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의 버티는 기술 - 탄탄한 기본기

하찮은 업무는 없다. 하찮게 생각할 뿐이다.

by 김형준

2006년 현장 근무를 시작했다. 건축을 전공했지만 근무를 시작한 곳은 지하철 건설 현장이었다. 지하철, 도로, 교량, 터널 등의 국가 기반 시설을 짓는 걸 '토목'이라 한다. 건축과 토목은 배우는 과목이 다르다. 건축 전공자였던 내가 토목 현장에서 실무를 시작하는 건 마치 국어교사에게 수학을 가르치라고 하는 것과 같다. 현장에서 접하는 모든 게 생소했다. 현장 사무실은 회사의 축소판이다. 현장에선 현장 소장이 모든 책임과 권한을 갖는다. 현장의 시작부터 준공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책임지며 직원 배치, 자금 운용, 대외 업무 전반을 총괄하는 역할을 한다. 현장 소장님은 내 사정을 고려해 쉬운 업무부터 배울 수 있게 배려해 주셨다.


내가 처음 담당한 업무는 매일 현장에 투입되는 장비 대수와 직종별 근로자 출력일 수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요즘은 현장 입구에 지문인식기로 출력 인원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는 그런 시스템이 자리잡기 전이었다. 매일 7시면 그날 출력한 모든 인원이 모여 체조를 한다. 체조를 통해 긴장된 몸을 이완시켜 줌으로써 만약에 생길 안전사고 예방이 목적이다. 체조를 마치면 파트별 현장 관리자 중심의 소그룹 모임을 통해 그날 작업 사항과 위험요인 등을 전달한다. 내 업무는 이때부터 시작된다. 체조와 소그룹 미팅 시 몇 명이 나왔는지 일일이 확인한다. 이때 확인하는 걸로 끝나면 좋겠지만 가끔 늦게 나오는 근로자도 있어 점심시간 이후 다시 확인해야 한다. 아주 드물긴 하지만 오전만 일하고 가거나, 오후에 나와 오전도 근무했다고 거짓말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개개인의 양심에 믿으면 좋겠지만 그 당시는 믿음보다 불신이 더 컸다.


건설 현장 근로자는 고된 직업이다. 특히 토목공사는 계절의 변화를 맨 몸으로 겪게 된다. 그늘 하나 없는 한 여름의 더위, 살을 에는 칼바람을 입고 있는 옷으로 오롯이 견뎌내야 한다. 또 그들이 하는 일은 중노동이다. 수 십 킬로그램의 자재를 맨 몸으로 옮기고, 각종 도구를 사용하는 것조차 때론 엄청난 힘을 필요로 하게 된다. 하루 종일 땀이 마를 새 없이 고된 노동을 이어간다. 그래서 그들에게 하루 일당만큼 소중한 게 없다. 정직하게 일하는 만큼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권리이자 생계수단인 것이다. 그분들에게 일당은 권리보다 생계에 더 무게를 둔다. 그런 걸 가장 잘 느낄 수 있을 때가 월급날이다. 월급은 한 달 동안 근로한 일수에 일당을 곱한 금액에 세금을 제외하고 지급된다. 각자 며칠을 근무했고 얼마를 지급받을지 정확히 계산해 놓는다. 자주는 아니지만 자신이 계산한 금액과 실제로 지급받는 금액에 차이가 생기면 살벌한 상황이 되기도 한다. 그분들에겐 생계와 직결된 문제라 민감할 수밖에 없다. 나는 나대로 매일 출근과 퇴근을 체크해 정리해놓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가끔 실수할 때도 있었다. 터무니없이 차이 나지 않으면 가급적 근로자분의 주장을 받아주며 좋게 마무리하려고 한다.


이런 업무가 단순해 보일 수 있다. 매일 출퇴근 인원을 확인하고 급여를 계산해 지급하는 건 단순한 업무다. 서른 살의 토목 전공자라면 성에 안 찰 업무일 수 있다. 나는 그렇지 못했다. 현장 소장님의 배려로 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업무에 배정받았다. 내 역할은 맡겨진 업무를 누가 봐도 잘 해내고 있다는 걸 보여줘야 했다. 좀 더 효과적인 방법을 위해 고민을 거듭했다. 정답이라고 할 순 없지만 적어도 누가 봐도 효율적일 수 있는 체계를 잡아가는 게 내 역할이라 생각했다. 매달 월급날이면 이런저런 잡음이 안 나오게 하고 싶었다.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당시만 해도 급여를 통장으로 지급하지 않았다. 현금을 일일이 봉투에 담아주었다. 그럼 그 봉투에 자신이 근로한 일수와 세금공제 금액을 표시해 주면 간단히 해결될 것 같았다. 사수에게 의견을 제시했고 그렇게 해 보라고 했다. 봉투를 받은 근로자 분들도 만족해했다. 자신이 며칠 근무하고 실수령 금액이 얼마인지 한눈에 볼 수 있었고, 만약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잡을 수 있었다. 그런 덕분이었는지 현장이 진행되는 동안 적어도 급여로 인한 문제는 최소화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조직은 피라미드 구조다. 조직을 아우를 수 있는 경험과 능력을 갖춘 이를 피라미드의 꼭짓점에 둔다. 대게는 근무 연차에 따라 아래로 내려오는 게 보통이다. 각각의 위치마다 요구되는 능력이 있다. 능력을 갖춘 이들만이 윗자리로 올라갈 수 있다. 피라미드의 가장 아래는 사회에 첫 발을 딛는 이들의 자리다. 그들에게 주어진 업무는 평범하고 단순할 수밖에 없다. 어떤 구조물이든 기초가 튼튼하지 못하면 쉽게 무너진다. 업무 역량도 다르지 않다. 단순해 보이는 업무지만 얼마나 체계적으로 배워가느냐에 따라 단단한 기초를 다져가는 것과 같다. 신입사원의 의욕 넘치는 모습은 조직의 활기를 불어넣는다. 넘치는 의욕은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불러온다. 자신감은 무슨 일을 해도 꼭 필요하다. 다만 경험이 부족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다. 대학에서 배운 학문은 실무와 많은 차이가 있다. 도움이 되는 부분이 없다고 할 순 없지만 실무를 시작하면서 대부분 새로 배우게 되는 게 현실이다. 가장 중요한 건 낯선 환경과 새로운 배움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이라 생각한다. 넘치는 의욕은 언제든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다만 기초를 다져야 하는 시기엔 그 일에 충실해야 한다. 십 수년 건설업계를 겪으며 깨달은 한 가지는 기초를 단단히 다진 이들만이 피라미드의 정적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는 거다. 이건 어느 직업군이나 다르지 않다.


맨땅에 헤딩하는 마음으로 현장업무를 시작했다. 다행히 좋은 분들을 만나 과분한 배려를 받았다. 세상엔 절대 공짜는 없다. 받은 배려만큼 되 돌려주는 게 당연하다. 그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건 맡은 업무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처리해 내는 거였다. 그로 인해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를 최소화 함으로써 보다 가치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업무 환경에 일조하는 구성원이 되는 게 최선이라 생각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11개월 만에 정직원이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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