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은 말이 많은 것도 위험하고, 말이 너무 적은 것도 위험하다. 말주변은 스위치처럼 켜고 끌 수 있어야 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상황적 민감성’이라 부른다. 필요한 순간엔 의견을 명확히 하고, 필요하지 않은 순간엔 침묵으로 자기를 지키는 능력이다. 직장에서 이 스위치를 잘못 켜면 ‘무능’, ‘예민’, ‘까다로운 사람’ 같은 낙인이 붙는다. 반대로 잘 조절하면 말재주가 없어도 ‘듣는 힘이 좋은 사람’, ‘언행이 단단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얻는다. 직장인은 결국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의 무게를 아는 사람이 오래 살아남는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오해는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상사의 실수를 내가 떠안거나, 후배의 실수가 내 책임으로 둔갑하는 일은 일상이다. 이런 상황에 두 부류가 있다. 억울함을 풀기 위해 끝까지 설명하는 사람과, “언젠가 지나가겠지” 하고 침묵하는 사람. 어느 쪽이 정답일까? 정답은 없다. 다만 선택에는 항상 평판의 그림자가 따라붙는다.
명확한 상황이라면 해명은 의무이지만, 직장에서는 명확한 상황이 드물다. 조직은 늘 누군가의 체면을 지켜야 하고, 누군가의 책임을 덜어줘야 하며, 때로는 윗사람의 실수를 아랫사람이 감싸야 굴러간다. 그래서 사회 초년생에게 “억울하면 삼켜라”는 조언이 사라지지 않는다. 뇌과학에서도 억울함을 즉각적으로 표출하면 감정이 더 증폭된다고 말한다. 감정을 잠시 눌러두면 오히려 안정적 판단이 가능해진다.
나는 20년 직장생활을 하고 부장을 달았다. 직급이 올라가면 오해가 줄어들 것 같지만, 오히려 더 늘어난다. 업무는 복잡해지고 이해관계는 커지고, 책임은 더 무거워진다. 현장 업무 중 납기일 문제로 오해를 받은 적이 있다. 분명 상대가 날짜를 착각했지만, 그 순간 내 해명은 모두 변명으로 들렸다. 그때 나는 침묵을 선택했다. 억울하다고 격하게 해명하면 그 자리에서는 시원할지 몰라도, 감정의 골만 깊어졌을 것이다. 대신 사과했고, 잊었다. 시간이 지나 우연히 내용을 알게 된 사람들이 진실을 전했고, 상대도 먼저 사과했다. 만약 그때 내 입장만 고수했다면? 그 사건은 아마 평생 ‘불편한 인연’으로 남았을 것이다. 침묵은 억울함을 잠시 묻는 대가로, 더 큰 갈등을 막아주는 보험 같은 역할을 한다.
직장에서 침묵이 언제나 옳은 건 아니다. 하지만 필요할 때 침묵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손해를 본다. 특히 상사와의 충돌에서는 이성적 승자도 감정적 패자가 되기 쉽다. 상사를 논리로 이기는 순간 카타르시스는 있을지 몰라도, 직장에서는 그게 승리가 아니다. 직장은 논리보다 감정이 우선하는 공간이고, 감정보다 서열이 우선하는 공간이다. 조직은 ‘옳음’보다 ‘유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억울함을 느껴도 물러설 줄 아는 태도, 상대를 적으로 만들지 않는 태도는 결국 자기 앞날을 위한 선택이다.
나는 말주변이 부족해서 침묵을 선택해 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알았다. 침묵은 겁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기감정을 관리할 줄 아는 힘이라는 것을. 상대도 할 말이 있을 텐데 내 주장만 세게 내밀면 대화는 싸움이 되고, 싸움은 결국 둘 다 손해가 된다. 특히 상사에게 강하게 나가면, 끝나고 얻는 것은 하나도 없다. 조직은 감정 폭발보다 감정 조절 능력을 높게 평가한다. 심리학자 다니엘 골먼이 말한 ‘감정조절력’이 성공의 핵심 역량이라는 말은 직장에서 특히 실감 난다.
사람들은 중도를 색이 없는 태도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중도야말로 가장 강한 색이라고 생각한다. 자기감정을 이기고, 오해를 견디고, 때로는 진실마저 내려놓을 줄 아는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태도다. 이것은 비겁함이 아니라 성숙함이다. 흔들리되 무너지지 않는 중심을 가진 사람만이 중도를 지킬 수 있다. 직장은 결국 관계의 연속이다. 관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싸움보다 유지, 폭발보다 관리, 즉각적 승리보다 장기적 평판을 택할 줄 알아야 한다.
오늘도 마음속에서는 수백 번 말하고 싶겠지만, 입은 조용히 문을 닫는다. 내가 침묵했기에 지킬 수 있었던 관계들이 있다. 내가 말을 삼켰기에 잃지 않았던 기회들도 있다. 그래서 나는 믿는다. 말주변이 없어도 괜찮다고. 중요한 건 말의 양이 아니라 말의 방향이라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대 철인의 말로 내 생각을 정리한다. “남이 뭐라 하든, 나는 나의 언행을 바르게 가지겠다.” 이 마음으로 하루를 버티고 내일을 건너는 것이 직장인의 오래가는 힘 아닐까 한다.
https://youtu.be/izsj_abnPzU?si=lCPiI0tH-l2f_D1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