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크 한 조각에 영혼을 팔았다

by 김형준

언제나 합리화로 시작합니다. 'PT를 빡세게 받았으니 이 정도는 먹어도 괜찮아' 의지는 식탐 앞에서 순식간에 무너집니다. 케이크 한 조각을 단숨에 흡입했습니다. 먹을 때 죄책감은 없습니다. 운동을 열심히 한 자신에게 보상이라고 속삭입니다. 눈앞에 케이크가 사라지는 동안 슬금슬금 이성이 올라옵니다. '괜히 먹었나? 다 먹고 나면 혈당스파이크 올 텐데, 정신이 몽롱해지고 집중력도 떨어지는데' 머릿속 생각과 행동은 따로 놉니다. 기어코 한 조각을 다 먹고 후회합니다.


혈당이 올라 정신이 흐려지기 전에 이 글을 마무리할 작정입니다. 사람에게 의지는 신기루나 다름없습니다. 처음에는 손에 잡은 것처럼 굳은 의지로 계획을 세웁니다. 며칠 못 가 자신을 괴롭히는 일이 생깁니다. 슬쩍 핑계를 대고 다음 날로 미룹니다. 처음이 어렵지 다음 그다음 갈수록 죄책감은 사라집니다. 그러니 의지를 믿지 말고 습관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습관은 의식에 저항 없이 언제든 저절로 하는 걸 말합니다. 의지가 개입하지 않은 무의식에서 같은 행동을 반복해 내는 것이죠.


지금 이 글도 무의식, 습관으로 써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중입니다. 지난 8년 동안 매일 쓰면서 만들어진 습관을 믿습니다. 이제까지 만들어진 습관이 무의식에 자리했고, 지금처럼 혈당이 오르는 와중에도 손가락이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길 바라죠. 사실 지금 이 순간의 의식도 단맛에 의해 흐리멍덩해지고 있는지 모릅니다. 부지런히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지만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내뱉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일단 시작했으니 습관에 의지해 떠오르는 생각을 정성껏 흰 종이에 옮겨 적어 봅니다.


실은 요즘 들어 글 쓰는 게 부담입니다. 백지의 공포일 수도 있고, 생각이 딴 데 가 있는 걸 수도 있고, 아니면 글태기가 심하게 와서 마냥 손을 놓고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써야지 써야지 생각은 많지만 정작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결국 얼렁뚱땅 쓰고 나면 자책합니다. '언제까지 이럴 거야'라면서요. 언제까지 이럴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벗어날 방법이 있다면 배우고 싶습니다. 동료 작가의 조언을 들어도 마음에 와닿지 않습니다. 사람은 다 다른 법이니까요. 상대방에게 효과 있는 방법이 저에게는 무용지물일 수 있죠.


그렇다고 언제까지 자책만 하고 있을 수 없습니다. 방법도 극복도 스스로 해야 합니다. 이때 필요한 게 의지가 아닌 습관일 것입니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작가들이 입을 모아 말합니다. "글태기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하기 싫은 일을 습관처럼 해야 한다"라고 말이죠. 맞는 말입니다. 하기 싫다고 버티면 결국 나만 손해입니다. 더 깊은 땅굴을 파고 들어가는 꼴이죠. 하기 싫을 때 해야 그나마 더 깊이 파고 들어가지 않게 됩니다. 현상 유지이죠. 그러니 의지가 아닌 습관으로 글을 써야 하는 게 방법입니다.


알면서도 하지 못하는 게 더 큰 문제입니다. 이 상황에서 벗어나길 바란다면 아는 대로 행동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걸 하지 않겠다면 더 좋은 방법이 있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더 좋은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담아둔 말을 꺼내면 조금은 후련합니다. 해결책을 찾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누가 들어도 상관없습니다. 빈 종이에 한 글자씩 각인하는 동안 생각과 마음이 조금은 정리될 수 있을 테니까요. 결국 모든 문제의 답은 내 안에 있는 게 맞습니다. 내가 답을 찾지 못한 문제는 어느 누구도 해답을 줄 수 없을 것입니다.


카페에 들락날락하는 손님들 덕분에 밤공기가 몸으로 전해집니다. 이쯤 되면 혈당이 제법 올랐을 텐데 여전히 정신을 붙잡고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네요. 아마 습관이 의지를 이겨내고 있는 중인가 봅니다. 벌써 30줄 넘게 써냈으니 말입니다. 이제까지 쓴 글이 엉망이어도 상관없습니다. 지금 내 심정을 솔직하게 풀어내는 게 저에게 더 필요하죠. 퇴고는 중요치 않습니다. 이런 날것의 글이 오히려 저에게 도움을 줍니다. 마음껏 쏟아내고 나면 후련해지고, 또 꾸역꾸역 한 편 완성하면 성취감도 들겠죠.


가만히 보면 지난 8년 허투루 살지 않았나 봅니다. 지금처럼 절박한 상황에서도 손가락이 움직이니 말입니다. 이런 저를 칭찬해야겠습니다. 평소 글이 써지지 않는 것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겠습니다. 글쓰기를 포기하는 게 아니니 기회를 주는 게 맞겠죠. 조금 느리고 돌아가면 어떤가요. 멈추지 않으면 됩니다. 이제 50입니다. 앞으로 적어도 30년 더 쓸 수 있습니다. 요 근래 몇 주 방황했다고 인생 끝나게 아닐 텐데 말이죠. 조금 더 나에게 관대해져야겠습니다. 먹고 싶은 것도 먹여주면서 말이죠.


그러고 보니 결국 합리화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글이 써지지 않는 건 핑계였나 봅니다. 운동을 열심히 했다는 것도 꽤 좋은 이유죠. 달다구리 한 케이크 한 조각 먹겠다는 구차한 변명이었습니다. 이 변명 합리화시키기 위해 여기까지 써내려 왔네요. 개똥철학으로 내 행동을 합리화해도 좋습니다. 엉터리 글을 써도 이해합니다. 이래도 저래도 결국 저는 글 한 편 써냈습니다. 퇴고는 하지 않을 작정입니다. 날것 그대로 보여줄 것입니다. 원래 잘 쓰지 못하는 글이니까요. 이 글을 쓴 것도 결국 '나'이겠죠. 이참에 나를 더 아껴야겠습니다. 지금까지도 잘해왔고, 앞으로도 잘할 거라고 믿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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