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이자리를 지켜냈습니다.

by 김형준

1.44㎡ 내 책상의 크기입니다. 모니터 두 대, 키보드, 마우스, 필기구함, 3단 서류함, 계산기, 스탬플, 전화기가 공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3단 서류함을 차지하고 있는 적당히 숙성된 몇 서류 뭉치는 몇 개월에 한 번씩 정리합니다. 이 서류 뭉치를 바로 버리지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버리고 나면 꼭 찾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입니다. 마치 ‘머피의 법칙’ 같은 겁니다. 숙성을 거친 서류들을 날 잡아 정리하는 게 습관이 되었습니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들 제외한 빈 공간에서 업무를 봅니다. 보고서를 꾸미고, 견적을 받고, 거래처와 흥정하고, 설계 도면을 검토하고 수정 등을 합니다. 치열하게 보낸 하루도 있었고, 이렇게 한가해도 되나 싶은 하루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어떤 하루를 보내든 퇴근 전 꼭 치르는 의식이 있습니다. 하루를 보낸 흔적을 정리하는 겁니다.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것들은 원래 자리를 찾아주고, 하루의 흔적들을 정리하며 다시 빈 공간으로 되돌려 놓는 겁니다. 이렇게 정리해 놓으면 다음날 아침 새로운 기분으로 시작할 수 있게 됩니다.

일이 미숙할 땐 정리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퇴근 시간이면 하던 일을 그대로 두고 몸만 빠져나갔습니다. 어차피 내일 다시 할 일 정리는 무의미했습니다. 경험만큼 좋은 공부는 없다고 합니다. 정리 안 된 자리는 자주 곤란한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필요한 서류를 찾기 위해 수북한 서류 더미를 뒤지기 일 수였고, 이는 곧 업무 능력으로 연결됩니다. 상사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때 제공하는 것도 부하직원의 중요한 역할일 겁니다. 자신의 업무로 생산된 자료를 관리하지 못해 허둥대는 모습은 믿음을 주지 못했습니다. 몇 번 그런 상황을 겪고 난 뒤 정리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때부터 적어도 오늘 일 한 흔적은 정리해놓고 퇴근하기로 했습니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책상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줬습니다.


연말이며 대기업 인사이동이 있습니다. 흔히 임원 승진을 두고 별을 단다고 합니다. 극소수 만이 기회를 갖게 되며, 이들에게 주어지는 혜택은 단골 뉴스입니다. 칸막이가 아닌 문이 달린 개인 공간, 운전기사를 둔 대형 승용차, 업무를 지원하는 개인 비서까지 지원받습니다. 이는 불필요한 업무를 최소화함으로써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임원에게 제공하는 책상은 직장인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책상일 겁니다. 하늘의 별따기만큼 힘들지만 누구나 한 번쯤 그 자리를 상상하게 됩니다. 기업의 규모를 떠나 임원이 되는 건 남 들과 다른 특별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폭넓은 경험과 탁월한 능력, 남다른 혜안과 리더십을 겸비해야 할 겁니다. 때론 직종에 따라 특별히 요구되는 능력도 갖춰야 할 겁니다. 임원에게도 ‘명’이 있으면 ‘암’이 있습니다. 임원을 단기계약 직으로 구분합니다. 한 해 동안 기업이 원하는 성과를 내지 못하면 다음 해를 기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화려함 뒤엔 말하지 못할 고충과 스트레스를 달고 삽니다. 그래서 누구는 가늘고 길게 직장에 붙어있고 싶어 합니다. 능력을 숨기고 적당히 일하며 현실에 안주한 생활을 이어가는 게 현명한 처세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가늘고 길게 붙어 있고 싶습니다. 임원의 업무 강도를 보면 엄두를 못 내겠습니다. 물론 내가 하고 싶다고 시켜주지도 않을 겁니다. 그럴 능력도 안 되니 말입니다.

십수 년 지금 자리를 지키기 위해 나름 애써왔습니다. 직장인이면 누구나 겪은 그런 노력들입니다. 싫어도 웃어 보였고, 모욕적인 말은 안으로 삼켜야 했고, 마음은 불편해도 몸은 편한 척해야 했고, 한 푼이라도 깎기 위해 허리를 굽혀야 했습니다. 그런 덕분에 지금까지 가족을 지켜왔습니다.




