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끊은 후부터 연말을 조용히 보내왔습니다. 불러주는 곳이 없으니 굳이 먼저 찾아갈 곳도 없지요. 그렇다고 외딴섬에 혼자 사는 삶은 아닙니다. 꼭 필요한 사람과 자리에만 참석하려고 합니다.
이번 달 들어 처음 참석한 연말 행사가 어제 있었습니다. 사람들 틈에 가만히 앉아만 있었는데 피로가 밀려왔죠. 3시간 남짓 진행된 행사가 끝나고 뒤풀이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곳에 가면 몸은 둘째치고 일찍 집에 가는 건 어려울 것 같았죠. 양해를 구하고 8시쯤 지하철을 탔습니다.
신사역에서 3호선을 탔습니다. 지하철은 압구정역을 빠져나와 한강이 보이는 동호대교를 올라탔습니다. 열차가 지하에서 빠져나올 즘 안내 방송이 시작됐습니다. 기관사가 말을 합니다.
"우리 열차는 야경이 아름다운 한강을 지날 예정입니다. 가시는 길에 잠시 밖을 보며 마음의 안정을 찾으면 좋겠습니다.(몇 가지 멘트가 계속 이어졌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네요) 끝으로 내리시기 전 오늘 하루 동안 쌓였던 모든 피로는 열차에 두고 내리시기 바랍니다. 제가 운행하는 동안 잘 담아두었다가 종착역에서 버리도록 하겠습니다. 댁까지 가시는 길 편안하시길 바랍니다."
듣고 있으니 얼굴에 미소가 번졌습니다. 예전에 유퀴즈에서 2호선 열차 기관사가 이런 안내 방송을 한다고 출연했더랬죠. 어제 만난 3호선 기관사도 조금은 투박했지만 승객에게 잠시나마 위로와 응원을 전해줬습니다. 내가 먼저인 요즘 같은 때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돋보였습니다.
이런 경험 그냥 홀려보내는 게 아쉬워 스레드에 4줄로 썼습니다. 이제까지 4만 5천 명이 읽고 3천여 명 이상 좋아요를 눌렀습니다. 댓글에는 "훈훈하다", "낭만 기관사", "부럽습니다", "저도 들어보고 싶네요" 등등 읽을수록 따뜻해지는 글이 이어졌죠.
생각해 보면 기관사도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열차 운행에만 신경 써도 맡은 일에 최선을 다 한 거죠. 어느 분이 댓글을 달았더라고요. 기관사 사이에서도 저 같은 안내 방송하면 좋은 소리 듣지 못한다고요. 괜히 튀는 행동한다고 뒤에서 수군대기도 한다 더라고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안내 방송을 한 기관사도 여느 동료처럼 묵묵히 운행에만 집중하면 그만입니다. 방송한다고 고가를 더 받는 것도 아니겠죠. 그래도 굳이 승객에게 따뜻한 말을 건넨 건 그분이 직업을 대하는 태도에서 비롯되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출발역부터 종점까지 못해도 2시간 이상 혼자 운행할 겁니다. 보이는 것은 빛이 들지 않는 터널이고, 간간이 밖을 보는 게 전부겠지요. 또 지루하다고 스마트폰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운전대를 잡은 동안에는 오로지 운전에만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그 시간 동안 자기와의 싸움이고 외로움과 고독이 함께할 것 같습니다. 같은 상황도 마음먹기에 따라 다르게 만들 수 있습니다. 적어도 그 기관사는 한강 야경을 감상하는 여유를 가졌고, 자신이 책임지는 승객에 대한 배려가 몸에 배었다고 할 수 있죠. 그런 멘트 아무나 하지 못할 테니까요. 여유와 책임감이 용기 내게 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 각자 자리에서 남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일이 대단하지 않아도 됩니다. 행동 이전에 마음이 먼저일 테니까요. 상대의 마음이 전해진다면 아무리 사소해도 빛이 나기 마련입니다. 그런 작은 마음이 더 따뜻한 사회를 만드는 시작이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