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번의 이직으로 깨달은 한 가지
상암동 현장에서 3년 6개월을 보냈다. 직급은 대리가 되어 있었다. 현장관리 업무에서 공무로 직무의 변화도 있었다. 건설업은 하나의 현장이 끝나면 다음으로 어떤 현장을 가게 될지에 따라 능력을 인정받는 시험대가 되기도 한다. 업무 성과에 따라 승진을 하기도 하고, 좀 더 조건이 좋은 현장으로 발령 나기도 한다. 나는 능력 있는 사수를 만난 덕분에 본사에서도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하루는 본사 임원이 나를 보기 위해 현장으로 찾아왔다. 다음 현장에 대한 내용이었다. 단일공종으로 50억 원 규모의 현장에 공무담당자로 보내고 싶다고 했다. 얼떨떨했다. 내 능력으로 가능할지 의심이 들었다. 유능한 소장이 함께 할 거니 좋은 경험이 될 거고 잘하면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될 거라 했다. 다만 집과의 거리가 멀다는 게 걸렸다. 자가용으로 왕복 120km 거리였다. 사수도 좋은 경험이 될 거라며 적극 추천해 주었다. 경력도 전공도 다른 나에게 짧은 기간에 찾아온 기회였다. 도전해 보기로 결정했다.
처음 우려와 달리 출퇴근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정작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부족한 경력과 전공이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하나의 현장을 담당하는 건 대외적으로도 회사를 대표한다는 의미이다. 물론 현장을 총괄하는 소장님이 있지만 실무자를 상대하는 건 내 몫이었다. 실무자의 역량이 회사 이미지와 연결되고, 궁극엔 수익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당시 원도급 사는 S기업이었다. 내가 상대했던 실무자들은 하나같이 어깨에 뭐라도 들어있는 듯 보였다. 그들만의 보이지 않는 자부심 같은 걸 드러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언제나 고압적인 자세였다. 혹여 내가 빈틈이라도 보이면 꼬투리가 되어 내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곤 했다. 이런 고충은 내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었다. 결국 내 역량을 키우는 방법밖에 없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럴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정해진 공사기간 내 준공하지 못하면 계약서에 따라 위약금을 청구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건설업이 휴일도 없이 밤 낮고 없이 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돈을 주는 입장에선 하루라도 늦어지면 그만큼의 비용이 추가로 발생하고, 돈을 받는 입장에선 받는 만큼 의무를 다 해야 하는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인간의 의지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날씨와 주변 여건의 변수로 인해 언제 어떻게 상황이 달라질지 알 수 없다. 이는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영역 밖의 문제일 때가 많다. 한 겨울에 진행된 공사라 눈비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공사 기간이 줄어들수록 마음은 조급해져 갔다. 만에 하나 잘못되더라도 그 책임이 나에게 오는 건 아니다. 회사 차원에서 협의하고 조절하는 게 건설업계의 관행이기도 하다. 그때는 거기까지 알지 못했다. 나에게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못 한 것에 대한 회의 자책이 커져가고 있었다. 이런 나를 옆에서 지켜본 소장님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안심시켰지만 내 의지대로 되지 않았다. 불안이 극에 달하자 도망치고 싶어 졌다. 연락을 끊고 잠수 탔다.
이틀 동안 아무에게도 연락받지 않고 지냈다. 아내에게 말하지 못했다. 출근한다고 나섰고 현장사무실에는 가지 않았다. 무엇이 문제인지 차분하게 생각해봤다. 내 역량에 맞지 않는 현장을 맡은 걸까. 내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시작한 걸까. 시작이 잘못된 거라면 지금 당장 다른 대안이 있나. 답이 없는 의문만 가득했다. 어떤 식으로든 돌파구가 필요했다. 이직이 돌파구가 될 것 같았다. 마음을 정하고 현장사무실로 돌아갔다. 소장님 이하 함께 있는 직원의 걱정과 위로를 받았다. 하지만 마음은 이미 정리한 상태라 조금씩 거리를 두려 했다. 일하는 틈틈이 취업정보를 뒤졌다. 지금 있는 현장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곳을 찾고 싶었다. 세상일이 다 내 맘대로 된다면 바랄 게 없겠지만 만만하지 않은 게 세상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다. 내가 원하는 조건에 맞는 직장은 없었다. 하나를 포기해야 하나를 얻을 수 있었다. 대기업 현장 공무를 얻는 대신 출퇴근을 포기하고 주말부부가 될 수밖에 없었다.
