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번의 이직으로 깨달은 한 가지 - 직장생활, 목숨 걸지 말자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갖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이 쓴 ‘나는 왜 일하는가’의 내용 중 직장인의 5%만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고, 나머지 95%는 좋아하지 않지만 일을 하면서 잘하게 되고 잘하면서 차츰 좋아지게 된다고 했다. 우리는 학교에서 직업에 대한 탐구를 한다. 하지만 진학에 목적을 둔 주입식 교육은 올바른 탐구로 이어지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자신의 역량을 개발하기보다 입시에 최적화된 자신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일 뿐이다. 공부에 재능이 없다는 걸 중학교 때부터 알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기술을 배우기로 마음먹었다. 비교적 빨리 진로를 정한 편이다. 작은형의 영향이 컸다. 작은 형은 나보다 먼저 실업계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중학생이 바라본 실업계 고등학생은 자유로워 보였다. 중학교 3학년이 되면서 마음속 진로는 결정했다. 가고 싶은 고등학교는 실업계이긴 했지만 시험 성적은 인문계 보다 높은 점수를 필요로 했다. 다행이 중간 정도 성적으로 작은형의 후배가 될 수 있었다.
고등학교 3년은 인생의 황금기였다. 고등학교 성적은 중간을 유지했다. 더 하고 싶지도, 손을 놓고 싶지 않았다. 그저 하루하루에 충실했다. 건축을 배우는 과정은 흥미로웠다. 얕은 지식이지만 전문성을 키우는 배움이 재미있었다. 학교에서 배우는 공부도 중요했지만 친구와의 시간 속에서 배우는 삶의 공부가 더 흥미로웠다. 수업이 끝나면 당구장에 모여 친목을 도모했다. 용돈 받는 족족 당구장에 헌납하기 바빴다. 고등학교 3년 동안 당구장에 갖다 준 돈만 모아도 차 한 대는 사겠다는 농담도 했다. 당구장에서 체력을 쌓고 나면 허기를 달래기 위해 아래 층 중국집으로 향했다. 자장면 한 그릇에 원기를 회복했다. 가끔 교복을 벗고 근처 호프집에서 맥주 한 잔으로 일탈도 해봤다. 함께 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게 행복한 때였다. 고3이 되면서 현실과 마주하게 되었다. 고3 2학기부터 취업을 나갈 수 있다. 이때 결정을 해야 했다. 대학을 갈 건지, 취업을 할 건지. 나는 진학을 결정했다. 진학을 결정한 이유는 배움에 뜻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설익은 체 취업을 나가는 것 같아 불안했다. 조금 만 더 학생 신분을 즐기고 싶었다. 친구들이 취업을 나간 동안 학원과 독서실을 오가며 대입 시험을 준비했다. 시험이 가까울수록 불안은 커졌다. 괜한 짓 하는 게 아닐지 걱정됐다. 확신 보다 운에 맡기기로 했다. 운이 통했다.
대학생도 고등학교 때와 다르지 않았다. 장소와 신분만 바뀌었을 뿐 하고 다니는 건 똑같았다. 대학생이 되면 많이 놀아야 한다는 선배들의 어줍잖은 충고를 충실히 따랐다. 신분을 망각할 정도로 망가지지는 않았다. 철저히 8:2 법칙을 지켰다. 8시간 놀면 2시간은 공부했다. 진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없었다. 그전에 넘어야 할 산이 있어서였다. 1년을 맘껏 놀고 군대에 갔다. 입대도 내 의지였고 자대 배치도 어느 정도 내 의지가 반영되었다. 빽이 있었던 건 아니다. 순간의 선택이 자대 생활을 결정지었다. 특기가 없는 이들은 보충대로 모여 6주간 훈련 받을 훈련소를 배정 받는다. 훈련이 끝나며 일부는 특기병 교육을 추가로 받지만 대부분은 보병 보직으로 자대를 배치 받는다. 보충대 입소 다음 날 밤 갑작스레 호출을 받았다. 강당엔 영문을 알 수 없는 표정을 한 동기 수 십 명이 모여 있었다. 앞에 나온 조교는 스무고개 하듯 전공과 관련된 질문을 던졌고 해당되지 않는 사람은 일어나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 질문 하나에 멈칫 했지만 눈 딱 감고 자리를 지켰다. 그 순간의 선택 덕분인지 전공과 관련된 일을 할 수 있는 자대에 배치 받을 수 있었다.
