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번의 이직으로 깨달은 한 가지
아홉 번의 이직을 경험하면서 단점만 보였다. 경력이 쌓이고 직급이 올라가도 할 수 있는 업무는 달라지지 않았다. 회사를 옮겨도 하는 일은 거기서 거기였다. 건설업 특성상 현장 업무는 여건에 따라 변수도 많아, 주어지는 일의 양과 범위도 제각각이다. 반대로 본사의 경우 관리자 역할이기 때문에 변수도 적고 업무량도 늘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게 된다. 정적인 업무가 적성에 맞지 않으면 오랜 기간 근무하는 게 쉽지 않을 수 있다. 나는 현장에서 일어나는 돌발 상황과 밤낮 없는 근무 조건을 견디지 못해 본사 업무를 선택했었다. 다행히 10여 년 근무기간 동안 정적인 업무가 적성에 맞았고 지금까지 버텨낼 수 있었다. 다만 반복되는 업무로 인해 내 역할의 범위가 모호해지기도 했다. 원치 않는 업무도 해야 했고 잡다한 일까지 감수하는 상황이 많았다. 창의성이 필요하고 매번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직업과 다르게 늘 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면 내가 가진 장점이 무엇인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어쩌면 장점이 없어도 적응만 잘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그런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곳에 오래 머물지도 못했고 경력도 짧고 전공도 다른 나는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홉 번의 이직에도 눈높이를 낮추고 회사만 잘 고르면 그나마 직업을 이어올 수 있지 않았나 생각했다.
어쩌면 운이 따랐기에 아홉 번의 이직도 가능했던 것 같다. 마흔이 넘어서면서 더 이상 운에 기댈 수 없을 것 같았다. 더 나은 직장을 가질 수 있다는 확신도 줄었다. 마음에 드는 직장을 골라갈 수 있을 만큼 탄탄한 커리어를 쌓지도 못했다. 이런 불안은 은퇴를 생각할수록 더 나은 답이 되지 못할 것 같았다. 만약 지금까지 이어온 일을 은퇴할 때까지 하려고 한다면 지금이라도 커리어를 단단히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전까지 과정을 돌이켜보면 이쯤에서 다른 일을 찾는 게 현명한 선택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다른 대안을 찾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다른 대안은 새로운 직업을 갖게 된다는 의미이다. 고등학교 진학 때부터 이 일을 하고 싶어 했다. 물론 중간에 직장을 얻기 위해 전공을 바꾸기는 했지만 직업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일을 할수록 적성을 의심하게 되었지만 생계를 위해 다른 대안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결정을 해야 할 시기라 생각했다. 더 이상 망설일 여유도, 주저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만약 지금 기회를 놓치고 어영부영 은퇴 시기가 되었을 땐 펭귄이 물속으로 뛰어드는 이유도 모른 체 옆 펭귄이 뛰니 덩달아 뛰어드는 것처럼 하고 싶은 일을 정하지 못한 체 생계만을 위해 원하지 않는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될 거라 생각했다.
마흔 중반은 100세 인생을 놓고 봤을 때 중간에도 못 미친다. 빠르면 빠르다고, 늦으면 늦었다고 할 수도 있다. 직장인 대부분이 마흔을 기준으로 새로운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해온 일에 좀 더 전문성을 더해 정년을 채우든가, 해온 일을 뒤로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한다. 두 번째 선택에 앞서 ‘나’를 냉정하게 판단해볼 필요가 있다. 해왔던 일 속에서 새로운 일을 찾을 수도 있다. 해왔던 일에서 답을 찾을 수 없다면 외부에서 찾는 과정이 필요하다. 나는 해왔던 일에서 답을 찾지 못했다. 적성을 고려하기도 전에 먹고살아야 할 문제가 먼저였다. 생존의 문제에 직면해 있는 상황에서 적성은 고려 대상이 아닐 수 있다. 전공이 다른 건 재취업 시 약점이었다. 나이에 비해 경력이 짧은 것 또한 약점이었다. 무엇보다 현장과 본사를 오가며 적정에 맞는 업무를 탐색해 봤지만 결과적으로 나와는 맞지 않았다. 현장에서는 사람을 대할 때 어느 정도 거친 면을 필요로 한다. 각자의 주장이 워낙 강한 사람들이라 이들을 설득하고 아우를 수 있으려면 리더십, 카리스마, 저돌적인 성격을 필요로 한다. 또 본사 업무는 각종 서류 속 숫자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논리적이며 계산에 능하고 창의적인 역량을 필요로 한다. 물론 자질을 키우고 계발하며 환경에 적응하는 노력을 한다면 어느 정도는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시작부터 내 자질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주어진 일에 적응하기 바쁜 시간이었고, 이직 시 진로와 적성에 대해 깊이 고민하기보다 당장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단편적인 결정의 연속이었다. 어쩌면 지난 15년 동안 아홉 번의 이직이 그 답이 아닌가 생각한다.
