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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잘 안다는 착각

by 김형준

우리는 대화를 통해 상대의 생각을 이해한다. 정보가 쌓일수록 선입견은 줄고, 경계는 낮아진다. 심리학자 고든 올포트는 “선입견은 정보의 빈칸을 마음대로 채워 넣는 인간의 습관”이라고 했다. 실제로 뇌과학에서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편도체가 경계 신호를 보내고, 시간이 지나 정보가 쌓여야 비로소 ‘안전하다’는 판단을 내린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 만난 사람에게는 말투도 조심스럽고 감정도 절제한다. 독서모임에서 그랬다. 처음에는 서로 말끝을 다듬고 적당한 거리에서만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몇 번 더 만나고, 서로의 책 취향과 살아온 작은 조각들을 공유하자 경계가 서서히 풀렸다. 그제야 속내를 나누는 대화가 가능해졌다. 결국 정보가 늘어나야 마음이 열린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 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원리는 가족에게만큼은 작동하지 않는다. 오래 함께했다고 해서 잘 아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옛날의 정보”로 서로를 규정하고, 업데이트도 없이 오래된 이미지로 바라본다. 그래서 가족은 가장 가까운데 가장 낯선 존재가 되기도 한다. 대화가 줄면 정보가 줄고, 정보가 줄면 선입견이 자란다. 가족이 남보다 더 어색하게 느껴질 때조차 있다. 사춘기 때 형성된 감정이 성인이 될 때까지 바뀌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버드 정신의학 연구에 따르면, 사춘기 시절 부모와의 갈등은 뇌에서 “정서적 위협”으로 저장되기 때문에 성인이 된 후에도 동일한 패턴을 반복한다고 한다. 내 경우가 그랬다. 사춘기부터 부모님과 대화를 하지 않았고, 그 감정은 독립 이후에도 풀리지 않았다. 나는 부모님의 다툼을 이해하지 못했고, 형들에 대한 불만도 스스로 가진 판단으로 굳혀버렸다. 그 판단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틀렸다”라고 마음속에서 결론을 내려버렸기 때문이다. 이렇게 마음을 닫아버리면 시간이 지나도 쉽게 열리지 않는다. 깨고 싶어도 쉽지 않은 벽이 되는 법이다.


하지만 모든 관계가 나처럼 굳어지는 건 아니다. 독서모임의 한 멤버는 독립 후에 오히려 가족과 더 친밀해졌다고 했다. 자주 보지 않으니 만날 때마다 애틋해지고, 당연하게 여겼던 부모님의 수고가 비로소 보였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깨달았다. 관계를 살리는 건 ‘양’이 아니라 ‘질’이라는 사실을. 짧은 대화라도 진심이 담기면 거리감이 순식간에 좁혀진다.


관계심리학에서는 이를 ‘정서적 유효시간(emotional airtime)’이라고 부른다. 상대의 진짜 말에 귀 기울인 시간이 관계를 회복시키는 핵심이라는 의미다. 결국 마음을 열어야 질 좋은 대화가 나온다. 마음을 여는 건 기술이 아니라 선택이다. 누군가 먼저 한 발 내딛는 순간, 관계는 바뀌기 시작한다.


가족이 남보다 못해지는 이유는 하나다. 서로를 잘 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익숙함이 이해를 보장하지 않는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더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래서 오해가 쌓여도 풀지 않고 방치하고, 그 방치가 또 다른 벽을 만든다. 하지만 답이 없는 문제라고 해서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관계는 정답이 아니라 ‘경험적 해결’이기 때문이다.


작은 시도라도 해보면 관계는 변한다. 먼저 한 마디 건네는 것, 예전의 감정을 조금은 유연하게 바라보는 것, 상대의 입장을 잠시 상상해 보는 것.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인지적 재평가’라고 부른다.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 바라보며 감정의 강도를 낮추는 방법이다. 나를 괴롭히던 감정도 재평가하면 완전히 다른 감정으로 바뀌기도 한다.


오늘의 한 문장이 내일의 관계를 바꿀 수 있다. 선입견은 시간을 먹고 자라지만, 진심은 순간을 뚫고 들어온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놓인 긴 침묵도 결국 대화로만 녹일 수 있다. 관계는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움직여야 살아 있는 법이다. 닫힌 문도 손잡이를 잡으면 열린다. 문이 열리면 그제야 알게 된다. 우리는 사실 서로를 잘 몰랐을 뿐, 몰랐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 관계는 그렇게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다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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