내 선택의 확신은 오래가지 못했다. 옮긴 지 6개월 만에 다시 이직을 결심했다. 이번에도 부족한 경력과 다른 전공은 좋은 핑계가 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 집과 현장이 있는 양평을 오가는 불편함도 핑계로 덧붙였다. 나를 뽑아준 상사는 나의 부족함을 잘 알고 있었다. 함께 일하며 부족한 걸 채울 수 있다면 분명 더 좋은 조건으로 그곳을 떠날 수 있을 거라 조언했었다. 그 말을 들을 땐 꼭 그렇게 되고 싶다는 다짐도 했었다. 그러기 위해 퇴근 후 숙소에서 영어공부에도 매달렸다. 일주일에 두 번 있는 수업에도 늦지 않도록 배려해주기까지 했다. 분명 그들의 선의는 나의 역량을 키울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그리고 그들은 기존의 내 역량을 의심하지 않았다. 어쩌면 큰 기대 없이 채용했을 수도 있다. 그러니 역량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을 할 필요가 없었을 수 있다. 대신 나 스스로 열등감을 키우고 있었다. 그들의 침묵을 나 스스로 해석했다. 한 번 키운 열등감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눈덩이를 굴릴수록 크기가 커지듯 열등감도 주체하지 못할 만큼 커져있었다.
5년 정도 이어진 현장 경험은 적성을 파악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현장 근무는 기술적인 역량이 중요하다. 전문 지식에 기초에 문제 해결 능력과 창의적인 사고를 필요로 한다. 또 다양한 경험을 통해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어야 했다. 결론적으로 나에게 부족한 부분을 필요로 했다. 전공이 다르다 보니 기초 지식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가 부족했다. 모래로 기초를 쌓은 것처럼 언제 무너져도 이상할 게 없는 상태였다. 현장 근무가 적성에 맞지 않으면 본사 근무가 대안이었다. 건설업은 현장과 본사 근무의 업무 색이 분명하다. 현장 근무자에게 본사 근무 발령은 유배나 다름없다. 현장은 행동이 자유롭다는 게 큰 장점 중 하나다. 반대로 본사는 사무실을 벗어나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현장은 공사에 필요한 다양한 자원을 직접 투입하는 동적인 업무라면, 본사는 투입되는 자원의 사용량을 취합하여 발생한 비용을 지급하는 정적인 업무 성격이 강하다. 쉽게 말해 하루 종일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있는 게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차이를 이해할 수 있다면 어느 자리를 가도 적응할 수 있지만 흔하지 만은 않다.
적응 문제를 고민하기 전에 나를 뽑아주는 곳이 있을지 의문이었다. 이력서는 누가 봐도 매력이 없었다. 비전공자, 나이에 비해 짧은 경력, 전문 자격증이 없다는 건 뽑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의미이다. 그래도 자신감을 갖고 누가 봐도 알만한 곳에 이력서를 넣었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안 하는 것보다 해보고 후회하자 주의였다. 대기업은 거의 모두 자체 이력서 양식을 갖고 있어서 10개 업체에 지원하려면 10번의 이력서를 써야 했다. 근무경력, 자기소개서, 경력기술서, 포부, 지원동기 등 요구하는 내용도 다양했다. 이력서를 쓸 때마다 넘지 못할 벽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다른 지원자와 차별될 수 있는 내용이 없었다. 수 십 곳에 지원할 수 있는지만 ‘나’라는 사람은 달라지지 않았다. 없는 경력을 만들어 낼 수도 없었다. 부족한 자질을 꾸며낼 수도 없었다. 변할 수 없는 걸 대체할 수 있는 게 필요했다.
