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을 기대했나? [스토너-존 윌리엄스]

by 김형준


"나는 이 소설에서 무엇을 기대했나?"

독서모임에서 선정하지 않았으면 언제 읽을지 모를 소설이었다. 워낙 여러 곳에서 추천해 제목만 알았다. 유명하니 더 손이 가지 않았다. 나는 좋다는 건 일단 제쳐놓고 보는 성격이다. 마음과 손이 움직일 때 비로소 책을 잡는다. 반강제로 이 책을 정했으니 읽기는 해야 했다. 시작하기 전 내 마음이었다.

"나는 이 소설에서 무엇을 기대하나?"


사실 이 문장은 이 소설의 핵심이다. 스포일러나 다름없다. 아마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안다. 이 문장이 갖는 의미를 말이다. 이 한 문장 때문에 오랜만에 통곡했다. 책을 덮자 설움이 밀려왔다. 지금까지 살아온 순간이 영화필름처럼 이어졌다. 나는 무엇을 기대하며 지난 8년을 버텨왔는지 되물었다. 그 물음에 답을 할 수 없었다. 8년 전 꿈꿨던 모습에는 못 미쳤기 때문이다.


나는 지난 8년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한다. 직장에 다니며 퇴직을 준비했고, 개인 저서 4권 포함 12권 출간했고 책 쓰기 코치로 내 사업을 이어왔다. 직장인에서 직업인으로 역할 전환은 만족스러웠다. 아쉽게도 수입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 그래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부딪치면 또 다른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거로 믿었다. 그 믿음으로 퇴직을 결단했다. 그리고 지금 6개월째 1인 기업가로 살아 내는 중이다.


사실 나는 우유부단하다. 스토너가 아내와 딸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듯이. 늘 선택 앞에서 망설이거나 안전한 길을 택했다. 그러니 변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스토너의 우유부단이 아내를 더 방황하게 했고, 딸도 스스로 자포자기식 선택을 하게 했으니 말이다. 만약 그가 좀 더 적극적으로 둘 사이를 개입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그가 말하는 실패한 인생과는 거리가 멀었을 거로 짐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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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장애가 있었던 나도 책 덕분에 원하는 것을 찾게 되었고, 기꺼이 도전했다. 스토너도 문학을 만나면서 180도 다른 인생을 살게 된다. 책에서 삶의 북극성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는 그 별을 따라 평생을 바쳤다.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면서 말이다. 물론 그 과정이 녹녹치 않았다. 정치를 할 줄 몰라 불이익도 받았다. 처신을 잘못해 주변 사람 입에 오르기로 했다. 그래도 그는 학문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나도 지난 8년 동안 뜨거웠다. 그랬기에 지금 퇴직 후 내 일을 하고 있다. 만약 책을 통해 작가라는 직업을 만나지 못했다면 여전히 별 볼일 없는 직장인으로 살고 있었을 터다. 다행히 작가는 나를 태우기에 충분했다. 이만큼 만족도 높은 직업은 드물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선택까지 어려울 뿐, 한 번 결심이 서면 평생 가치 있고 충만한 삶을 보장받는다. 물론 나 하기 나름이겠지만.


스토너는 원칙주의자이다. 적당히 타협하는 게 없다. 교내 정치에 둔감한 탓에 스스로 화를 자초했다. 신념을 굽히지 않았기에 스스로 만족해했을지 모르지만, 그로 인한 불이익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어야 했다. 그가 교직에서 물러나는 그 순간까지도. 나는 타협을 잘한다. 합리화도 필요하면 한다. 그게 정치라면 그걸 따른다. 굳이 스스로 불길 속으로 뛰어들지 않는다. 사람 사는 모습 거기서 거기일 테니 말이다.


이 책은 시작부터 끝까지 평이하게 이어진다. 스토너의 일생을 어떤 연출 없이 카메라 한 대가 조용히 따라가는 듯 이어진다. 앵글 안 그는 때로는 무기력하고, 한때는 열정에 불타올랐고, 어느 순간 무대 뒤편으로 쓸쓸히 걸어 들어갔다. 관객 아니 독자는 그의 등 뒤에서 가만히 따라간다. 어쩌면 이 소설의 가장 매력은 숨죽이고 따라가는 데 있다. 다음에 어떤 장면이 이어질지 잔뜩 기대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반전은 없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어느 순간 반전이 전개될지 숨죽였다. 하지만 당연한 듯 어느 순간 카메라는 꺼진다. 책을 덮기 전 스토너는 나에게 묻는다.

"너는 무엇을 기대했나?"


나는 무엇을 기대하고 이제까지 살아왔을까? 이미 지난 시간은 중요하지 않다. 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앞으로 다가올 시간 "나는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이다. 어떤 기대를 갖느냐에 따라 오늘 내가 무엇을 할지 정해진다. 오늘 무엇을 했느냐에 따라 어제의 나에 만족해하고, 내일의 나에게 희망를 갖게 된다. 매 순간 만족한 삶에 후회가 남지 않을 것이다.


후회가 남지 않는 인생이라면 기대할 게 없어도 좋다. 기대는 지금이 만족스럽지 않을 때 감정이다. 반대로 지금에 만족한다면 굳이 다가오지 않은 시간에 괜한 기대 갖지 않을 것이다. 기대와 실망은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등을 맞대고 있을 테니까. 오늘을 충실히 살면 기대와 실망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매 순간 후회 없이 사는 거다. 그 순간이 충분히 쌓인다면 죽음 앞에서도 당당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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