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문을 열고 들어간 게 9시였습니다. 여전히 불은 꺼져 있었고 아내와 두 딸은 각자 방에서 자고 있었습니다. 호수공원에서 10킬로미터를 달리고 온 터라 갈아입을 옷을 챙겨 욕실로 들어갔습니다. 씻고 나오니 큰딸이 자기 방 침대에 누운 채로 눈만 껌뻑이며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습니다. 일요일 아침밥 담당이라 혹할 만한 제안을 던졌습니다. 기말고사도 끝났고 약속도 없을 터, 가성비 전국 2위 망고 빙수 먹으러 가자고 꼬셨습니다. 물론 아침밥을 겸한 메뉴를 포함해서죠. 이 정도 제안이면 충분히 몸을 일으킬 것 같았습니다. 큰딸도 싫다고 하지 않았고 머리만 감으면 나갈 수 있다고 대답했죠. 그 사이 아내도 일어났고 먼저 씻고 나왔습니다.
아내가 씻는 동안 거실에서 책을 읽었습니다. 큰딸이 보는 곳에서요. 한쪽 눈은 글을 읽고 다른 쪽 눈은 큰딸이 언제 일어나나 지켜봤습니다. 반 시간 정도 흘렀습니다. 아내는 머리도 다 말리고 화장까지 마쳤습니다. 큰딸이 욕실 사용할 차례가 되었는데도 침대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조바심이 났지만 태연한 목소리로 "이제 씻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했습니다. 대답이 돌아오지 않습니다. 두고 보기로 하고 책을 읽었습니다.
밥 먹으러 나가자고 말한 지 1시간 지났습니다. 여전히 침대와 한 몸인 큰딸. 이번에도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밥 먹으러 가지 않을 거니?"
"나가기 귀찮은데."
"일어나기 귀찮다는 거니, 밥 먹으러 가는 게 귀찮다는 거니?"
눈치를 보니 나가는 게 싫은 것 같습니다. 책을 덮고 방으로 가서 한 마디 했습니다.
"같이 가지 않으면 집에서 먹을 수 있는 건 시리얼밖에 없어. 반찬은 있는 데 밥이 없어서. 괜찮겠니?"
괜찮다고 말합니다. 저도 알았다고 답했습니다. 대화는 거기까지였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큰딸에게 선택권을 줬습니다. 물론 밥 먹으러 나가자고 먼저 말한 것도 저의 선택이었습니다. 제 선택을 강요했다면 아마 큰딸의 태도를 못마땅하게 여겼을 테고 한바탕 했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큰딸의 선택을 존중해 줬습니다. 같이 가지 않겠다는 선택을 말이죠.
외식할 때마다 부딪친다는 가족이 있습니다. 부모는 자식들에게 밥을 먹여야 할 의무가 있으니 때로는 외식을 선택합니다. 아이들도 웬만하면 따라나섭니다. 하지만 사춘기를 겪는 아이들은 부모와 나가는 걸 싫어한다고 합니다. 무엇을 먹는지보다 같이 가는 것 자체가 싫은 거죠. 그런 아이에게 무작정 외식하기로 했으니 너는 따라와 해라는 건 일종의 폭력이라는 거죠. 그래서 외식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건 메뉴를 정하는 게 아니라 따라나설지 말지를 묻는 거라고 조언합니다. 끼니를 책임지는 게 부모이다 보니 따라나서지 않는 아이의 선택이 못마땅한 게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아이의 선택을 존중해 줘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실 한 끼정도 먹지 않는다고 잘못되지 않습니다. 아이도 분명 무언가를 대신 먹을 겁니다. 부모는 부모대로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한 선택이었고, 자녀는 자녀대로 사춘기 반항 중 하나일 뿐입니다. 부모가 자녀의 선택을 존중해 주면 문제는 해결됩니다. 다만 부모도 경험이 없던 터라 잘 되지 않을 뿐이죠.
큰딸도 중학생 때는 자주 따라나섰습니다. 고등학생이 된 후 주말에도 학원에 다니느라 같이 밥 먹을 기회도 줄었죠. 또 점점 엄마아빠보다 친구와 어울리는 게 좋아질 때이기도 하고요. 집에 있는 걸 좋아하는 아이라 더더욱 따라나서는 게 싫을 수도 있을 겁니다. 다름을 인정하고 의견을 존중해 주는 게 먼저입니다. 처음부터 잘 되지 않았지만 노력했습니다. 끼니를 대충 때우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억지로 먹일 수도 없는 노릇이죠. 먹는 건 둘째 치더라도 갈지 말지 때문에 서로 얼굴 붉힐 일은 만들지 않는 게 더 났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야 다음 기회도 만들 수 있을 테니까요. 또 서로 마음 불편한 상황은 적을수록 좋지 않을까요?
부모에게는 여러 역할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아이들 스스로 설 수 있게 만드는 것도 그중 하나이지요. 그러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스스로 선택할 기회를 주는 겁니다. 선택에 따른 책임을 경험할수록 스스로 설 수 있는 힘도 생기겠지요. 그렇게 조금씩 홀로 서는 연습을 하게 해주는 겁니다. 언젠가 부모 품을 떠날 아이들입니다. 품을 떠날 아이대신 곁을 지킬 아내와 남편을 먼저 챙기는 게 어떨까요? 외식에 따라나서지 않는 아이에게 감사해하며 엄마아빠끼리 푸짐하게 먹는 겁니다. 그래야 더 잘 싸우고 잘 보살피겠죠. 아이들의 선택을 존중해 주면 싸울 일도 줄고, 밥값도 줄고, 먹는 즐거움은 커지는 장점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