경력사항 보다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는 다른 게 필요했다. 전공을 배우기 위해 학교를 가는 건 시간과 비용 부담이 컸다. 자격증을 따기 위해 수차례 시도했지만 노력이 부족했는지 번번이 떨어졌다. 남은 건 어학성적뿐이라 생각했다. 속성으로 준비하고 운이 따라주면 대부분 기업이 요구하는 토익 700점은 가능할 것 같았다. 시험도 한 달에 한 번 꼴로 치러져 결과를 확인하기 수월했다. 인터넷에 떠도는 족집게 강의, 단기간에 점수를 올릴 수 있도록 진액만 모아 만든 교재 등 쉽고 빠르게 갈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다. 시도는 했지만 성적은 시원찮았다. 시험은 시험대로 준비하고 이력서는 계속 넣고 있었다. 입사 지원을 할수록 눈을 낮출 수밖에 없었다. 당장은 어학점수를 필요로 하지 않는 곳이라 입사할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어디든 들어가 일을 하면서 어학 점수를 올리기로 했다. 생각을 그렇게 하니 내가 선택하는 게 아닌 나를 선택해주는 곳을 찾기 시작했다. 선택을 받기 위해서 가장 쉬운 방법은 경우의 수를 늘리는 것이다. 그때부터 닥치는 대로 입사지원서를 보내기 시작했다. 모집요강도 내 기준에 맞으면 두 번 생각 안 하고 보내고 봤다. 어디든 하나만 걸려라는 식이었다.
식상한 표현이지만 첫 단추가 잘못 꿰지면 바르게 입을 수 없게 된다. 직장을 구하는 것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직원을 한 명 채용하기 위해 적지 않은 비용과 시간을 소요하게 된다. 만약 올바른 검증 없이 뽑은 직원으로 인해 회사는 어떤 악영향을 입을지는 가늠할 수 없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다양한 안전장치를 두는 기업이 많다는 걸 경험하기도 했었다. 가장 대표적인 게 적성 검사다. 직무와 관련된 전문적인 검사를 통해 적합한 인재인지를 걸러내게 된다. 또 심리검사를 통해 면접자의 전반적인 성향을 가늠해 보기도 한다. 이런 검사는 비용이 발생하지만 잘못 뽑은 직원이 입힐 잠재적 피해를 막을 수 있다면 기꺼이 감수할 수 있다고 한다. 적성 검사와 심리검사가 과학적인 접근이라면 사주나 관상, 오너의 개인적인 취향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기업도 적지 않다. 이렇게 신중하게 직원 뽑는 기업이 있는 반면 규모가 작은 기업이나 경영이 악화되어 당장 일할 사람이 없는 경우는 아무나 걸리기 바라는 기업도 적지 않다. 어쩌면 그렇게 취약한 기업들과 나처럼 하나만 걸려라는 식의 지원자끼리 통할 경우 서로 윈윈이지만 이는 서로 불행의 시작일 뿐이다. 9번의 이직 중 3곳의 회사가 이런 식의 입사였다. 3곳 중 2곳은 6개월도 못가 문을 닫게 되었고, 한 곳은 2년 만에 폐업한 경우였다. 결과적으로 경력에 치명적인 오점이 되고 말았다. 고용이 불안하니 공부는 이미 물 건너 간 상태고, 근무 경력이 짧은 건 능력이 검증되지 않는 치명적인 단점이 되고 말았다.
내가 가진 걸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조급하게 판단한 결과 9번의 이직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9번 이직하는 동안 계획했던 것 중 하나도 손에 넣은 게 없었다. 어학 공부도 목표한 점수 근처도 못가 봤고, 직무에 필요한 자격증 시험도 수험표만 잔뜩 쌓이고 말았다. 처음 이직을 준비할 때부터 장기적인 목표를 갖고 계획한 역량을 키운 뒤 느긋한 마음으로 준비했더라면 어땠을까? 한 곳에 오래 근무하며 업무 역량도 키우고 어학공부, 자격증을 차례로 준비했다면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내가 원하는 조건으로 맞춰 갔을 수도 있었을 거다. 결과를 미리 안다면 누구든 잘못된 판단을 하지 않을 거다. 결과를 알 수 없는 게 인생이기에 섣부른 판단으로 험난한 길을 걷기도 한다. 내가 놓쳤던 한 가지는, 더 좋은 결과를 위해 조급해 하기보다 지금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역량에 집중하고 발전시키는 노력을 했더라면 쓸데없는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았을 거란 점이다. 더 나은 직장을 다니고 싶어 애쓴 노력은 나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은 채 늘 같은 자리에서 시작하는 도도리 표 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