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싫어진 게 아니라 내가 성장한 것이다

by 김형준

사람이 ‘싫어진다’는 감정에는 단순한 피로감 이상이 있다. 인간관계든 조직이든, 그 속에는 ‘내가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한다’는 무의식의 신호가 깃들어 있다.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감정은 인식의 결과”라 했다. 즉, 내가 싫어진다고 느끼는 것은 이미 내 안의 판단이 끝났다는 뜻이다. 이직이나 관계의 단절은 감정적 사건이 아니라 인식의 결과다.


‘싫어짐’은 존재의 거리에서 비롯된다. 하이데거는 인간을 “던져진 존재(Dasein)”라고 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환경 속에 던져지지만, 동시에 그 환경을 해석하며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한다. 회사가 싫어진다는 건, 더 이상 그곳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지 못한다는 말과 같다. 반대로 떠나야 할 때를 아는 사람은 자신의 ‘던짐’을 스스로 다시 선택할 줄 아는 사람이다.


인간의 뇌는 안정보다 ‘도전’을 통해 보상을 느낀다. 새로운 자극이 없으면 도파민 분비가 줄고, 같은 환경에 오래 머물수록 학습 동기가 떨어진다. 그래서 직장에서 권태를 느끼거나, 오랫동안 본 사람이 싫어지는 이유는 결국 신경회로의 적응 때문이다. 뇌는 익숙함보다 성장의 자극을 원한다. 그러니 ‘싫음’은 부정이 아니라 새로운 자극을 향한 신호로 봐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은 ‘감정 관리’가 아니라 ‘의미 재구성’이다.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은 “인간은 고통이 아니라 무의미를 견디지 못한다”라고 했다. 직장이 싫어진 순간에도 ‘왜 이 일을 하는가’를 다시 묻는다면 감정의 방향은 달라진다. 싫어짐을 이유로 도망치면 후회가 남지만, 그 싫음 속에서 의미를 재정의하면 성장의 계기가 된다. 결국 문제는 회사가 아니라 ‘의미의 결핍’이다.


대화와 관계에서도 같은 원리가 작동한다. 관계가 멀어질 때는 대화의 질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칼 로저스는 ‘공감적 이해’를 관계의 핵심으로 보았다. 상대를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들어주는 태도, 그것이 관계의 깊이를 만든다. 하지만 우리는 대개 듣기보다 반박하려 한다. 그래서 마음의 문이 닫힌다. 대화는 정보의 교환이 아니라 감정의 교류다. 상대가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 우리는 배신당한 듯 외로움을 느낀다. 결국 관계의 단절은 말의 부재가 아니라 ‘진심의 부재’에서 비롯된다.


설득과 처세의 관점에서도 이직과 관계 단절은 다르지 않다. 『인간관계론』의 데일 카네기는 “비판은 상대의 마음을 닫게 한다”라고 했다. 회사를 비판하거나 상사를 탓하기보다, 스스로를 개선할 지점을 찾는 것이 현명하다. 설득의 핵심은 타인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변화를 먼저 보여주는 것이다. 떠나야 할 때도 비난이 아닌 감사로 마무리하면 그 이별은 다음 기회의 초대장이 된다.


조직은 생명체와 같다. 세포가 오래되면 죽고 새 세포가 태어나듯, 구성원도 주기적으로 교체된다. 하지만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나의 성장 방향과 조직의 비전이 교차하지 않는다면, 이미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그때는 과감히 떠나야 한다. 철학자 키르케고르는 “인생은 뒤돌아볼 때 이해되지만, 앞으로 나아갈 때만 살아진다”라고 했다. 완벽한 시점을 기다리면 영원히 떠나지 못한다. 지금의 불편함이 나를 다음 단계로 밀어내는 힘일 수 있다.


또한 ‘싫어짐’을 피하려 애쓰기보다 그 감정을 ‘관찰’ 해야 한다. 마음이 싫어질 때, 우리는 대개 상대나 환경을 탓한다. 하지만 프로이트는 “무의식은 타인을 통해 자신을 본다”라고 했다. 즉, 우리가 싫어하는 것은 종종 우리 안의 결핍이다. 상사에게 느끼는 오만함은 나의 열등감일 수 있고, 동료의 게으름은 내 안의 피로를 비추는 거울일 수도 있다. 감정을 분석하면 타인이 아니라 ‘나’를 이해하게 된다.


결국 성숙한 사람은 감정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 감정을 ‘생각의 데이터’로 활용한다. 뇌는 감정이 강한 사건을 더 오래 기억한다. 그래서 싫어짐을 단순히 참기보다 ‘왜’라는 질문으로 바꾸는 게 중요하다. 그 질문이 사고의 근육을 만든다.


직장생활의 궁극적인 목적은 생존이 아니라 ‘자기 확장’이다. 회사를 통해 배우고, 인간관계를 통해 성장하며, 결국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는 것이다. 이직은 도피가 아니라 방향 전환이어야 한다. 나를 작게 만드는 곳에서 벗어나 나를 크게 만드는 곳으로 이동하는 일, 그것이 진정한 ‘떠남’이다.


마지막으로 기억해야 할 것은 ‘좋은 떠남’의 기술이다. 이별을 준비하는 사람은 미움을 남기지 않는다. 정리된 마음으로 떠난 관계는 언제든 다시 연결될 수 있다. 반면, 감정에 휩쓸려 떠난 관계는 흔적만 남긴다. 뇌과학적으로도 긍정적 마무리는 세로토닌을 분비시켜 자기 효능감을 높인다. 떠남의 품격이 곧 인생의 품격이다.

회사든 인간관계든 결국 문제의 핵심은 ‘관계의 질’이다. 관계가 깊어지면 불편함도 함께 온다. 하지만 그 불편함을 견디는 힘이 성장이다. 스스로의 내면을 단단히 세운 사람은 어떤 관계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회사가 싫어질 때, 사람을 미워할 때, 먼저 나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지금 성장하고 있는가?” 그 질문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다면, 이미 떠날 준비가 된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우리는 배운다. 감정은 나를 흔들지만, 결국 나를 깨운다. 회사를 싫어할 권리도, 떠날 용기도, 남아 견딜 의지도 모두 ‘나’를 중심에 둘 때 생긴다. 그 중심이 바로 성숙이다. 감정에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의 방향을 선택하는 사람, 그가 진짜 어른이고, 진짜 프로다.




https://youtu.be/VksOSu7nm98?si=SECxlLkPHq9-AVW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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