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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워라밸을 만나려면

by 김형준

워라밸은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 즉, 일과 삶의 균형을 의미합니다. 일과 삶은 의미가 명확하지만, 균형은 의미가 불분명합니다. 저마다 어디에 얼마나 가중치를 두느냐에 따라 균형을 정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균형을 어떻게 정의하시겠습니까? 근로자를 위해 법으로 정해놓은 게 다 지켜질 때 균형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법은 물론 근로자가 요구하는 모든 게 반영될 때 워라밸이 가능할까요? 초과 근무한 만큼 보상받으면 불만이 없습니다. 동료보다 업무량이 많아도 노력을 인정받으면 감당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균형을 이렇게 생각합니다. 퇴근 후 내 시간을 갖는 것도 균형이라 할 수 있지만, 노력과 수고에 대해 완벽히 보상받는다면 이 또한 균형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20년 직장 생활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직장만 다녔던 때와 직장에 다니면서 퇴직을 준비한 기간입니다. 최근 8년 동안 퇴직을 준비했으니 남은 12년은 직장인으로만 살았습니다. 직장인으로만 살았던 때에도 일로 인해 괴롭힘 당한 적은 많지 않습니다. 작은 회사로만 옮겨 다닌 덕분인지 업무 강도는 높지 않았습니다. 다만 월급이 불안정했던 게 업무에서 받는 스트레스보다 컸죠. 다시 말해 시간만큼은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는 데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출근 전 퇴근 후 시간이 보장되었죠. 문제는 그 시간을 나를 위해 사용하지 못했다는 거죠. 그러니 균형 잡힌 인생은 아니었습니다.

8년 동안 직장에 다니며 퇴직을 준비한 기간은 어땠을까요? 새벽 4시 반에 일어나길 5년 정도 했습니다. 9시 출근 전까지 오롯이 자기 계발을 위해 투자했습니다. 정시 퇴근은 저녁에도 나를 위해 활용했죠. 일하고 자는 시간만 제외하고 나에게 투자했습니다. 술 끊은 지 5년, 술자리에 불려 나가지 않은 지도 5년째입니다. 그 시간에도 실력을 키우기 위해 힘썼습니다. 일은 일대로, 자기 계발은 자기 계발대로. 하루에 책 읽고, 글 쓰고, 강의 준비와 강의까지. 몸은 하나이지만 여러 일을 해왔습니다. 이런 저는 균형 잡힌 삶을 살았던 걸까요?


저는 지난 8년 동안 제 인생을 통틀어 시간을 가장 가치 있게 사용했습니다. 그 덕분에 비교적 이른 자발적 퇴직을 할 수 있었습니다. 8년간 워라밸은 어땠을까요? 일과 삶 중 일에만 무게가 쏠린 시기였습니다. 월급이 나오는 해야 할 일과, 퇴직을 위해 하고 싶은 일로 나뉘었습니다. 시간은 한정되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시간을 만들어 내야 했습니다. 나를 위한 시간을 더 만들기 위해 잠을 줄이는 게 그나마 쉬운 방법이었습니다. 일하는 시간을 도둑질하고 싶진 않았죠. 하루 평균 4시간 정도 잔 탓에 수면 질이 떨어졌습니다. 무턱대고 시간만 줄이지 않고 잠을 깊이 잘 수 있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술과 야식을 끊고, 소식을 실천하며 꾸준히 운동했습니다. 술을 끊게 된 것도 일어나는 시간을 일정하게 지키고, 새벽에 맑은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술을 끊어서 술자리에 가지 않게 됐지만, 일부러 먼저 연락하지 않은 적도 많습니다. 수십 년 술자리를 경험해 본 탓에 그 시간을 더 가치 있게 쓰고 싶었습니다. 가족과 주변 사람이 저를 봤을 때 직장에는 다니지만, 마치 은둔 생활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제가 원해서 시작한 일입니다. 목적이 있으니,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것 또한 당연합니다. 짧은 시간 만에 얻을 수 있는 결과도 아닙니다. 원하는 수준에 빠르게 닿기를 원하면 그만큼 시간 투자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노력은 누가 시킨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 계획을 세우고 끊임없이 반복하는 겁니다. 이랬기 때문에 지난 8년이 가장 가치 있었던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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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자랑하려고 쓴 건 아닙니다. 서두에 적은 대로 워라밸은 저마다 정의하기 나름이라는 걸 말하고 싶어서입니다. 30대 직장인에게 ‘일’은 있어도 ‘삶’은 없다는 말에 대부분 공감할 것입니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야 실력을 검증하고 노력을 인정받을 수 있겠죠. 여유는 그 뒤에 부려도 늦지 않다고 여기죠. 지금 치열하게 살면 분명 이 시간을 보상받을 때가 온다고 믿는 거죠. 제 경우 12년 직장 생활은 그다지 치열하지 못했습니다. 시간은 많았지만, 가치 있게 사용하지 못했죠. 노력한 만큼 보상이 주어질 거라는 기대할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욕심만 부리지 않으면 나름대로 워라밸은 누리는 시간이었죠. 달리 말해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한 인생이었습니다. 여러분도 혹시 저 같은 인생을 바라 나요? 인생에서 한 번은 원하는 걸 얻기 위해 모든 걸 걸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저에게는 그 시기가 앞선 8년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일에만 매달려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가장 먼저 내 일에 대해 스스로 정의하고 가치를 매기는 겁니다. 이 일이 내 인생에 어떤 의미인지 가늠해 보는 거죠. 지금 다니는 직장일 수 있고 돈벌이하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전부를 걸 만한 일이라면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저보다 더 치열하게 살아 낼 수도 있습니다. 반대라면 어떨까요? 중심을 조금 옮겨 보는 겁니다. 시간을 만들어 내가 하고 싶은 걸 찾고 시도해 보는 거죠. 기간이 걸리겠지만 그 과정조차 삶의 질을 끌어올리지 않을까요?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건 시간의 양이 아니라 밀도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세 시간 농담 따먹기로 술자리를 갖는 것보다, 하고 싶은 걸 배우기 위해 학원에 있는 시간이 더 가치 있을 테니까요.


무게 균형을 맞추기 위해 같은 중량 같은 개수를 저울 위에 올려야 되는 법은 없습니다. 중량과 개수를 달리해도 균형은 얼마든 맞출 수 있습니다. 워라밸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일과 삶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무게감이 달라집니다. 때로는 한쪽으로 쏠릴 수도 있습니다. 그때는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겠지요. 반대로 지나치게 가벼워질 때도 있겠죠. 그때도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의미이고요. 무 자르듯 일과 삶을 구분 지어 살 수 없는 노릇입니다. 또 인생의 시기마다 일과 삶의 가중치 또한 달라질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상황 탓만 할 수 없을 테고요. 만약 자기만의 기준과 정의가 있는 삶을 산다면 어떨까요? 어느 쪽으로 치우치든 금방 다시 중심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요? 자전거가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끊임없이 흔들리는 겁니다. 우리 인생도 단 한순간 멈추지 않습니다. 자전거 탈 때 오른발 왼발에 적절히 무게를 실으며 중심을 잡듯 삶에서도 하루하루에 무게를 달리하며 중심을 잡는 요령도 필요하겠지요. 그럴 때 우리가 바라는 워라밸도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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