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떤 어려움도 내가 해결할 때 내 인생이 시작된다

by 김형준

남보다 조금 빠른 출발이면 목적지에도 더 빨리 도착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서툰 도전은 전혀 다른 곳에 저를 내려놨습니다. 선택지에는 없던 종착지였습니다. 하루 아침에 백수가 됐고, 손에 남은 건 카드 빚뿐이었습니다. 월급도 못 받고 몇 달을 버틴 적도 많았습니다. 출퇴근과 끼니에 쓰는 생활비가 한 달 평균 30만 원이었고, 수개월은 카드 돌려막기 신공으로 버텼습니다.


결국 카드 한도가 다 차 버렸고 돌려막기는 더 이상 ‘기술’이 아니었습니다. 독립해서 살던 터라 집에 도움을 청하기도 어렵고, 형들도 사정이 비슷했습니다. 선택지는 사실상 없었습니다. 그러다 결국 친구에게 갔습니다. 나름 일찍 취업해 안정적인 삶을 사는 것 같아 보이던 친구였죠.


300만 원은 큰돈입니다. 쉽게 나올 수 있는 돈이 아니었죠. 몇 번을 찾아갔지만 손에 쥔 건 빈손뿐이었습니다. 상처였지만 지금 생각하면 이해합니다. 누구에게나 사정은 있으니까요. 결국 회생 신청까지 갔습니다. 그러나 조건이 맞지 않았고 그것조차 실패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몇 달을 카드사 독촉 전화와 함께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운 좋게 직장을 구했습니다. 첫 월급부터 갚기 시작해 1년 만에 카드 빚 700만 원을 모두 없애버렸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신기합니다. 도움은 받지 못했지만 스스로 해결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만약 그때 친구가 돈을 빌려줬다면?

아마 저는 백수 생활을 더 오래 즐겼을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연체를 막아주는 돈’은 즉각적인 고통을 멈추게 해주지만, 동시에 삶의 절박함도 없애버립니다. 인간은 고통이 사라지면 쉽게 안주합니다. 고통은 불편하지만, 때로는 변화의 연료입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도움의 역설’입니다. 도움을 받는 순간 문제는 멈추지만, 스스로 성장할 기회도 멈춘다는 것.


그때 저는 도움을 받지 못했기에 취직이 절실했고, 돈을 아꼈고, 다시 걷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또 다른 친구에게 취업 기회를 추천받아 숨통이 트였죠. 저를 믿었기 때문이 아니라, 더는 물러설 곳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억지로 멋지게 표현하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끝까지 버티고 스스로를 믿었기에 기회가 찾아왔다.”


여러분은 언제 도움을 요청하나요?

문제가 생기면 바로? 내가 할 수 있는 걸 다 해보고 나서? 아니면 아예 도움을 청하지 않나요?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은 두 종류입니다.

① 할 수 있는 걸 다 해본 후 요청하는 사람

② 시작부터 남에게 기대는 사람


전자의 마음속에는 ‘해결 의지’가 있습니다. 후자의 마음 속에는 ‘의존’이 있습니다. 이 둘의 차이는 결괏값을 극명하게 갈라놓습니다. 인간관계는 서로 돕고 살아가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모든 상황에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기대는 사람 역시 자기 사정이 있습니다. 거절은 차갑지만, 대부분은 차가워서가 아니라 여유가 없어서입니다.

그래서 도움을 청하기 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것입니다.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기효능감이라고 합니다. 행동심리학자 앨버트 반두라가 강조한 개념이죠.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순간, 인간은 실제로 더 높은 문제 해결력을 보입니다. 신기하지만 과학적으로 검증된 사실입니다.


결국 해결의 시작은 ‘능력’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반대로 나를 믿는 사람이 되면,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여유도 생깁니다. 오지랖이 아니라, 필요할 때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 말이죠. “나도 못 받았으니 너도 못 받아라”는 태도는 인생의 품격을 깎아먹습니다. 내 역량 안에서 타인을 돕는 건 결국 나를 위한 투자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의미 있는 기여’를 할 때 가장 큰 만족을 느끼니까요. 이것은 하버드대 인간발달연구에서도 반복적으로 입증된 사실입니다.

“행복한 사람일수록 베풀고, 베푸는 사람일수록 행복하다.”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도 있습니다. 고통을 피해 다니지 않고 자기 힘으로 극복했던 과거가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경험 때문에 지금은 타인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성공은 혼자 잘사는 게 아니라 자기를 믿는 힘으로 끝까지 간 사람에게 주어지는 작은 훈장입니다.


그렇다면 이상적인 인간관계는 무엇일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서로 기대지 않는 사람끼리 진짜로 기대줄 수 있는 관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있는 사람이 타인을 도울 수 있고, 자기 삶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타인의 삶도 존중합니다. 서로의 짐을 떠넘기지 않는 관계에서만 웃음이 오래 갑니다.


결국 결론은 단순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잃지 말라는 것. 그 믿음이 있어야 도움을 요청할 타이밍도, 도움을 줄 타이밍도 정확히 판단할 수 있습니다.

타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자신의 삶을 위해서.



https://youtu.be/izsj_abnPzU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외로움 나를 소모시키고, 고독은 나를 단련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