다양한 직업 중 나에게 맞는 일을 찾는 건 새로운 도전이었다. 해왔던 일 속에서 찾을 수 없다면 눈을 밖으로 돌려보기로 했다. 지금까지의 경력과 경험이 플러스가 될 수 있는 일이면 좋을 것 같았다. 단점보다 장점을 활용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았다. 다행히 이번에도 나는 운이 좋았다. 새로운 직업을 찾는 건 막연해 보일 수 있다. 직장을 다니며 새로운 걸 찾는다는 것도 만만한 일이 아니다. 설령 맘에 드는 일을 찾았다고 해도 일반적인 정보에만 의존해서 결정할 수도 없다. 결정이 신중해야 하는 만큼 깊이 있는 정보와 사전 경험은 선택이 아닌 필수여야 한다. 여러 제약으로 인해 다양한 직업을 직접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기도 어렵다. 경력자의 조언을 구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이런 막연함과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와 경력자의 조언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책을 읽기 시작한 건 새로운 직업, 새로운 도전을 위한 신의 한 수였다.
취업준비생에게 직무정보 제공 서비스를 전문으로 하는 기업으로부터 멘토 요청을 받았다. 내가 몸담았던 직업군의 생생한 실무를 바탕으로 취업준비생이 직무를 이해할 수 있도록 경험을 나누어 달라는 취지였다. 그동안 내 경험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장점보다 단점이 많은 경력이었다. 내 속사정까지 알지 못한 담당자는 멘토의 역할과 취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줬다. 취지를 이해하니 용기내고 싶어 졌다. 단 한 명이라도 내가 경험한 직무를 올바로 이해해 후회 없는 선택을 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무궁한 가능성이 앞에 놓인 그들이 나와 같은 경험자의 생생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면 선택의 만족도가 높아질 거라 생각했다. 예전의 나도 이 같은 기회를 가졌다면 조금은 다른 길을 걷지 않았을까 생각도 들었다. 30페이지 이상의 질문지에 하나하나 답변을 채우며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누군가에게 내 경험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걸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나 또한 책을 통해 직접 겪어 보지 못한 일들을 먼저 경험한 이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내가 접한 이들은 경험이 돈이 된 직업을 갖고 있었다. 처음 이런 내용을 책으로 접했을 땐 생소했고 충격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개념을 상상도 못 해봤기 때문이다. 직업의 고정관념을 깨는 기회였다. 고정관념이 깨지자 내가 할 수 있는 직업의 한계도 사라졌다. 경험이 돈이 될 수 있다는 개념은 우선 장소적 제약이 없음을 의미한다. 내 경험은 상품을 진열하듯 눈에 보이는 게 아니라 공간이 필요하지 않다. 내 경험을 필요로 하는 대상 또한 불특정 다수다. 나를 필요로 하는 이들이 나를 찾게 만드는 브랜딩 전략만 있으면 된다. 브랜딩 또한 쇼핑몰의 상권을 형성하는 구식 방식이 아닌 온라인이라는 강력한 도구를 활용하는 걸로 충분했다. 한마디로 무궁한 가능성을 가진 시장이었다. 또 하나 매력적이었던 건 본업을 갖고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데 있었다.
