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사람을 남기는
슬기로운 언어 생활

[직장] 하루 한 페이지 나를 돌아보는 글

by 김형준

명절을 하루 앞둔 오늘 본사로 출근하라는 지시가 있었습니다. 전 현장 관리자와 본사 직원이 모여 간단히 인사 나누고 협력업체에서 들어온 선물도 나누어 받았습니다. 해마다 명절이면 협력업체로부터 받는 선물도 작은 기쁨 중 하나입니다. 비싸고 화려한 건 아니지만 잊지 않고 인사해 주는 협력업체 덕분에 두 손 무겁게 귀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약간의 상여금까지 받으니 마음이 가벼운 오전이었습니다. 좋은 기분 그대로 퇴근하면 좋겠는데 꼭 이런 좋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생기는 건 레퍼토리인 것 같습니다. 문제는 ‘융통성 제로’ 관리 이사(이하 ‘융제 이사’)와 ‘공공의 적’ 부장(이하‘공적 부장’)간의 재고조사가 발단이었습니다. 옆에서 지켜본 제 결론은 ‘정말 별 일도 아닌 걸로 쓸데없이 날을 세우는구나’였습니다.


두 사람은 평소 감정의 앙금을 단단히 쌓아두고 있었고, 사소한 걸로 수시로 부딪혀 왔습니다. 얼마 전까지 대구 현장을 담당하던 ‘공적 부장’이 현장 사무실 집기류와 공구를 창고로 올려 보냈습니다. 보낸 물품은 리스트를 만들어 관리부에 제출했고, 담당자인 ‘융제 이사’는 이를 확인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대개 이런 경우 물건을 받고 리스트를 들고 창고에서 확인하며 재고 유무를 확인하면 됩니다. 일단 리스트를 작성해 물품을 보낸 '공적 부장'은 역할을 다 한 겁니다. 리스트를 넘겨받은 '융제 이사'가 직접 리스트와 물품을 맞혀보고 맞으면 패스, 다르면 사실 여부를 확인하면 됩니다. 앙금이 두터운 '융제 이사'가 선공을 날립니다.

“리스트에 이 공구 보낸 거 맞아?” (창고 물품을 확인하기 전인 것 같았습니다)

“다 같이 싸서 보냈으니 그 안에 들어 있을 겁니다.”

“직접 보냈으면서 있는지 없는지 몰라?” (여기서부터 두 사람은 감정적으로 대합니다)

“싸서 보냈으니 있을 겁니다. 직접 확인해 보시면 알 것 같은데요.”(감정을 잔뜩 담아 대드는 말투로 변해갑니다)

“확인은 확인이고 보냈는지 안 보냈는지를 물어보잖아.”('융제 이사'도 감정을 담기 시작합니다)

“보냈으니까 리스트에 적혀 있겠지요.” (누구든 금방 터질 것 같은 대치로 치닫습니다)

“확인해봐서 없으면 당신이 책임져.”

“있는지 없는 지나 확인하고 얘기하세요.”

서로 말꼬리 붙잡는 유치한 싸움으로 밖에 안보였습니다. '융제 이사'는 직접 확인해 보면 될 문제였고, '공적 부장'은 확신 있으면 확실하게 말하면 그만인 거였습니다. 이런 단순한 문제를 그간의 감정을 덧 붙여 소모적인 감정싸움으로 키웠던 겁니다. 여기서 1라운드가 끝났습니다. 다음 2라운드는 전체 회의 시간에 또 터집니다.


상무님이 직원들의 노고를 치하하며 부드럽게 분위기를 만들어가고 있었습니다. 휴가도 못 가고 준공을 마친 직원들에게 여름휴가 5일 플러스 유급 휴가 5일을 더 주겠다는 아주 훈훈한 내용으로 사기를 돋아주었습니다. 훈훈한 분위기도 잠시 이내 '융제 이사'가 한 마디 거듭니다.

“추석 연휴 끝나면 각 현장별로 재고 조사 갈 테니 준비해 주세요.”

공개적인 지시이기도 했지만 그 안에는 '공적 부장'에 대한 견제 의도도 있었습니다.

“아니 보냈으면 본사에서 확인하면 되는 거지 뭘 또 확인한다고 그래요.”

난데없이 '공적 부장'이 직격탄을 날립니다. 이에 질 '융제 이사'가 아닙니다.

“있는지 없는지 그때 가서 확인할 테니 준비나 잘하세요.”

자칫하면 더 큰소리가 날 것 같아 상무님이 중재를 합니다. 그렇게 일단락이 납니다. 씩씩거리며 '융제 이사'가 자리로 돌아가자 상무님이 '공적 부장'에게 한 소리 합니다.

“너는 위아래도 없냐. 직원들 다 있는 자리에서 그렇게 앞뒤 분간 못하고 말해야겠어.”

맞는 말씀이었습니다. 엄연한 조직이고, 조직에는 지켜야 할 규칙이 있습니다. 또 직급 간 지켜야 할 기본적인 예의도 있습니다. 아무리 부당한 지시를 내리고, 억울해도 상사는 상사입니다. 분하고 억울하면 당사자끼리 만나서 얼마든 얘기할 수 있는 겁니다. 물론 이번 경우는 공적이기보다 사적인 감정이 앞선 대화였다고 생각합니다. 상급자인 '융제 이사'도 확인도 하기 전에 문제화할 필요도 없었던 겁니다. '공적 부장'도 예의를 지켜야 했습니다. (본사 직원도 공적 부장을 안 좋게 보는 건 위아래 없는 불량한 말투를 문제로 생각했습니다)


직장 생활하다 보면 억울한 일도 있고, 원치 않는 일을 해야 하기도 합니다. 내 맘에 들고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없는 게 조직 생활일 겁니다. 여러 사람과 상하 관계를 이루고 제 위치에 맞는 역할을 해야 할 의무도 있습니다. 사람끼리 어울리며 사는 곳에서 사람 간의 문제가 안 생길 수 없습니다. 또 위아래가 있는 조직이라면 더더욱 그걸 겁니다. 내 뜻대로 안 된다고 때려치우지 못할 거면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어야 할 겁니다. 직급이 높던 낮던 각자의 자리에 불만이 없을 수 없습니다. 각자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기 위해 타인을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을 겁니다. 어디까지나 조직의 발전할 수 있는 대의라면 기꺼이 따라야 할 겁니다. 설령 자신에게 부당할지라도 일단 따르는 게 순서일 겁니다. 회사의 이익을 위해 각자 정해진 역할이 있을 겁니다. 회사가 잘 돼야 본인도 잘 된다는 건 당연한 이치입니다. 우리 대부분은 대표가 아닌 이상 언젠가는 회사를 떠나야 할 위치에 있습니다. 회사는 떠나도 사람은 남습니다. 언제 어떤 모습으로 다시 만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같은 회사에 몸담고 있는 이상 일은 일로 대하는 현명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날 세우고 악 감정 가져봤자 서로에게 플러스될 게 없을 겁니다. 조금만 양보하고 조금만 배려하면 좀 더 웃으며 일 할 수 있는 직장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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