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책 좀 읽어주지 않을래
아내와 조촐하게 크리스마스이브 맞이 회 한 접시를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 읽고 싶은 책이 있다고 했다. 올해 모두가 힘들고 혼란을 겪고 있지만 조만간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게 되면 많은 변화가 있을 거라는 한다. 그 변화를 슬기롭게 대처하려면 내년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중요하다고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코로나 이후를 전망하는 책을 읽어보고 싶고, 또 요즘 같은 땐 서점에 어떤 책이 나오는지도 궁금하다고 했다.
사람들이 없을 줄 알았다. 길거리의 연말 분위기를 서점에서 느낄 수 있었다. 책이 있는 모든 코너마다 사람들로 붐볐다. 서점만큼 다양한 세대가 모이는 곳도 드문 것 같다. 부모님 손에 끌려온 어린아이, 방학을 준비하는 학생들, 책을 사이에 두고 알콩달콩 눈빛을 주고받는 연인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각종 투자법을 탐구하는 젊은 부부, 은퇴를 앞둔 연배의 아저씨, 온화한 미소를 가득 머금은 연세 지긋한 아주머니 등 다양했다. 아내와 따로 떨어져 이곳저곳 기웃거렸다. 포스트 코로나 전망에 관한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무겁고 어려운 내용은 읽다 포기할 것 같아 최대한 쉬운 내용을 찾았다. 한 사람의 관점보다 여러 명의 다양한 의견이 담기면 좀 더 흥미 있을 것 같았다. <오늘부터의 세계>는 세계 석학 7명의 전망을 담았다. 제레미 리프킨, 장하준, 마사 누수 바움, 케이트 피킷, 닉 보스트롬, 반다나 시바, 윈테쥔 이렇게 7명의 석학에게 질문을 던졌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위기의 원인과 앞으로 어떤 선택지가 놓여 있고, 그중 우리가 우선적으로 선택하여야 할 건 무엇인지에 대한 인터뷰 내용을 옮겨 놓았다고 한다. 우선 이 한 권을 시작으로 아내와 내가 한 해동안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고민해 보기로 했다. 이밖에도 <트렌드 2021-김난도> , <후츠파-인발 아리엘리> 도 함께 샀다.
올해 가장 큰 변화는 아이들이 학교를 못 갔다는 거다. 큰딸도 일주일에 한 번 가는 것 마저도 못 가게 되면서 집 밖을 나갈 일이 없어졌다. 나가는 걸 안 좋아하는 아이에게 집에 있을 수밖에 없는 요즘은 물 만나 고기와 다르지 않았다. 주말이면 함께 나가자고 꼬셔봐도 꿈적도 안 한다. 집에 있으면 수업 듣고 학습지 푸는 시간 외는 티브이나 게임, 동영상 시청으로 대부분을 보낸다. 책도 좀 읽었으면 좋겠는데 도서관에 가려고 하지 않아 이마저도 뜻대로 안 된다. 반 강제로 책을 사줘야겠다 마음먹고 물어봤다.
"요즘 읽고 싶은 책 있니?"
"아니요. 딱히 없는데요."
"그럼 좋아하는 작가는? 얼마 전에 사인받은 작가 이름이 뭐드라?"
"아~ 진형민 작가님이요. 그때 한 권 읽어봤는 데 재미있었어요."
"그래 그럼 가서보고 괜찮은 거 있음 사다 줄게."
<몽실언니 - 권정생> , <곰의 부탁 - 진형민> 두 권을 꺼내 들었다. <몽실 언니>는 초중고생에게 다양한 어휘를 경험해 볼 수 있다고 추천받은 책이었다. 내 솔직한 심정은 시간이 많은 요즘 다양한 책을 읽는 기회가 되었으면 했다. 억지로 등 떠밀어 읽히고 싶진 않다. 그런다고 읽을 아이도 아니고, 잠깐은 읽을 수 있지만 절대 습관으로 자리 잡지 않는다. 스스로 필요를 깨달았을 때만 습관이 될 수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일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것도 그런 바람의 연장선이다.
어제 아침에도 큰 딸이 일어나기 전 책을 읽고 있었다. 거실로 나온 아이가 보자마자 한 다는 말이,
"아빠는 아침에 책 읽으면 잘 읽혀요?"
"어 아빤 아침이 제일 잘 읽히던데."
"아~ 그래요."
그러더니 쌩하니 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어떤 의미로 물었는지 알 수 없었다. 혹시 책을 읽어야겠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는 걸까? 그랬으면 좋겠다.
아내와 나는 아이들을 점점 코너로 몰고 있다. 주말 낮, 평일 저녁이면 수시로 책 읽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이들은 아직 게임이 좋고, 티브이를 더 많이 보고, 장난감을 떼지 못하지만 곧 마음이 움직이는 때가 올 거라 믿고 있다. 세계적인 동물행동학자인 최재천 교수와 아내분은 집에서 늘 책을 읽었다고 한다.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늘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어느 때가 되니 스스로 포기(?)하며 같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해 사교육 없이 두 아들 다 명문대에 갔다고 한다. 나는 명문대까지 바라지 않는다. 다만 아이들이 스스로 하고 싶은 걸 찾을 수 있길 바랄 뿐이다. 학교 공부와는 별개로 다양한 책을 통해 자신이 정말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게 무언이지 고민하고 탐색하고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건 부모도 해줄 수 없는 부분이다. 스스로 찾지 못해 나처럼 인생에 가장 중요한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으면 한다.
조급해하지 않는다. 각자에게 적당한 때가 됐을 때 책이 아니어도 분명하고 싶은 한 가지는 갖게 될 거다. 그 시간이 빨리 올 수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뒤늦게 찾아 올 수도 있다. 또,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실패를 통해 더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으면 한다. 실패의 과정을 겪지 않는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래도 몇 번의 실패를 겪었으면 한다. 만약 실패를 경험할 때 책을 옆에 두고 있었으면 한다. 책이 흔들리는 자신을 잡아줄 수도, 흐린 길에 작은 등불이 될 수도, 낭떠러지로 떨어질 때 손에 잡히는 나뭇가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설령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닥으로 떨어지더라도 책에 의지할 수 있는 지혜를 갖는 더 면 누구보다 현명하게 이겨낼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 이 세상엔 미처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고통을 딛고 성공한 이들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존재한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이런 말을 아이들에게 직접 못 한다. 비슷한 내용만 꺼내면 표정부터 변한다. 아직은 참고 어느 정도 들어주지만 정도가 지나치면 곧 등 돌리고 각자 방으로 들어가지 싶다. 이렇게 글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을 남겨 놓으면 멀지 않은 시간 아이들이 읽게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때가 되면 모른 척 슬쩍 읽게 할 수도 있다. 진심이 전해진다면 분명 백 마디 말 보다 더 효과적이라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