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번의 이직으로 깨달은 한 가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안경을 쓰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휩쓸려 학원을 다닐 때였다. 학원 교실은 학교 교실보다 넓었다. 끝자리에 앉으면 칠판 글씨가 잘 안보였다. 거리가 멀어서 그럴 수 있겠다고 짐작했지 눈이 나빠졌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참을 만큼 참다가 안경점을 찾았다. 나빠진 시력에 맞는 안경 도수를 찾는 과정은 신기한 경험이었다. 투박하게 생긴 특수 안경테에 다양한 도수의 렌즈를 끼우며 내 시력에 맞는 도수로 좁혀갔다. 양쪽 눈에 맞는 도수를 찾았다. 여러 검사를 거치고 다양한 조합 뒤에 나에게 맞는 안경을 찾는 건 세상을 선명하게 보기 위한 과정이었다.
한 번 나빠진 눈은 다시 예전의 시력을 회복하기 힘들다. 나빠지기 전에 관리하는 게 최선의 예방이라고 한다. 만약 관리를 해도 나빠진다면 안경을 쓰든가 아니면 수술을 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섣부른 판단으로 15년 동안 9번의 이직을 경험했다. 마치 앞이 뿌옇게 보일 정도의 시력이 된 것 같았다. 보려고 해도 잘 보이지 않듯 더 나은 직장을 갖게 될 희망이 없어 보였다. 40살이 넘으면 찾아주는 곳도 줄어든다는 말을 실감했다. 점점 움츠려 들었다. 그나마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있음을 감사해했다. 서글프게도 감사하고 있다고 해서 인생은 나아지지 않는다. 이전의 실수를 만회하고 다른 인생을 살고 싶다면 달라질 기회를 만들어야 했다. 어쩌면 새 안경을 쓰는 것처럼 시야가 맑아질 수 있는 변화가 필요했다. 변화의 기회는 의외의 곳에서 찾아왔다.
2017년은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해였다. 당시 다니 던 직장은 2년 차로 접어들고 있었다. 여전히 규모가 작은 회사에서 잡무에 시달리고 있었다. 매출은 나아질 기미가 안 보였다. 조직은 활기를 잃은 지 오래였다. 직원들은 10년 이상 장기근속자가 대부분이었다. 새로운 직원의 비율이 적다 는 건 타성에 젖어 희망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평균 연령이 높다 보니 역피라미드 구조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 속에서 내 정체성을 갖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를 쇄신을 위해 외부에서 새로운 사장님을 영입했지만 효과는 더디게 나타났다. 그럴수록 내가 있어야 할 이유를 잃고 있었다. 그렇다고 갈 곳이 있지도 않았다. 하루하루 초점을 잃어가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큰 형의 죽음은 이런 나의 힘을 더 빼앗아 갔다. 늘어질 때로 늘어진 내 모습은 마치 A4 종이 크기의 면적에서 매일 달걀을 낳는 닭과 다르지 않았다. 친구의 위로도, 직장동료의 공감도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늘 마음 한 구석을 불편하게 만들었던 사장님 말씀이 있었다.
“여러분 책을 읽어야 합니다. 앞으로 직장에서 살아남거나 사회에서 인정받기 위해서 책을 읽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역량은 책을 통해 얻을 수 있습니다. 삶의 거의 모든 질문에 답을 얻을 수 있는 건 책뿐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 초상집 같은 회의시간 말미 한결같은 잔소리를 이어갔다. 사장님의 모든 말들은 내 안에 머물지 않고 흘러갔다. 찌꺼기도 남기지 않고 훑고 지나가버렸다. 2017년 12월 31일 그날 그 순간을 경험하기 전까지는 그런 줄 알았다.
최악의 한 해가 마무리되는 마지막 날이었다. 연말 분위기를 낼 기분이 아니었다. 평소보다 조금 일찍 퇴근시켜 준 사장님께 약간의 감사함을 갖고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운전석에 앉으면 몸이 기억하는 대로 차를 몰았다. 집에 다가갈수록 집에 가고 싶지 않았다. 계획하지 않았지만 차를 전자제품 대리점에 주차했다. 구경만 해보자는 마음으로 들어갔다. 털레털레 둘러보는 데 눈에 띄는 게 하나 있었다. 태블릿이었다. 태블릿을 보니 사장님 말씀이 떠올랐다. 수 없이 많은 날을 잔소리로 알고 들었던 책 읽으라는 말이 내 몸속 어딘가에 걸려있었던 것 같았다. 정말 책을 읽으면 내가 궁금해하는 답을 얻을 수 있을까. 내가 되고 싶고 하고 싶은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머리를 채우는 의문을 피하고 싶지 않았다. 최악을 경험한 것 같은 올 해보다 더 떨어질 곳이 있을까. 모든 궁금증에 답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은 없었지만 적어도 손해 볼 일은 없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확신보다 예감을 믿어보기로 했다. 9번을 이직하는 동안 확신에 찬 입사 결정은 없었던 것 같다. 뽑아주고 기회를 주는 게 어디냐며 잘 될 거란 희망만 가졌었다. 결국 절망으로 끝나길 반복했지만 늘 시작할 때 희망을 잃지는 않았던 것 같다.
우리 몸의 세포는 소화 작용에 에너지를 빼앗기지 않을 때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한다. 일정 시간 굶음으로써 오래된 세포를 대체할 건강한 세포가 만들어진다는 의미이다. 기대 없이 읽기 시작한 책은 새로운 세포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몸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었다. 운전하는 시간이 아까워 오디오 북을 들었다. 지하철을 타고 외근을 나가면 기다렸다는 듯 책을 폈다. 남들보다 한 시간 일찍 출근해 아무도 없는 공간을 찾아 읽다 남은 책을 읽어 나갔다. 동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이라면 책을 폈다. 집에서도 예외는 없었다. 저녁을 먹고 나면 책상에 앉아 책을 폈다. 아내의 따가운 눈총을 의식할 틈도 없이 무식하게 읽어나갔다. 6개월 만에 100권을 읽었다. 100권의 책은 흔들리고 있던 나를 서서히 묶고 있었다. 직장에서 존재감을 잃어가던 나 자신을 소중하게 볼 수 있게 해 줬다. 아내와 평행선을 달리던 관계에도 교차점을 찾을 수 있게 해 줬다. 모진 말로 아이들에게 상처만 주던 몹쓸 내 모습을 돌아보게 했고 아이의 존재가치를 깨닫게 해 줬다. 무엇보다 불안하고 불투명했던 미래의 나를 조금씩 선명하게 그릴 수 있는 기회가 있음을 깨닫게 해 줬다. 그렇게 조금씩 책에 기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