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 간접등을 켜고 시간을 확인한다. 출근 준비를 위해 욕실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부스스한 나와 마주한다. 머리는 흐트러져 있고 눈엔 남은 잠이 간당간당 매달려 있다. 무표정하게 면도를 한다. 양치질로 사력을 다해 매달려 있는 잠을 떼어낸다.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하고 난 뒤 다시 얼굴을 본다. 여전히 무표정하다.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선다. 이른 시간이라 아파트 단지 사이로 난 길에는 사람이 없다. 다들 마스크를 쓰고 있고 주변도 어두워 상대방을 알아보고 힘들다. 마스크로 가려진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하다.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에 선다. 버스에 올라 카드를 갖다 대면 버스기사님이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이 시간이면 버스기사님도 이제 막 하루를 시작했을 거다. 입이 무거울 법한데 먼저 인사를 건네주니 마음이 살짝 동한다. 인사를 받아도 내 입은 무겁기만 하다. 보일락 말락 고개를 까딱이며 자리에 앉는다.
지하철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의자에 앉아 책을 꺼낸다. 승강장을 서성이는 사람들이 무얼 하든 신경 쓰지 않고 손에 든 책에 집중한다. 지하철이 들어오고 빈자리에 앉아 계속 읽는다. 나를 힐끗 쳐다보는 사람도 있고, 손안에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통화를 하는 사람도 있고, 부족한 잠을 자는 사람도 있다. 환승을 위해 통로를 걸어 다른 승강장으로 이동한다. 들어오는 열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뛰는 사람도 있다. 여전히 게임에 빠져 뒤따르는 사람을 신경 쓰지 않는 이도 있다. 다른 열차로 갈아타도 열차 안의 빈자리는 여전하다. 자리에 앉아 또 책을 펴 든다. 드문드문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 사이에 나는 이른 새벽 지하철에서 책 읽는 사람으로 보인다.
사무실로 가기 전 지하철역 근처 커피전문점을 찾는다. 이제 막 문을 열기 시작했다. 나름 단골임을 떠올리며 마스크 속으로 미소를 띠며 인사를 건넨다. 최대한 공손한 말투로 주문을 하고 자리에 앉는다. 커피 거품이 살짝 덮인 아메리카노를 건네받으며 수고에 대한 감사 인사를 전한다. 별다른 일이 없으면 주 5일 출근하듯 이곳을 찾는다. 매일 같은 시간 들어와 같은 커피를 마시고 같은 시간 나가는 걸 봐서 직장인이라 짐작할 수 있다. 두 달 정도 됐지만 특별히 나를 불편하게 했던 적은 없다. 나도 커피 한 잔 마시고 가는 게 전부라 까탈스럽게도 하지 않았다. 매장 주인은 이런 나를 어떻게 볼까?
업무를 시작한다. 견적을 받기 위해 거래처에 전화를 한다. 견적은 나의 필요에 의해 상대방에게 요청하는 행위다. 물론 물건을 사는 입장이라 지나치게 허리를 굽힐 필요는 없다. 그래도 최대한 예의를 갖춰 요구 사항을 전달한다. 상대방도 예의를 다해 상대해 준다. 두어 차례 질문과 답을 주고받으며 견적을 진행한다. 전화는 물론 서류에도 예의를 갖춰 보낸다. 서류 한 귀퉁이에 내 업무를 위해 협조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담아 보낸다. 내가 누군가에게 감사의 인사를 받으면 기분이 좋아지듯 상대방도 그러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격앙된 목소리로 다짜고짜 소리를 지른다. 앞뒤 상황을 잘라먹고 하고 싶은 말만 쏟아내고 있다. '이 사람 뭐지' 속으로 천불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상대가 예의를 갖추지 않으면 나도 그럴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왜 그러는지 파악이 될 때까지 가만히 듣고 있는다. 수긍할 수 있거나 내가 잘못한 거면 사과부터 하고 상대를 진정시킨다. 그렇지 않으면 나도 똑같이 대한다. 미친개에겐 미친개가 답이다. 일단은 들이받고 한 바탕하고 나면 그제야 상대방도 본심을 꺼내놓는다. 나도 그때는 최대한 경청하려고 한다. 사정이 어떠하건 사람이 하는 일이고 중간에 착오가 있을 수도 있고 잘못된 건 바로 잡으면 되기 때문이다. 다만 어떻게 접근하느냐는 그 사람의 자질이나 성향일 수밖에 없다. 다짜고짜 덤벼드는 사람을 성인군자처럼 다 받아줄 그런 깜냥이 나에겐 없다. 그렇게 한 바탕하고 나면 기분이 더럽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래야 나도 나 답게 살 수 있을 테니까.
막 잠에서 깨어난 내 모습, 첫 운행 첫 손님에게 반갑게 건넨 인사를 무뚝뚝하게 슬쩍 외면하던 나, 주변 사람들 신경 쓰지 않고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는 나, 단골로 매일 찾는 커피숍에서 상냥하게 눈인사를 건네 던 나, 일을 위해 공손하게 협조를 구하는 예의 바른 직장인처럼 보이는 나, 이에는 이 눈에는 눈 거칠게 상대와 실랑이를 아무렇지 않게 해 내는 나. 이밖에도 내 안에는 다양한 '나'가 있다. 어느 상황에 놓이든 그에 적절한 행동과 말투를 하게끔 배우고 단련하고 있는 '나'가 있다. 마흔 중반의 직장인은 하나의 모습으로는 살 수 없을 거다. 본래의 내 모습도 있고, 원치 않는 나도 될 수 있어야 하고, 싫어도 싫은 척할 수 없는 나도 있을 거고, 좋아도 좋다고 할 수 없는 나도 있을 거다. 어떤 모습이든 어떻게 보이든 결국 그 뒤엔 '나'가 있다. 겉모습은 겉모습일 뿐이다. 겉모습 뒤에 있는 '나'를 지키고 살고 싶다. 아직 나도 내 안에 어떤 모습이 더 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나'를 잃고 살고 싶지 않다. 어떤 모습을 덧 씌우든 나를 잃고 싶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