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보다 만족하는 글 쓰기
초고는 손으로 퇴고는 머리로
떠오르는 문장이 오탈자 없이 화면으로 옮겨지는 걸 보고 있으면 희열이 느껴진다. 생각과 손이 정확히 일치하는 그 순간이 자주 일어나진 않는다. 생각이 많으니 손으로 어떤 신호를 보내야 할지 망설이게 된다. 초고는 빠르게, 퇴고는 느리게 오래 하라고 얘기한다. 처음엔 그렇게 했다. 떠오르는 생각을 붙잡으며 자판이 부서질 만큼 빠르게 써 내려갔었다. 언제부턴가 시작도 못하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한 문장 쓰고 다시 읽고, 고치고 검열하기 시작했다. 두 세 문장 쓰고 다시 고치고 검열했다. 들이는 시간만큼 써지는 속도와 양이 적었다. 두세 시간을 들여도 반 페이지도 못 쓰는 경우가 많았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승용차는 연비가 안 좋을 수밖에 없다. 쓰고 고치기를 반복하니 효율이 안 좋은 건 당연했다.
이번 주 월요일 아침 빈 화면과 마주했었다. 뭘 쓸지 몰라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머릿속은 분주하게 오고 가는 사람들이 뒤엉킨 대합실 같았다. 만나야 할 사람을 찾으려면 모든 감각을 동원해 신경을 바짝 세워야 한다. 그러다 잠깐 다른 사람에게 한 눈 팔면 만나야 할 사람을 놓치게 된다. 한참을 헤맨 뒤에야 다시 만나기도 한다. 쓰고 싶은 주제를 만나기까지 수많은 생각을 흘려보냈다. 뒤엉켜 있는 생각의 실타래를 풀 수 있는 시작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생각하고 고민하고 있는 것보다 아무 말이나 쓰라고 한다. 쓰기 시작하면 어떤 방향으로든 흘러가게 되니 아무 말이나 꺼내 쓰라고 한다. 알아도 잘 되지 않는다. 아무 말이나 꺼내면 아무 의미 없는 글이 될 것 같아 그마저도 망설여진다. 어느 정도 머릿속에서 정리된 뒤 첫 문장을 꺼내야 할 것 같았다. 적어도 주제를 잡고 시작하고 싶어서이다.
다행히 몇 문장 썼다. 첫날은 반 페이지 썼다. 다음 날 아침 어제 쓴 파일을 불러왔다. 다시 생각이 멈춘다. 전날 쓴 글을 읽어보고 다음 내용을 생각해 본다. 어느 방향으로 갈지 고민이 이어진다. 내비게이션은 다양한 경로 중 가장 빠른 길을 안내한다. 가장 빠른 길이 유일한 길은 아니다. 조금 돌아갈 수도 있고 다른 곳을 경유해 갈 수도 있다. 어느 길로 갈지는 자신의 선택이다. 자신이 선택한 길에 따라 목적지까지 닿는 과정이 달라진다. 특별한 경험을 할 수도 있고, 길을 잘못 들어 고생할 수도 있고, 뜻하지 않은 만남이 일어날 수도 있다. 다만 선택하면 의심 없이 밀고 나가야 한다. 내가 선택한 길은 다른 길일뿐 틀린 길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음 날도 전날에 이어 같은 파일을 열었다. 한 페이지 반을 채운 곳에 커서가 깜빡이고 있었다. 오늘은 마무리 짓고 싶었다. 남은 길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었다. 나도 내 생각의 골이 얼마나 깊은지 모른다. 얼마나 더 다양한 내용을 담아낼지 의심스럽니다. 특단의 조치를 내리기로 했다. 가다 서다 보다 일단 끝까지 간 뒤 경치를 즐기기로 했다. 초고 쓰는 자세로 생각을 끊지 않고 이어쓰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먹고 쓰기 시작하니 30분도 안돼 한 페이지 반을 채웠다. 역시 속도가 붙어야 연비가 좋은 건 틀리지 않았다. 답답한 속에 활명수 한 병 마신 느낌이었다.
목요일 아침 초고 한 편을 마무리했다. 삼일 동안 초고와 퇴고를 같이 했다. 남은 건 마지막 퇴고다. 두 번 세 번 읽을 때마다 손질하게 된다. 완벽을 생각하니 전날 들은 스테르담 작가님의 강의가 떠올랐다. 브런치 플랫폼의 이해와 글쓰기 팁을 알려준 강의였다. 작가님 말씀 중 사람은 완벽하지 못한 데 완벽하게 글을 쓰려고 하는 건 말이 안 되는 거라고 했다. 그러니 잘 쓰겠다, 완벽하게 쓰겠다는 욕심을 내려놓는 게 꾸준히 쓸 수 있는 동력이 된다는 조언이었다. 잊고 있었던 것 같다. 나란 사람은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절대 완벽해질 수 없는 존재다. 지금 쓰는 글도, 앞으로 쓸 글도 완벽해질 수 없다. 어쩌면 '완벽'보다 '만족'이 먼저이지 않을까.
만족은 아주 작은 것에서도 찾을 수 있다. 몇 페이지 중 마음에 드는 단 한 문장 일 수도 있다. 어설픈 문장이지만 공감하는 내용 일 수도 있다. 그런 만족이 있다면 또 쓸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완벽을 바란다면 만족은 없다. 만족하면 완벽할 수도 있다. 그때의 완벽은 적어도 내가 최선을 다해 쓴 글 안에서 얻을 수 있을 거다. 내가 쓰는 글의 첫 독자는 나 자신이고, 나를 위해 쓰는 글이니 누가 뭐라 해도 나에겐 완벽한 글이 된다. 스테르담 작가님이 그랬다. 자뻑은 꾸준히 쓸 수 있는 좋은 동기가 될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