경험을 판다는 건 내 경험을 통해 이를 필요로 하는 이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는 의미이다. 그들이 불편해하는 것들에 해법을 제시할 수도 있고, 궁금해하는 부분에 답을 줌으로써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새로운 방법을 제시함으로써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러한 사례를 책을 통해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었다. 내 시선이 닿지 않던 곳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형태의 직업을 갖고 있었다. 경험을 팔 수 있다는 건 이전까지 내 경력을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내가 겪은 실패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다면 똑같은 실수를 안 하게 도움을 줄 수 있다. 공유할 수 있는 정보를 어떤 형태로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직업의 형태도 다양해질 수 있다. 텍스트 형태의 책으로 만들어내면 작가가 될 수도 있고, 상대방을 직접 만나 원하는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코칭도 가능하고, 다수의 사람 앞에서 강연의 형태로 정보를 전할 수 있는 강연가로도 활동할 수 있다. 무형의 지식을 토대로 직업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유형의 물건을 온라인을 활용해 판매할 수 있는 방법도 있었다.
인터넷이 활성화되던 초기 온라인 쇼핑은 접근이 쉽지 않았다. 쇼핑 플랫폼은 다품종 대량의 제품을 취급하며 일부 대기업의 전유물이나 다름없었다. 인터넷 속도가 빨라지고 스마트폰이 급속도 보급되면서 계층도 광범위해졌다. 사용자 계층이 넓어지며 요구도 다양해졌다. 천편일률적인 온라인 대형 쇼핑몰에 실증을 느낀 사용자들은 자신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소규모 특화 제품을 선호하기에 이른다. 이런 흐름에 불을 지핀 게 스마트 스토어였다. 2018년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는 기존의 온라인 쇼핑몰의 가장 큰 장벽이었던 판매자의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게 된다. 사업자등록 유무와 상관없이 판매할 제품만 있으면 누구나 입점이 가능한 형태의 온라인 스토어를 만든다. 네이버 자체 검색 로직에 기반한 스토어 운영 방침은 특색 있는 상세페이지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소위 대박 매출도 얼마든 가능했다. 나도 2018년 책에서 배운 내용을 토대로 한 달 정도 준비 후 단 3일 만에 스토어 입점까지 마칠 수 있었다. 납품받을 수 있는 제품과 공급처를 확보하고 제품 상세페이지를 편집해 올린 뒤 매출로까지 이어진 일련의 과정을 경험해 봤다. 이전에 어떤 직업을 가졌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처음 배운 사람도 약간의 시행착오를 통해 얼마든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책을 통해 새로운 직업을 간접 경험했다면 책을 통해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된 건 또 다른 신세계였다. 책에서 얻는 정보 중 깊이 배워보고 싶은 주제는 직접 강의를 듣기도 했다. 부동산 투자 공부, 글쓰기 공부, 독서 모임, 스피치 공부 등 책을 통해 맛만 봤다면 직접 강의를 들으며 깊이를 더할 수 있었다. 직접 강의를 참여하는 또 다른 장점은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나와 같은 관심사를 가진 또 다른 사람을 만나며 다양한 시각을 배우게 된다. 그들 중 독특한 이력, 생소한 직업,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이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 그들을 통해 또 다른 직업의 세계를 접하기도 했다. 보험사 경력을 살려 세상에 없던 무료 보험을 만들어낸 이도 있었고, 업무 편의를 위해 배운 PPT 활용법을 강의로 만들어 수 천만 원의 수익을 만들어낸 이도 있었다.
경주마는 옆 말이 어떻게 달리든 신경 쓰지 않고 결승점만 향해 뛰기 위해 눈가리개를 한다. 15년간 아홉 번의 이직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지 못한 체 앞만 보고 달려온 나 자신은 경주마와 다르지 않았다. 경주마의 시선으로 볼 수 있는 범위는 제한적이다. 만약 책을 펼치지 않았다면 갇힌 시선 속에서 뻔한 결정을 내렸을 수도 있다. 다행히 책이 손에 들려있었고 책을 통해 배운 걸 익히고 활용해 보며 잘할 수 있는 걸 찾아가는 시간을 이어왔다. 그런 노력 덕분에 평생 직업을 갖게 된 건 책 덕분이라 자신 있게 말하고 싶다. 단시간 배워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닌 끊임없이 배우고 익히며 쌓이는 지식과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사람으로 살 수 있다는 건 평생을 흥미와 재미를 잃지 않는 직업이 될 거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