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에게 필요한 이직의 기술 (1)
이번이 마지막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직했었다. 매번 이직할 때면 새로운 곳이 좀 더 안정적이고 잘 어울릴 수 있는 동료가 있길 희망했었다. 이직 한 번 할 때마다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된다. 매일 올라오는 채용공고 검색하며 나와 맞는 곳을 찾는 것부터 쉽지 않다. 적당한 곳으로 판단되면 이력서와 자소서를 지원할 기업에 맞게 다시 작성한다. 그런 지루한 과정을 반복하다 운 좋게 면접이라도 볼 수 있으면 그동안의 노력을 조금이나마 보상받는 기분이다. 면접을 본다고 다 붙는 것도 아니었다. 면접도 한 번으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두 번 세 번 진행되면 커지는 기대감이 더 힘들게 할 때도 있었다. 결국 들러리로 끝나는 때도 여러 번 있었다. 누구나 들러리가 되려고 지원하지 않지만 누군간 들러리가 될 수밖에 없다. 들러리가 될 지라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게 누구에게나 있는 마음일 거다. 수십 번 반복된 과정 끝에 기회가 닿는 기업이 있다. 서로에 대한 확신은 없지만 가능성을 보고 선택하게 된다. 기업도 지원자도 일말의 가능성을 믿고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된다.
상암동에 위치한 이전 직장은 2년 반을 다녔다. 친환경 건설 자재 제조와 유통 사업부, 조경 사업부, 토양정화 사업부, 토목 사업부로 사업 다각화를 통해 성장을 이어가는 기업이었다. 건설사 중 주식시장에 상장된 기업은 많지 않다. 상장은 기업 공개 과정을 통해 누구나 재무구조, 사업계획, 실적 등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대부분의 건설사는 이같이 속살을 드러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반면 상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점은 자본 확보가 유용하다는 점이다. 신규 투자 시 공식적인 증자를 통해 필요한 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 상장사라는 타이틀은 기업을 유지하는 데 굉장한 이점이었다. 내가 근무하는 동안 몇 차례 증자를 통해 신규 사업에 공격적으로 투자하기도 했었다. 자본을 안정적으로 유치할 수 있다는 건 회사 운영도 안정적일 수 있다는 방증이었다. 그동안 바라던 안정적인 직장을 찾은 것 같았다.
어느 기업이나 그 안을 들여다보면 만족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불합리와 불만은 언제나 조직원의 몫일 수밖에 없다. 기업문화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구성원이 떠날 수밖에 없다. 기업 입장에서 구성원 개개인을 만족시킬 수도 없고, 설령 구성원이 원하는 대로 다 해준다 해도 언젠간 불만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기업은 적당한 선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거기에 맞춰 갈 수 있으면 오래 다닐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더 좋은 곳을 찾아가는 게 서로에게 현명한 선택이다. 직장을 몇 번 이직해 봤으면 알 수 있는 진리 같은 말이 있다. 더 좋은 곳을 찾아 이직해 봤자 다 거기서 거기라고 한다. 구성원이 갖는 만족감은 눈에 보이는 것들이 아니라 그 안에 보이지 않는 문화와 동료 간의 깊은 유대감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나를 성장시켜줄 수 있는 상사를 만나고, 내 노력을 인정해주는 오너와 노력에 따른 적절한 보상을 받을 때 근속할 수 있는 이유가 된다는 거다. 하지만 이런 조직 문화와 구성원을 만나는 건 쉽지 않다. 학교는 우리에게 경쟁만 가르쳤지 어울려 사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직급을 막론하고 서로를 경쟁자로 만 인식한다. 선의를 베푸는 이들은 그 이면에 다른 의도 있을 거라 의심한다. 때론 선의를 믿었다 뒤통수 맞는 경우도 한 번쯤 겪게 된다. 이런 불신 탓에 선의를 베푸는 이들은 스스로 뒤처지게 되고 곱지 않은 시선은 자신의 몫이 되고 만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는 건 마음 붙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되기도 한다. 마지막 직장이라 마음먹고 2년 동안 정 붙이려 노력했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불합리와 불통은 날이 갈수록 더했고, 그럴수록 실망은 더 쌓여갔다. 한편으로 나이를 생각하면 다른 곳으로 옮긴다는 게 자신 있진 않았다. 운이 남아 있다면 좀 더 나은 직장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운에게 남은 인생을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직을 고민하던 때 그분에게 연락이 왔다. 가끔 안부를 묻는 사이라 그 전화도 그럴 거라 생각하고 가볍게 받았다. 이런저런 일상을 묻다 이직 얘기를 농담 삼아 꺼냈다.
"제 나이에 어딜 가겠습니까? 받아주는 곳도 없고, 받아줘도 조건이 더 안 좋을 수도 있고요."
