 갑니다. 아내와 한 병을 나눠 마셨습니다. 막걸리 기운을 빌려 지금 이글을 써 내려왔습니다. 정말 신기합니다. 막걸리 반병에 이렇게 한 페이지를 채웠습니다. 가끔은 이성보다 감성이 필요한 날도 있을 겁니다. 감성을 깨우는 게 좋은 음악일 수도 있고, 감동 있는 영화 한 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제 감성을 깨운 건 막걸리 한 잔 이었습니다. 늘 하던 뻔한 일을 성실히 함으로써 목적지에 하루만큼 닿고자 노력했던 하루였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마음을 비우고 느낌이 가는대로 저녁 식사를 즐겼습니다. 취중 괴변이라 불편할 분도 계실 겁니다. 맑은 정신으로 글을 쓰는 이도 접니다. 막걸리 반병을 마시고 글을 쓰는 이도 접니다. 지금 이순간은 지금의 제가 쓰는 글을 남기고 싶습니다. 모든 부끄러움은 제 몫입니다. 이만 저의 두 번째 음주 글쓰기를 마무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