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 저는 고독과 외로움의 차이도 모른 채 스스로를 ‘고독을 즐기는 남자’라고 착각했습니다. 당시 지하철 공사 현장에서 근무하며 연휴에도 당직을 섰습니다. 다들 피하고 싶어 했지만, 저에겐 오히려 나만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좋은 미끼였습니다. 독립해 살던 시절이라 본가에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이었죠. 연휴 동안 식당이 문을 닫아 불편했지만, 적막한 사무실에서 밀린 일을 하고 영화를 보며 보내는 시간은 묘하게 만족스러웠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혼자 있음’이 아니라 ‘혼자 있고 싶다’는 감정이었습니다. 이게 바로 고독의 기본 조건이죠. 스스로 선택한 혼자임.
결혼 후에도 건설회사에서 일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는 회사 생활은 쉽게 번아웃을 불렀습니다. 역마살처럼 6개월, 1년 단위로 회사를 옮겼고, 월급이 밀리기도 했습니다. 어떤 회사는 버티다 도망치듯 나왔습니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번듯한 직장 하나 잡지 못했다는 생각에 자존감은 계속 내려갔습니다. 그럴 때마다 술자리를 찾았습니다. 누구보다 제가 먼저 친구들에게 연락했습니다. 술이야말로 현실을 잠시 잊게 해 줄 마취제라 생각했죠. 하지만 마취제는 통증을 없애지 않습니다. 잠시 감각만 흐릴 뿐이죠. 혼자 있으면 더 불안했고, 사람들을 만나도 마음은 비어 있었습니다. 이쯤 되면 고독이 아니라 외로움이었습니다.
심리학자 존 카치오포는 외로움을 “원하지 않는 고립 상태”라고 정의합니다. 외로움은 코르티솔을 높이고 스트레스를 유발하며, 길어지면 우울까지 이어집니다. 반대로 고독은 자발적 선택이고, 심리학에서는 이를 “건강한 정서적 충전 시간”이라고 부릅니다. 고독은 에너지를 회복시키고 창의성을 높입니다. 스티브 잡스, 헤밍웨이, 매리 올리버처럼 혼자 있는 시간을 잘 쓰는 사람일수록 성취도 높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외로움은 결핍의 감정이고, 고독은 충만의 상태입니다.
저는 외로움을 고독으로 둔갑시켜 술로 채우던 시절이 길었습니다. 그때 책을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도 ‘잔’을 채우며 의미 없는 위로를 찾고 있었을 겁니다. 책을 읽으려면 자발적으로 혼자가 되어야 합니다. 책은 주변의 소음을 멀리하고 조용히 ‘나와 마주할 시간’을 줍니다. 책을 읽고 사유하는 동안, 우리는 충만해집니다. 고독은 결핍을 메우는 시간이 아니라 생각을 키우는 시간입니다.
문제는 30대엔 시간이 없습니다. 아니, 있다고 하지만 스스로 만들지 않습니다. 바쁘다는 핑계 뒤에 숨는 거죠. 하지만 고독의 핵심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자발적인 단절”입니다.
스마트폰을 끄는 10분도 고독이고, 출퇴근 길 이어폰을 빼고 생각하는 시간도 고독입니다. 작은 시도로도 충분합니다. 그다음엔 스스로 원하는 것을 찾아보면 됩니다. 취미든 공부든 투잡이든 모두 가능합니다. 핵심은 ‘나를 위한 선택’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사람은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자신을 쉽게 잃어버립니다. 그 공백을 채우기 위해 술자리, 쇼핑, 게임, 유튜브 같은 자극을 찾습니다. 하지만 즉각적 자극은 행복감이 아니라 공허감을 더 키웁니다. 뇌과학에서는 이런 상태를 ‘도파민 루프’라고 부릅니다. 순간의 쾌감은 높지만 지속성이 없기 때문에 반복될수록 더 공허해집니다. 외로움이 만들어내는 착각입니다.
8년 전, 저는 두 번째 인생을 위해 작가라는 직업을 택했습니다. 작가에게 고독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글을 쓰려면 혼자 있고, 책을 읽어야 하죠. 그 고독의 시간 덕분에 저는 책을 출간했고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고독은 저를 흔드는 모든 외부 자극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방패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작가가 되라고 권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지금의 생활 속에서도 자발적 고독을 선택하는 법을 찾으라는 겁니다. 외로움 속 혼자가 아니라, 고독 속 혼자가 되는 것입니다. 고독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고, 외로움은 나를 소모시킵니다.
자발적 고독을 선택하는 순간, 삶은 흔들리더라도 마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침대 광고만의 문장이 아닙니다. 고독이 주는 평온함은 그 어떤 브랜드보다 강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