"왜 아직까지는 괜찮아. 나도 니 나이 때 어렵지 않게 옮길 수 있었다."
"소장님은 커리어가 좋으시잖아요. 경력도 학력도 빵빵하잖아요. 저야 그렇지 못하니 어디든 받아준다면 넙죽 물고 충성을 다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너 혹시 이직할 마음은 있는 거냐?"
"네 심각하게 고민 중입니다. 지금 다니는 곳은 안정적이긴 한데 체계가 엉망이라 몸만 축나고 있네요."
"그럼 너 나랑 같이 일 해볼래?"
"소장님 어디 계시는데요?"
"재건축 아파트 지을 때 단지 주변 도로 정비가 주력이고 신생인데도 제법 수주를 해놔서 몇 년은 걱정 없이 다닐 수 있다. 또 공사비 떼일 염려는 1도 없는 구조라 더 안정적이지."
"그런 곳이 있으면 진작에 알려주셨어야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대화를 마쳤지만 마음 한쪽에서 또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다 써버린 줄 알았던 운이 아직 남아 있는 걸까. 덜컥 옮겼는데 기대와 다르면 안 옮긴 것만 못한 건데. 만약 한 번 더 옮겨야 한다면 지금이 가장 적기인 것 같기도 했다.
그 뒤로 소장님과 몇 차례 통화를 했고, 결국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이제 이곳과 어떻게 마무리 짓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었다. 사회생활, 특히 이곳 건설업계는 바닥이 좁다. 돌고 돌아 언젠가 다시 만난다는 속설이 있고 실제로 몇 년만 몸담고 있으면 어떤 경로로든 다시 만나게 되는 게 부지기수다. 그래서 어느 직장이든 다니고 있을 때와 떠날 때의 이미지가 중요한 처세가 되었다. 물론 다른 업종도 다르지 않다고 본다. 이종 업계로 옮기지 않는 이상 동종업계에 몸담고 있는 동안 어디서 어떤 형태로 만나게 되는 건 순리라 생각한다. 소장님은 2주 정도밖에 시간을 줄 수 없으니 그 안에 정리해 달라고 통보했다. 2주면 너무 촉박했다. 후임을 구할 시간도 부족하고, 구해져도 인수인계 절차로 한 주는 필요했다.
월요일 오전 사장님과 면담을 가졌다. 이직하겠다는 의사 꺼내자 호통부터 치셨다. 이제 체계도 잡히고 사업도 확장하고 있는데 네가 중요한 역할을 해 줘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동안 이런 말을 듣지 못해 내 존재의 가치를 생각본 적 없었다. 막상 이직을 꺼내니 잡아두기 위한 사탕발림은 아닐까 의심도 들었다. 반대로 그동안 묵묵히 고생한 걸 인정받고 있었구나 생각도 들었다. 어느 직장 누구나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안쓰러울 만큼 고생하고 있다. 그런 노력에 대한 보상이 물질이 될 수도 있지만 가끔 상사가 건네는 칭찬과 격려의 한 마디를 더 필요로 하다는 걸 모르는 것 같다. 분명 그들도 같은 시기를 겪었어도 자리가 바뀌면 사람도 바뀐다는 말처럼 정작 중요한 걸 잊고 사는 것 같다. 법인카드로 생색내며 원치 않는 회식을 하는 것보다 단 5분이라도 차 한 잔 하며 마음을 터 놓을 수 있는 대화가 더 절실하다는 걸 모르는 것 같다. 어쩌면 알면서도 안 할 수도 있다.
이후 두 번 더 면담을 가졌다. 감사하게도 직급과 연봉 인상도 말씀해 주셨다. 처음 면담을 갖기 전부터 내 의지는 확고했다. 이직 결정을 내 존재가치를 확인하는 간 보기로 사용하고 싶진 않았다.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정말 경력이 화려하고 능력이 출중한 몇몇 을 제외하고 이런 식의 간 보기는 결국 본인에게 마이너스가 되는 사례를 숱하게 봤다. 날 선 도끼로 제 발등 찍는 거다. 씨알이 안 먹힐 것 같아 최후의 수단을 동원했다. 월요일 아침 출근하신 후 보실 수 있게 메일을 보냈다. 그 안에 이직을 결심한 장황한 동기와 옮길 곳에 대해 간략이 적었다. 메일을 보신 후 다시 면담을 가졌고, 그제야 사장님은 내 의견을 존중해 주셨다. 대신 옮기는 시점은 사장님의 뜻을 따라 달라고 하셨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포기하는 게 예의라 생각했다. 결국 주어진 3주 보다 한 주 더 근무하고 새로운 곳으로 옮겨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