쓸데없는 짓을 속된 표현으로 ‘삽질’이라고 한다. 군 생활 2년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삽질의 연속이었다. 내가 한 삽질은 진짜 삽질이었다. 내가 맡은 보직은 벽돌을 쌓고, 모르타르를 이용해 바닥이나 벽을 깔끔하게 만드는 작업이었다. 이런 작업엔 모래, 시멘트, 물이 필요하고 모래와 시멘트를 나르고 비비는 데 삽이 필요했다. 삽질 덕분에 2년 내내 허리 펼 시간이 없었다. 군대 2년의 경험은 일머리를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지만 제대 후 사업에 뛰어 들기로 마음먹은 데는 군대 경험이 8할은 작용했다. 그러나 4년 반을 이어간 사업도 결국 삽질로 그치고 말았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시작한 직장생활이 순탄할리 없었다. 생소한 전공 탓에 주눅 들어 있었다. 누가 물어도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시키는 일을 하기 전에 단어의 뜻부터 공부해야 했다. 기초 지식이 부족하니 시키는 일도 제대로 해내지도 못했다. 열심히는 했지만 겉도는 느낌이었다. 이전까지 일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었다. 고민의 결이 달랐던 것 같다. 잘하고 못하고를 고민해야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내가 이 일을 좋아하는지부터 고민해야 했다. 고등학교 진학도 형의 모습을 부러워했던 선택이었다. 대학도 별다른 고민 없이 시간을 벌고 싶었던 선택이었다. 제대 후 사업을 시작할 때도 단지 경력 한 줄 채울 수 있겠다는 고민이 전부였다. 그리고 당장 먹고 살 걱정 앞에서 일에 대한 고민은 사치였었다.
좋아하는 일을 잘 하게 되는 것과, 하다 보니 좋아지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전자는 목적지를 미리 알고 경로까지 파악한 뒤 길을 나서는 거라 생각한다. 후자는 일단 길을 나선 뒤 헷갈릴 때 마다 지도를 보고 찾아가는 거라 생각한다. 나에게 목적지는 애초에 없었다. 하다보면, 가다보면 어딘가 닿을 거란 막연한 기대뿐이었다. 기대라기보다 매일을 살아야 했던 생존이 더 큰 이유였다. 일을 할수록 질문은 늘어갔다. 이 일을 내가 정말 좋아하고 있는 걸까?
흐르는 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지금 흘려보낸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 다는 의미이다. 마흔 살 넘어 까지 무수히 많은 ‘지금’을 무의미하게 흘려보냈다. 그렇게 흘려보낸 ‘지금’은 삶의 불만족이 되어 돌아왔다. 이직이 잦았던 이유 중 나에 대한 불만이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불만을 개선할 의지가 부족했다. 근본적인 개선이 아닌 일시적인 만족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현재 다니는 던 직장 보다 조금 더 나은 처우를 받기 위해 이력서를 채울 수 있는 경력이나 자격이 필요했었다. 자격증이나 각종 성적은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었다. 단지 한 계단 올라서기 위한 발판에 지나지 않았다. 좋아하고 잘 하는 일에 대한 고민을 회피했다. 그런 고민은 그나마 안정되어 가던 결혼 생활을 흔들어 놓을 것 같았다. 아내에게조차 이런 고민을 털어놓을 수 없었다.