학생 땐 책상에 앉는 게 싫었습니다. 수업 시간 앉아 있는 것조차 고역이었습니다. 억지로 버틴 뒤 집에 오면 티브이만 끼고 있었습니다. 내 방도, 내 책상도 없었습니다. 숙제는 밥상을 펴고 했습니다. 그러니 책상에 앉는 게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공부와 멀어질 수 있는 좋은 핑계였습니다. 그땐 그저 막연히 앉아 있는 직업보다 몸을 움직이는 활동적인 일을 갖고 싶어 했습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방학과 학기 중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이어갔습니다. 대부분 몸을 움직이는 일이었습니다. 식당 서빙, 대형마트 판매원, 건설현장 일용직, 신발 판매원 등 활동적인 일을 경험했습니다. 다양한 경험은 경험일 뿐이었습니다. 이십 대 중반 의욕적으로 시작한 사업이 실패로 끝나고 서른이 되어 처음 갖게 된 내 책상을 지금까지 지켜오고 있었습니다. 흐르고 흘러, 닳고 달아 지금은 앉아 있는 게 더 편해졌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보기도 합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책상에 앉아 있을 수 있다는 걸 학생 때 알았으면 공부를 더 잘할 수 있었을까? 그때 공부를 더 열심히 했다면 지금과 다른 길을 걷고 있지 않을까? 후회는 후회일 뿐입니다. 책상에 오래 앉아 있을 수 있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기 때문일 겁니다. 건설 근로자에게 건설현장이 일터이고, 자영업자에게 매장이 일터이고, 생산직 근로자에게 생산 라인이 일터이듯, 나에게도 책상이 일터이기에 하루 종일 앉아 있을 수 있었던 겁니다. 외형만 다를 뿐 노력의 대가를 통해 생계를 이어가는 본질은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해온 일을 더 이어가고 싶진 않았습니다. 나이 들수록 내가 설 수 있는 자리가 좁아졌습니다. 좁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능력도 부족했고, 설령 운 좋게 한 자리해도 수명은 짧을 겁니다. 단지 두 세 해 연명하는 정도입니다. 새로운 직업을 갖고 직장을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직장을 다니며 탐색에 들어갔습니다. 깊이 탐색하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책을 읽기 위해 또 다른 책상이 필요했습니다. 아이들과 공부하기 위해 거실에 마련해 놓은 책상이 어느새 내 자리가 되었습니다. 업무 짬짬이 카페 의자에서 두어 시간씩 책을 읽고 글을 썼습니다. 책 읽고 글을 쓰기 위해 어딘가 앉아야 했습니다. 책상이 죽도록 싫었던 제가 먹고살기 위해 책상에 죽치고 앉아 있어야 했고, 은퇴 이후 새로운 직업을 갖기 하루 세 시간 이상 책상에 앉아 있었습니다. 무엇이든 해보기 전에 알 수 없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다행히 글 쓰고 책 읽는 게 적성에 맞아 오래 앉아 있어도 힘들지 않았습니다. 책은 읽을수록 제 자신의 부족함이 드러났고, 글은 쓸수록 어렵지만 한 편씩 완성하는 성취감이 좋았습니다. 또 만들어낼 수 있는 결과물이 무궁하다는 게 매력 있었습니다. 끊임없이 배우고 경험하면 뇌가 멈출 때까지 경제활동이 가능한 드문 직업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찾고 본질을 깨닫고 나니 앉든 서든 중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유형의 무언가 만들어 내기 위해 기술을 필요로 합니다. 기술을 처음 배울 땐 반복하고 익히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글 쓰고 책 읽는 것도 일종의 기술을 익히는 거라 생각합니다. 잘 읽고 잘 쓰기 위해 배우고 익히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자르고 깎고 못 질 하며 형태가 있는 무언가 만들어 내듯, 책을 읽고 생각하고 글로 표현하는 것 또한 무형의 산물을 생산해 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온몸을 움직여 만들어 낸다면, 저는 같은 시간 책상에 앉아 손과 머리로 만들어 내는 차이일 겁니다.


