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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50 세대가 마주할 현실

by 김형준

세상에 이름을 남기고 떠난다면 이보다 값진 인생이 없을 것이다. 이름을 남긴다는 건 그만큼 자기 일에서 일가를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일가를 이루기까지 필요한 건 노력과 시간이다. 설령 세상 사람이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만족할 만큼 실력을 갖추기 위한 기간은 필요하다. 하지만 사회는 그만한 여유를 주지 않는다. 정상에 오르기 위해 출발하지만 오르는 중간 내려갈 준비도 해야 하는 시대이다.


군대 다녀오고 4년제 대학 졸업한 지호 씨는 26살에 첫 직장을 가졌다. 학교 성적도 잘 관리했고, 다양한 공모전 포트폴리오도 준비해서 대기업 마케팅 부서에 입사했다. 고집이 센 아버지 영향으로 이직을 단 한 번도 고민하지 않았다. 부서 이동은 몇 번 있었지만, 회사를 떠나지 않았다. 동료보다 승진이 빠른 편은 아니었지만, 때마다 승진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마흔둘, 대기업 차장에 10살, 6살 두 딸을 둔 가장이었다. 승진 다음 해, 봄기운 완연하던 5월 둘째 주 월요일 아침 사내 공지가 올라왔다. 5월 말 기준 정리해고 명단이었다. 지호 씨도 포함되었다. 이런 걸 두고 청천벽력이라고 말하는가 싶었다. 사전 예고 없는 일방적 통보였다. 인사팀에 따져도 돌아오는 답은 똑같았다. 위에서 내린 지시라 자기들도 어쩔 수 없단다. 지호 씨는 어디에도 하소연할 곳이 없었다. 직속 임원에게도 물어봐도 돌아오는 답은 다르지 않았다. 14년 동안 충성한 조직에서 하루아침에 쫓겨났다.


지호 씨는 직장 생활 14년 만에 일자리를 잃었다. 14년, 짧지 않은 시간인 건 맞다. 하지만 세상에 이름을 남기기에는 부족하다. 아니, 40대 오히려 더 왕성하게 일할 나이이다. 이때부터 내 일에 완숙미도 생기도 지혜도 갖게 될 때다. 배운 걸 가르치고 더 깊이 공부할 때이기도 하다. 누구는 다시 학교로 돌아가 일에 도움이 될 공부를 시작한다. 또 누구는 다른 영역으로 공부하여 역량을 확장해 간다. 40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내가 무엇을 잘하고 좋아하는지 알게 되는 이들도 있다. 20대 때 거친 흙길을 달려왔다면, 40대는 앞으로 갈 길을 포장하고 단단하게 다지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 자기 일에 깊이 더할수록 세상에 이름을 알릴 기회도 얻게 된다.


지호 씨는 가상 인물이다. 그렇다고 40대 직장인 현실과 동떨어진 사례는 아니다. 분명 내 주변에도 40대에도 정리해고, 희망퇴직이 남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하물며 50대는 상황이 더 안 좋을 수밖에 없다. 선택지가 더 줄어든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건 40대 퇴직자보다 몇 년 더 근무한 경력이 쌓인 정도랄까. 한편으로 경력이 많은 게 단점이기도 하다. 재취업 시장에서 나이와 경력이 많으면 회사로선 비용 부담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차라리 자리를 옮겨야 한다면 40대 때가 적기라는 말도 있을 정도다. 취업 시장에서 4050은 도긴개긴이긴 하지만 한 살이라도 어린 게 취업에 유리한 건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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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업에서 20년 근무했었다. 여러 회사를 옮겼고 가는 곳마다 50대 이상 상사가 있었다. 그들이라고 그 자리가 안정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회사 규모를 떠나 나이 많은 직원은 언제든 정리 대상 일 순위였으니까. 그런 사정에 익숙해지니 내 모습도 눈에 그려졌다. 나이 들어 운 좋게 자리를 보존해도 그게 얼마나 이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어느 날 갑자기 지호 씨처럼 낙동강 오리알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개중에는 먼저 자리를 박차고 나가 자기 사업을 하는 이들도 있다. 이 또한 수완이 있는 이들의 몫이다. 준비도 안 돼 있고 경험도 없다면 함부로 달려들 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제법 긴 시간 자기만의 일을 준비해 왔다고 털어놓았다. 종이호랑이가 되기 전 제 발로 걸어 나오기 위해서 말이다.


3040 세대까지는 내 자리에서 밀려나면 또 한 기회를 만들 수 있다. 눈을 낮추고 도전을 받아들이면 다시 기회가 생길 수 있다. 그렇다고 하고 싶은 일을 원하는 시간만큼 일할 수 있다는 보장은 아니다. 단지 조금 더 연명하는 수준이라 할 수 있다. 50대는 더욱이 기회조차 얻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몰린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자영업이 대부분이다. 이 또한 기회로 포장된 또 한 번 실패의 끈을 붙잡는 것일 수 있다. 상황이 이러니 내 일 통해 세상에 이름을 남긴다는 게 가당키나 한지 의문이다. 세상이 이를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4050 세대의 이른 퇴직은 또 다른 출발선에 서는 것이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짧게는 20년, 길면 40년 이상 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바꿔 말해 내가 선택한 일을 40년 이상을 한다면 얼마든 세상에 이름 석 자 남길 기회가 된다는 의미이다. 중요한 건 어떤 일을 선택하느냐이다. 이제까지 경험해 온 일에 연장선이면 더 바랄 게 없다. 경력이 쌓일수록 더 가치와 몸값이 높아질 수 있을 테니까.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일가를 이루기에 3, 40년 세월은 부족하지 않다. 배우고 익히고 성과를 내기에 충분한 시간일 것이다. 어쩌면 두 번째 선택한 일이 나와 잘 맞고 하고 싶은 일이라면 더 빨리 더 많은 성과를 낼 수 있을 터다.


4050 세대 현실은 어떤 관점에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음 단계로 나아갈 방향이 정해진다. 새로운 기회로 받아들이고 다시 도전해 볼 것인지, 아니면 더 이상 기회는 없다고, 남들 사는 방식대로 따라가길 선택할지 말이다. 기회는 내 주변에 널려있다. 눈을 뜨고 바라보면 분명 찾을 수 있다. 시간, 노력, 배움, 정성은 어떤 일을 시작해도 다 필요하다. 한발 더 나아가 남은 시간 동안 얼마나 더 가치 있는 인생을 살지도 영향을 미친다. 남의 눈치 받지 않고, 퇴직할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4050 퇴직을 앞둔 이들에게는 분명 또 다른 기회가 선택되길 기다리고 있다. 그걸 찾아내는 게 4050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관에 들어가야 비로소 퇴직하는 일을 찾는다면 남은 시간 이보다 근사한 인생은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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