게임 용어 중 ‘부캐’라는 단어가 있다. 원래 게임에서 사용하던 본 캐릭터가 아닌 새롭게 만든 캐릭터를 뜻한다. 요즘은 직장인들 사이에서 본업을 하면서 새로운 직업이나 부업을 갖는 경우를 말한다. 한 가지 일에만 몰두 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가능성을 실험해보며 자신이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찾아가는 과정이 되기도 한다. 서울대 김난도 교수는 자신의 저서 ‘트렌드2020’에서 멀티 페르소나 와 일맥상통하는 개념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멀티페르소나는 개인이 여러 상황에 맞게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며 다양한 정체성을 표출한다는 의미이다. 살면서 한 가지 직업에만 올인 하는 세대는 지나가고 있다.
마흔 살이 되면서 고민이 깊어졌다. 지금 일을 더 오래 잘 할 자신이 줄어들었다. 쫓겨나기 전에 제 발로 걸어나올 수 있는 대안이 필요했다. 대안을 찾고 싶었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본업도 제대로 못하면서 다른 일을 찾을 수 있을지, 다른 일을 찾는 다고 그 일이 내 일이 될지 확신도 없었다. 만만한 게 자영업이었다. 대학 때부터 아르바이트로 잔뼈가 굵었다. 특히 식당 관련 아르바이트를 제일 많이 경험했었다. 쉽게 생각해 직원에서 주인이 되는 차이라고 생각했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다. 그즈음 공인중개인사인 지인으로부터 호프집 인수 제안을 받았다. 공장형 아파트 1층에 위치했고 매출도 나쁘지 않다고 소개했다.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인수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한 달 정도 탐색에 들어갔다. 일주일에 한두 번 손님으로 가장해 문 닫기 전 찾아갔었다. 굳이 그때를 찾은 건 영업이 마무리 될 때 영수증에 누적 테이블 수 즉, POS에서 계산한 횟수가 찍혀 나온다. 숫자가 10이면 그날 저녁 10개의 테이블에 손님이 있었다는 의미이다. 매출을 정확히 계산 할 수 없지만 누적 테이블 수라도 알면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 있다. 마음속에선 이미 영업을 시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가족의 반대에 부딪혔다. 아내와 어머니는 무조건 반대했다. 경기도 좋지 않았고 내 성격에 손님들 성격 받아주는 게 만만치 않을 거란 걱정이었다. 나도 걱정했던 부분을 정확히 지적해줬다. 이번에 가족의 말을 듣기로 하고 결국 마음을 접었다.
한 번 태풍이 휘몰고 간 것 같았다. 태풍이 휩쓸고 간 곳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는다. 내 마음도 그랬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정말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걸 찾고 싶었다. 답은 의외의 곳에서 찾았다. 책은 간접경험을 위한 최고의 도구라고 한다. 세상에 널린 다양한 일을 먼저 경험해본 이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곳이다. 성공하기까지 과정을 접하며 나에게 어떻게 적용할 지를 배우게 된다. 경험만큼 실수를 줄여주는 것도 없다. 하고 싶은 모든 경험을 다 해보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책이 주는 간접 경험으로 필요한 지혜를 배우게 된다. 책에는 다양한 직업이 있었다. 단 돈 100달러 세상을 경험한 이, 직장을 다니며 12개의 직업을 갖고 있다는 이, 돈 한 푼 없이도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는 이, 자신의 경험을 상품화하여 돈을 버는 이, 재능이 필요한 이들에게 재능 있는 이들을 연결시켜주는 이 등 상상하지 못한 다양한 직업이 존재했다. 수 백 명의 경험을 책으로 접했다. 언젠가부터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시도하니 진짜 하고 있었다.
사업자를 내고 온라인 쇼핑몰을 열어 물건을 팔고, 내 경험을 글로 써 많은 사람들에게 드러냈고, 사람들 앞에 내 지식과 경험을 풀어놓는 강연도 하게 되었다. 본업을 하면서 여러 딴 짓을 시도하고 있었다. 지금도 딴 짓은 현재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