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머니(3)
사춘기를 지나면서 가족과 대화가 줄었다. 쌍방이 아닌 일방이었다. 스스로 가족과 대화를 단절했다. 형들과도 깊이 있는 대화는 나누지 않았다. 부모님과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니와 특히 더 그랬다. 24살부터 독립했고 가끔 본가에 갈 일이 있어도 대화는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정적이 편했다. 어머니도 이런 나에게 가끔 불만을 담아 한 숨 쉬듯 말 좀 하라고 하셨지만 그럴수록 더 할 말은 없어졌다. 독립 이후 나는 내 결정대로 삶을 살았다. 결혼 전 까지는 별다른 충돌 없이 지냈다. 결혼을 준비하며 어머니와의 부딪힘은 극에 달했다.
두 형에 앞서 내가 먼저 결혼식을 올렸다. 어머니는 그것조차 신경이 쓰였다. 그래도 형들이 먼저 가야 한다고 푸념처럼 내뱉곤 하셨다. 어머니의 마음엔 동의 하지만 같은 말이라도 두 번 할 거 한 번만 해줬으면 했다. 먼저 가는 내 입장에선 들을 때마다 죄책감을 가져야 할 것 같았다. 물론 그런 의도는 아니란 걸 알지만 적어도 내 입장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 주셨으면 했다. 준비하는 과정도 순탄하지 않았다. 상견례 날을 잡는 것부터 부딪혔다. 아내와 1년 반 연애를 했다. 양가 부모님이 인정한 상태였고 결혼식만 올리면 될 정도였다. 상견례는 결혼식의 어색함을 없애기 위해 결혼 전 양기 부모님이 대면하는 정도의 형식적인 자리였다. 우리는 편하게 만나길 바랐다. 어머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신 것 같다. 상견례 날짜도 좋은 날을 택해야 한 다며 몇 차례 바꾼 뒤에야 겨우 잡을 수 있었다. 상견례를 시작으로 모든 일정은 어머니의 뜻을 따라야 했다. 수도 없이 어머니와 부딪혔다. 집안의 첫 잔치라 많이 신경 쓰시는 건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 뜻 보다 당신의 의견을 더 완강하게 고집하셨다. 자식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라 생각했지만 거듭 될수록 나의 이해심은 극에 달해갔다.
결혼 후 1년 뒤 큰 딸이 태어났다. 어머니에겐 첫 손녀였다. 할머니로서 첫 순녀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싶다고 하셨다. 우리 부부에게도 첫 딸이었지만 아내와 상의 후 어머니에게 양보하기로 했다. 미신을 믿는 분이라 수 십만 원을 주고 작명원에서 지었다면 종이 한 장을 건넸다. 연세 있는 분이 지어서 세련된 느낌은 없었다.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어머니 뜻이라 그중 하나를 선택했다. 맘에 안 든다고 하면 다시 부딪칠 것 같아 조용히 따르기로 했다.
아이는 첫돌이 될 때까지 장모님 손에서 자랐다. 일흔에 가까운 나이에 갓난아기를 돌보셨다. 장모님은 막내인 아내가 걱정되셨는지 흔쾌히 봐주시겠다고 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출산 후 다시 맞벌이를 할 수 있었다. 장모님의 보살핌 덕분에 큰 아이는 건강하게 첫 돌을 맞았다. 제법 규모가 있는 뷔페를 빌려 돌잔치를 했다. 양가 친척 및 지인이 모인 자리 뜻 하지 않은 일이 있었다. 돌잡이까지 마무리될 즘 사회자가 손님들에게 인사를 전하라며 마이크를 건네줬다. 귀한 시간 기꺼이 함께 해준 손님에게 감사함을 표하고, 그동안 아이를 돌봐 주신 장모님께 인사를 건넬 때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아이가 3개월쯤 됐을 때 하루는 장모님에게 다급한 전화가 왔다. 아이가 열이 너무 많이 나 급하게 응급실을 찾았다고 하셨다. 서둘러 병원에 갔고 아이 곁을 지키던 장모님을 뵐 수 있었다. 뒤늦게 들었는데 장모님은 얼마나 놀라셨는지 2월의 추워에 옷도 제대로 못 챙겨 입고 무조건 응급실로 뛰었다고 했다. 장모님의 헌신 덕분에 아이는 제 때 조치를 받을 수 있었다. 이후 검사 결과 요로감염이었다. 아이들에게 종종 생길 수 있고 치료만 잘하면 건강해질 거라고 했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 입원 치료 뒤 퇴원할 수 있었다. 이때의 기억이 떠올라 눈물이 났고 이는 장모님의 헌신에 대한 고마움이 담겨 있었다. 갑자기 우는 내 모습에 함께 있던 손님도 당황하셨다. 그렇다고 구구절절 풀어놓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돌잔치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 상황을 조금 다르게 보셨던 것 같다.
며 칠 뒤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전해 들었다. 돌잔치에서 내가 흘린 눈물 때문에 어머니가 서운해하셨다고 한다. 그 이야기의 출발점은 막내 이모님이었다. 그날 함께 했던 이모님이 내가 우는 모습 뒤 어머니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며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걸 들은 어머니도 맞장구를 쳤다. 당신에 대한 언급도 없었고, 하물며 장모님 때문에 우는 아들을 보니 서운하셨다고 한다. 그게 서운해야 할 일이었을까?
전후 사정을 알든 모르든 이모님이 한 말에 장단을 맞추는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내 성격에 일일이 설명하는 것도 싫었다. 이렇게 글로 쓸 정도로 아직 마음에 앙금이 남아 있다.
앞서 두 편과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어머니와 틀어진 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고 싶어서이다. 열 흘이 넘게 어머니와 냉전중이다. 이전과 다르게 내 감정을 조절하는 게 어렵다. 여러 상황이 복합되어 지금 감정을 만들어 낸 것 같다. 하나씩 끄집어내며 내 안의 나를 천천히 바라보려고 한다. 한 번은 꼭 거쳐야 할 일이라 생각한다. 지금이 그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