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을 때 잘해!
남의 편 대신 아내 편이 되면 가정이 평화롭다.
by
김형준
Oct 2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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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다른 계획 없이 시작한 휴가가 별다른 일 없이 끝나간다.
혼자 놀자니 할 수 있는 게 없다.
아이들은 학교로,
아내는 직장으로 보내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게 전부였다.
그마저도 두 어시간이다.
아이들을 보내고 난 뒤 글 한 편 쓰고 나면 하교 시간이다.
첫날은 큰 아이 병원 갖다 보니 하루가 끝났다.
둘째 날도 우체국 한 번 다녀오니 오전이 끝났다.
셋째 날도 오후에 큰 아이 병원 다녀오고 작은 아이 마중하니 끝났다.
넷째 날은 그나마 오후까지 내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오늘 점심 약속이 휴가 중 가장 큰 이벤트다.
두 아이는 초등학교를 다니지만 손이 안 갈 수 없다.
걷기 시작하면 어린이집 가면 좀 낫겠지,
유치원 다닐 땐 초등학생 되면 좀 낫겠지,
초등학교 입학하면 고학년 되면 낫겠지,
정작 고학년이 되어도 손이 가는 건 마찬가지다.
깨우고 먹이고 입혀서 보내는 것 까지 아직은 손을 필요로 한다.
그동안 아침 준비와 저녁 준비는 아내의 몫이었다.
5일간 아내와 협업하며 아이를 보내보니 만만하지 않았다.
아내가 늘 하던 일에 내가 거들었을 뿐인데도 분주하다.
만약 아내의 자리가 빈다면.
우리 주변엔 아버지가 아이를 키우는 가정이 적지 않다.
갓난아기부터 다 자란 청소년까지 다양하다.
그들에게도 엄마의 자리가 있었을 거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엄마의 부재는 아이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따져보면 성인이 되어 완벽히 독립하기 전까지 부모의 손이 안 미칠 수 없다.
특히 엄마의 손길이 성장기 아이를 안정적으로 키우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두 딸을 키우다 보니 정작 아이들에겐 아빠의 거친 손 보다 엄마의 세심함이 절실하다.
아이의 머리를 묶어주는 내 손과 엄마의 손길은 비교할 수 없다.
내 딴에 열심히 묶어줘도 얼마 버티지 못하고 산발이 되기 일수다.
이런 작은 것 하나도 엄마와 아빠의 존재감은 다르다.
그래도 혼자서도 엄마 못지않게 훌륭하게 잘 키우는 아버지도 분명 있다.
얼마 전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에서 홀로 아이를 키운 중년의 참가자 사연이 소개되었다.
어린아이를 두고 떠난 아내를 대신해 가수의 꿈을 접고 열심히 키웠고,
더 늦기 전에 꿈에 도전해보라는 아이들의 권유로 참가하게 되었다고 전했다.
사연을 전하며 그 간의 일들이 떠올랐는지 눈시울을 붉히는 모습을 봤다.
어떤 시간이었을지 짐작할 순 없었지만, 나도 아이를 키우다 보니
아내의 부재를 못내 아쉬워하는 그분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아내, 엄마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봤다.
은유 작가의 에세이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내용 중 여성학자 정희진의 말을 옮겨 놓은 부분이 있다.
"전통적으로 성과 사랑의 주체는 남성이지만,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동은 여성이 담당한다.
여성이 노동을 그만두는 순간 대부분의 관계도 끝난다."
한 가정을 이룰 때 남자와 여자의 역할은 구분되어 있었다.
시대가 변하면서 역할 구분의 경계는 흐릿해졌다.
경계가 흐릿해지면서 성별로 구분 짓기보다 능력 우선이 되었다.
가정도 능력에 따라 역할을 바꾸기도 한다.
일부 기업이긴 하지만 남자의 육아 휴직을 권장하는 문화가 자리 잡아가고 있다.
짧은 기간이지만 서로의 역할을 대신해 봄으로써 인식에 적지 않은 변화가 생겼다.
하지만 일정 시기 이후엔 가정 내 엄마의 역할 비중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가정을 유지하는 일상적인 노동 즉,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 등의 주체가 자연스레 넘어가게 된다.
그렇게 십수 년 가정을 유지한 뒤 더 이상 역할을 필요로 하지 않을 즈음 손을 떼게 된다.
그 무렵 졸혼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아이에게 엄마가 채워줄 수 있는 부분이 있고,
아빠만의 역할이 필요한 부분이 존재한다.
부모의 역할분담이 아이의 정서발달과 사회성을 키우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아이가 스스로 설 수 있을 때까지 부모로서 역할을 해 준다면 좋겠지만 그렇게 안 될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뜻하지 않은 결과로 인해 의지대로 되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은 일어나게 된다.
반대의 경우라면 각자의 역할이 중요할 거다.
아이가 온전히 성장할 수 있도록 합심해야 한다면
역할을 구분 짓기보다 경계를 없애는 노력도 필요해 보인다.
아내는 남편을
남편은 아내를
존중하고 이해하고 인정해 줌으로써
서로에게 보다 충실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세상에서 나를 제일 몰라주는 남의 편 '남편' 대신,
적어도 가정 안에서는 아내를 지지해 주는 내편이 된다면
이보다 화목한 가정이 없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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