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하루 한 페이지 나를 돌아보는 글
지하철역을 빠져나와 가장 가까운 카페에 자리 잡았다. 출근 전 시도했던 글쓰기는 오늘도 실패다. 하루 종일 일에 치이다 결국 퇴근 때까지 끌고 왔다. 자리에 앉고 10여 분 고민하다 다시 쓰기 시작한다. 눈에 보이는 것과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다르니 집중이 안 된다. 집중을 못하면 행동이 산만해 진다. 카페는 도서관을 옮겨 놓은 듯 대화 없이 음악만 흐른다. 옆 테이블은 무언가 집중해 있는지 화면에 눈을 못 떼고 있다. 그에게 내 행동은 집중력을 흩트리는 느껴질 수 있다. 거기에 생각이 이르니 출퇴근 지하철 상황이 생각났다.
월요일은 출근은 늘 분주하다. 매일 같은 시간 타지만 월요일은 사람이 많다. 서울로 들어갈수록 타고 내리는 사람이 많다. 서울 어딘가 왔을 때 잰 걸음으로 들어오는 한 사람이 보인다. 타고 내리는 사람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빈자리가 있든 없든 사람들 사이 빈틈으로 빠르게 파고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급한 사람 복장 터지게 제 갈 길만 유유히 가는 사람이 있다. 타인을 배려한다면 그들과 비슷한 속도로 걷는 게 기본 예의라 생각한다. 같이 타는 사람보다 빠른 속도로 열차에 오른 남자는 빈자리가 없음을 확인한 뒤 내 앞에 섰다. 두 손에 스마트 폰을 감싸며 화면에 집중해 있었다. 몇 정거장 지나자 옆 자리가 비었다. 누가 자리를 노리기라도 한 듯 재빠르게 자리에 앉는다. 앉으면서부터 신경이 거슬리기 시작한다. 지하철에서 스마트 폰을 보는 사람들은 드라마, 영화, 예능을 보거나 게임을 한다. 이럴 때 대게는 집중해서 본다. 미동 없이 눈만 깜빡이는 게 보통이다. 옆에 앉은 남자는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눈은 화면을 보지만 몸은 계속 반응한다. 같은 행동을 반복하며 내 집중력을 흐트려놓는다. 눈치를 줘도 전혀 먹히지 않는다. 책 읽기를 포기 하든 행동을 멈추든 둘 중 하나를 해야 했다. 몇 정거장 남겨두고 읽기를 포기했다. 퇴근 지하철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생겼다. 이번엔 오전의 그 남자보다 더 강력했다. 흘깃 보니 책을 펼쳐 놓았다. 내심 ‘오~’ 했지만 곧 ‘우~’로 바뀌었다. 이 남자 단 5분, 아니 1분도 집중을 못한다. 책을 보는가 싶더니 덮고, 덮었나 싶더니 또 펼쳐든다. 몇 줄 읽는가 싶더니 또 딴 짓을 한다. 딴 짓을 하는가 싶더니 스마트 폰을 꺼낸다. 어디론가 문자를 보내더니 또 책을 펼친다. 이런 행동이 1분 간격으로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건 책을 보는 것도, 안 보는 것도 아니었다. 지하철에서 옆 사람의 산만했던 행동 탓에 집중 못했던 나와, 지금 카페에 앉아 집중을 못해 여기 저기 둘러보며 산만해 보였던 나. ‘역지사지’를 이럴 때 두고 하는 말이다. 남의 행동이 나에게 피해를 준다고 탓만 할 게 아닌 것 같다. 나의 무의식 중 행동이 남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음을 주의해야 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 보다 남을 탓하며 책임을 떠넘긴다. 지난 금요일 퇴근길 버스에서 생긴 일이었다. 차선이 좁고 마을버스 위주로 다니는 도로였다. 파이프 지주 하나에 버스 노선을 적어 놓은 입간판이 정거장임을 표시해 주었다. 70대로 보이는 어르신은 입간판과 나란히 서 계셨다. 보통 버스는 정거장 이정표 앞뒤 20m 사이에 정차하게 되어 있다고 한다.(이때 처음 알았다) 기사님은 버스 뒷문이 정거장 이정표와 나란하게 차를 세웠다. 어르신 앞에서 뒷문이 열렸다. 어르신이 버스를 타려면 정거장 이정표를 돌아가야 하는 위치였다. 어르신은 잠시 망설이더니 닫히는 뒷문으로 황급히 올라타셨다. 뒤늦게 본 기사님이 어르신께 한 마디 했다.
“뒷문으로 타시면 어떻게 해요. 큰일날뻔 했잖아요.”
어르신은 약간 역정을 내시며 되 받아치셨다.
“아니 버스를 이상하게 대니까 어쩔 수 없이 뒷문으로 탄 거 아니오.”
“어르신 원래 정거장 앞뒤로 20m 사이에 정차하게 되어 있어요.”
“그런 게 법으로 있어? 어디 있으면 보여줘 봐. 내가 5분이나 거기서 기다렸는데 버스 그렇게 세우니 뒷문으로 탈 수밖에 없잖아.”
두 분의 실랑이는 세 정거장을 가는 동안 이어졌다. 내가 본 상황은 누가 누구에게 화 낼 만큼 민감하게 받아들일 게 없어 보였다.(솔직히 어르신의 억지가 없진 않았다) 기사님은 기사님대로 정상 운행을 했고, 승객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입장이었고, 어르신은 늦게 오는 버스와 제 자리에 정차하지 않은 것에 대해 불만을 가졌던 거다. 서로 조금씩만 자신의 입장을 양보했으면 고성이 오갈 상황까지는 안 갔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나의 행동이 타인에게 방해가 될 수 있었고, 타인의 행동 때문에 내가 방해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피해 받는 것만 중요하게 생각한다. 정작 자신이 가해자가 될 때는 합리화 시키려고 만 한다. ‘내로남불’ 이라고 했다. 내 행동을 합리화 시키려고 만 할 게 아니라 타인의 행동에도 이유가 있음을 짐작해 본다면 감정적으로 부딪힐 일은 없지 않을 까 생각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