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욕으로 나를 괴롭히는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등수가 밀리면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시험에 떨어지면 노력하지 않았다고, 승진에서 빠지면 그럴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인정해 버리면 굳이 승부욕 때문에 힘들어할 일은 생기지 않았죠. 일찍부터 익숙했던 탓에 사회에서도 누가 더 잘 되는 걸 지켜봐도 비교하거나 자책하지 않았습니다. 상대방인 잘 되면 그만큼 노력했겠구나, 반대로 내가 잘되지 않으면 그만큼 노력하지 않았구나 인정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이런 태도에 장단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장점은 쓸데없는 비교로 에너지 낭비하지 않았다면, 단점은 그만큼 남들보다 뒤처진 채 살았다는 거죠. 여러분은 어떤 삶이 더 낫다고 생각하시나요?
50이 되고 퇴직을 준비하면서 몸으로 느낀 게 하나 있습니다. 이 나이쯤 되면 보이지 않지만, 서열 정리가 됩니다. 3040 때 철저히 퇴직을 준비했다면 모든 면에서 안정된 출발을 할 수 있습니다. 노후 자금도 부족하지 않게 모으고 하고 싶은 일도 찾고, 명확한 목적을 가진 이들입니다. 이들은 대개 누구보다 치열하게 경쟁 속에서 살아남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월급쟁이가 만족할 만큼 준비를 했다는 건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 노력은 충분히 짐작하게 할 테니까요. 아마 그들의 3040 세대를 표현하는 단어로는 ‘치열함’, ‘경쟁’, ‘생존’, ‘절박함’ 등이 떠오릅니다. 뒤처지고 낙오하고 실패하는 일을 받아들이지도, 애초에 경우의 수로 인정하지 않았을 테죠. 그들을 괴롭히는 하나가 있다면 그건 ‘열등감’이지 않았을까요? 남보다 조금이라도 뒤처지는 걸 인정할 수 없죠. 뭐가 나아도 나아야 원하는 자리에 누구보다 일찍 도착할 수 있다고 믿으니까요. 그런 노력 때문에 5060 때 퇴직 이후 삶이 그나마 안정권에 들어갈 수 있었을 겁니다. 세상에 거저 얻어지는 건 없는 법이니까요.
열등감은 동기부여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잘만 활용하면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를 일으켜 세우는 역할을 해줄 테니까요. 문제는 열등감이라는 감정은 통제가 쉽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감정을 완벽하게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살면서 느끼는 수많은 감정 중 하나가 열등감이기도 합니다. 자칫 이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면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경쟁에서 옳지 못한 방법으로 상대를 이기려는 짓을 하기도 하지요. 이기는 그 순간은 짜릿할 겁니다.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자기도 똑같이 당할 수 있고, 옳지 못한 방법이 탄로 날 수도 있을 테니까요. 세상사 새옹지마라고 했습니다. 모든 건 돌고 돌아 결국 제자리를 찾죠.
저는 평균 2년 정도 투자해야 책 한 권을 세상에 내보일 수 있었습니다. 수십 번 원고를 고친 뒤에야 인쇄에 들어갑니다. 아무리 고쳐도 내 손에 들린 책은 늘 못마땅하고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때마다 제 눈은 주변으로 움직입니다. 저보다 나은 글이 눈에 들어오죠. 그리곤 비교하고 금방 자책합니다. ‘조금 더 열심히 노력해야 했는데’라고 속으로 읊조립니다. 그래봐야 이미 세상에 박제된 책을 되돌릴 수 없습니다. 그 책으로 인해 그 순간 저는 딱 그만큼 글솜씨를 가진 사람이 되고 맙니다. 물론 글이라는 게 만족할 수 없다는 건 잘 압니다. 누구나 알만한 작가들 역시 그들의 작품에 만족해하는 이들 없습니다. 항상 아쉬움 끝에 세상에 내놓는다고 탄식합니다. 유명 작가와 저 사이에는 딱 하나 차이점이 있습니다. 유명 작가는 그들이 써낸 글이 세상에 나오면 그걸로 끝이라는 겁니다. 다른 작가와 비교나 자신의 부족함을 탓하지 않습니다. 분명한 한 가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이다음 책은 이번보다 분명 조금 더 나아질 걸 안다는 거죠. 그러니 굳이 과거에 붙잡혀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저처럼 후회하고 미련 가져봐야 나아질 게 없다는 걸 알죠.
50에 퇴직을 결심하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3040 때 치열하게 살아내고 안정된 노후를 준비해 놓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아마 조건만 따지면 앞으로 10년 더 직장 생활하는 게 그나마 조금 더 안정된 퇴직이 될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결단을 내린 이유는 저와 비슷한 처지에서 출발하는 이들과 비교할 이유도 열등감 가질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더 많은 돈이 있다면 분명 조금 더 안정된 출발은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돈 대신 하고 싶은 일에 무게를 두었습니다. 남들은 쉽게 갖지 못한 평생 직업을 저는 가졌고 지난 8년 동안 준비해 왔습니다. 이 시간 동안 노력해 온 결과가 쌓인 덕분에 비교 대신 자기만족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까지 노력해 온 저는 세상에 나갈 준비가 되었다고 스스로에게 당당해질 수 있었죠. 만약 비교나 열등감이 먼저였다면 퇴직 결심을 내리지 못했을 겁니다. 남의 눈에서 벗어나지 못했기에 계속해서 눈치만 보고 있었겠죠.
30대를 건너 50대에 도착해 보니 알게 된 게 하나 있습니다. 사람은 저마다 잘하는 게 하나씩 있다는 겁니다. 누구는 그걸 잘 알아서 남들보다 앞설 수 있지만, 누구는 잘 몰라 저처럼 같은 자리만 맴돌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그게 인생이라는 달리기에서 결승선을 먼저 통과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저마다 속도와 체력으로 자기만의 결승선을 향해 달리는 게 인생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니 옆에서 누군가 빛의 속도로 달린다면 격려해 주면, 그만입니다. 그런 그도 언젠가는 거북이보다 느릴 때가 반드시 올 테니까요. 반대로 지금은 남들보다 반 발씩 느려도 머지않아 단거리 선수처럼 달릴 순간도 반드시 올 것입니다. 중요한 건 어느 순간에도 지치지 않고 달리는 겁니다. 지치지 않으려면 스스로 체력 조절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남의 뒤꽁무니를 쫓는 게 아닌 내 발만 바라보며 내 속도대로 가는 겁니다. 그때 열등감도 비교도 쓸모없는 감정이 되고 맙니다.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게 되는 거죠.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은 어느 순간에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고, 평정심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게 중심을 잡아줄 것입니다. 지금 만약 동료의 성공 때문에 배가 아픈가요? 그럼, 제일 먼저 동료는 갖고 있지 않는 나의 장점은 무엇인지 찾아보세요. 못해도 하나 이상은 반드시 있습니다. 거기에 집중해 보세요. 장담컨대 비교도 열등감도 더 이상 자리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자기만의 속도로 치열하게 30대를 보내 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