건설 현장엔 크게 두 종류의 관리자로 나뉩니다. 현장에서 설계도면대로 만들어질 수 있도록 기능공들과 함께 몸으로 뛰며 관리하는 이와, 사무실에서 이 과정을 기록하고 수치화하여 예산에 맞게 현장을 운영하는 관리자입니다. 현장에서 일할 땐 사무실 직원이 부러웠습니다. 내가 한 여름 땡볕 아래 온몸이 땀에 젖어 있을 때 그들은 시원 바람 안에서 뽀송하게 있었습니다. 내가 한 겨울 살을 에는 추위에 얼어 있을 땐 그들은 온풍기의 포근한 바람 속에 있었습니다. 반대도 경험했습니다. 내가 서류에 파묻혀 며칠 밤 야근할 때 그들은 현장을 정리한 후 유유히 퇴근했습니다. 내가 여러 업체들과 공사비로 실랑이를 할 때 그들은 기능공들과 다음 공정만 고민하면 그만이었습니다. 두 경우를 경험한 뒤 깨달은 게 있습니다. 내가 어디에 있는 건 중요하지 않다는 겁니다. 덥고 추운 날씨 탓에 몸이 힘들어도 설계도면대로 만들어 내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었습니다. 에어컨과 온풍기 바람으로 쾌적한 사무실에 있어도 예산에 맞게 완성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그 이면에 더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합니다. 자리마다 요구되는 능력을 갖춰야 합니다. 단지 책상의 크기가 그 사람을 말해준다고 할 수 없습니다. 지금 있는 자리에 적합한 능력과 경험을 갖추고 있는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여전히 조직 안에서 자리는 권위와 권력을 의미합니다. 이런 의미가 최근 들어 이런 의미가 조금씩 변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19는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직장의 모습도 많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재택근무입니다. 코로나 이전 기업들은 재택근무에 소극적이었습니다. 대부분 효과에 의문을 갖고 있었습니다. 사례도 많지 않아 선뜻 결정하지 못한 기업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코로나는 더 이상 망설이게 하지 않았습니다. 기업은 생존을 위해 재택근무를 도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준비는 부족했지만 위기에 빛을 발하는 적응력 덕분에 1년이 지난 지금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대체로 사무환경이 잘 갖춰진 기업은 재택근무도 유연하게 적용하게 되었습니다. 재택근무가 단지 공간 변화만을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공간적 제약은 시스템으로 보완되어야 합니다. 동일한 플랫폼을 공유하며 업무 표준화가 함께 되어야 공간적 제약으로부터 최대의 효율을 끌어낼 수 있게 됩니다. 분명한 건 전통적인 근무환경이 더 이상 정답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런 움직임은 기존 직장의 권위적인 모습에도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자리가 주는 권력의 위계는 힘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자리가 갖는 힘이 아닌 수평적인 관계가 조직을 발전시키는 데 효과적이라는 인식이 자라고 있습니다. 위계는 눈에 보이는 것에 의해 결정되는 게 아닐 겁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 형성되는 관계에 의해 자연스레 형성되어야 진정한 권위를 갖게 될 겁니다.


아직 은퇴할 나이는 아니라 영원히 직장을 떠난다는 게 와 닿지는 않습니다. 그동안 여러 번 이직을 경험하며 책상을 정리할 때 드는 감정이 어떤지는 알고 있습니다. 짧게는 몇 개월, 길게 5년 이상 근무했던 자리를 정리할 땐 기간을 떠나 만감이 교차하곤 했습니다. 갈 곳이 정해지지 않았을 땐 불안감이 제일 컸습니다. 내 자리를 갖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에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반대로 갈 곳이 정해졌을 땐 지난 시간의 아쉬움과 새로운 곳에 대한 기대로 채웠습니다. 분명한 건 멀지 않은 시점에 ‘직장인’의 책상을 정리해야 할 때가 온다는 겁니다. 그땐 어쩌면 더 큰 불안이 있을 수도, 반대로 더 큰 희망을 품고 있을 수도 있을 겁니다. 중요한 건 ‘지금’ 내가 있는 이 자리에서 미래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에 따라 기대할 수 있는 모습이 달라질 겁니다. 더 이상 ‘직장’을 얻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게 아닌 정말 내가 원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직업’으로 갖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내 책상을 채웠던 것들은 그대로 의미가 있습니다. 지나온 시간 열심히 살아온 노력의 흔적이라 생각합니다.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습니다. 실패하고 좌절하고 다시 시작하며 배우고 깨닫고 성장하는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이 자리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남아 있는 빈 공간에 새로운 나를 다시 채우려 합니다.


내 이름이 나는 아닙니다.

내 직업이 나는 아닙니다.

내가 맺은 관계가 나는 아닙니다.

그 어떤 꼬리표도 나는 아닙니다.

다만, 내가 하루 종일 한 선택과 결정들이 바로 내가 됩니다.

『인생의 태도』 웨인 다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