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증이 도지다
직장인 3년 차, 매너리즘이 도지다
힘껏 누르고 있던 이석증이 삐져나왔다.
귓속에는 우리 몸의 균형을 잡아주는 미세한 돌이 들어있다. 이 돌을 이석이라고 한다.
여러 원인으로 인해 이 돌이 제 위치에 벗어나면서 어지럼증을 유발한다.
증상이 심하면 서 있지도 못하고 구토를 하기도 한다.
2014년, 처음 증상이 나타났다.
나는 똑바로 걷는다고 생각했지만 몸은 갈지자로 걷고 있었다.
앉으면 주변이 돌았다.
바닥에 누우면 등을 대고 있는 바닥이 거꾸로 일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서있지도, 앉아있지도, 누워있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마치 만취한 사람이 중심을 못 잡고 휘청거리는 것과 같았다.
다음 날, 대형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다.
앞이 보이지 않는 투박하게 생긴 안경을 씌우더니 전동의자에 앉혔다.
전동의자의 등받이 각도가 조금씩 접히며 발은 올라가고 머리는 수평보다 아래에 위치했다.
어지럼 증상이 심해지더니 구토가 나왔다.
의사는 구토가 나올걸 알았는지 의자 밑 검은 쓰레기통에 편하게 하라고 했다.
구토를 하면서도 당혹스러웠다.
누운 체로 고개를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돌릴 때마다 구토가 났다.
검사를 마치고 마주 앉은 의사의 진단은 '이석증'이라고 했다.
물리치료와 약물치료를 하면 좋아질 거라고 했다.
'좋아'진다고 한다.
완치를 목적으로 치료하는 거 아니었나?
좋아진다는 건 완치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언제든 증상이 다시 재발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동안 1년에 한 번 꼴로 가벼운 어지럼증이 있긴 했었다.
약을 먹을 정도로 심한 것 같지 않았고 하루 이틀이면 다시 정상 생활이 가능했었다.
오늘 아침, 침대를 빠져나오는 데 기분이 이상했다.
머리가 묵직했다.
올 것이 온 것 같았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조금씩 눈앞이 화면이 돌고 있다.
눈을 뜨고 있어도, 감고 있어도 속은 메스껍다.
이석증을 유발하는 대표적인 원인은 스트레스다.
'스트레스'
임원과의 차 한잔이 시작이었다.
월요일 오전, 업체와 짧게 미팅을 갖고 다음 장소로 이동 전 차 한잔하자고 했다.
3년 동안 근무하면서 단 둘이 마주 앉은 적은 처음이었다.
임원은 수주영업, 나는 견적서 작성을 담당한다.
임원과 나 사이에서 대표님이 전체를 조율한다.
거의 모든 결정 사항은 두 분의 몫이고, 나는 둘 사이에서 결정된 내용을 따를 뿐이다.
내 의견이 비집고 들어갈 틈도, 이유도 없었다.
아메리카노가 나오자 작정한 듯하고 싶었던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정중하게 조곤조곤 말했지만
결국, 자신이 그동안 공들이며 영업한 일들이 나 때문에 헛일이 되었다는 의미였다.
왜 나 때문이지?
따지지 않고 듣고만 있었다.
같은 내용, 같은 단어, 같은 표현을 반복한다.
1시간 동안 같은 레퍼토리를 네 번은 들은 것 같다.
나한테 할 말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내 귀에 딱지 앉도록 말하는 저의가 뭐지.
흰 티에 김치 국물이 튄 것처럼 하루 종일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직장인의 3년 차 매너리즘이란 게 있다.
한 직장에서 3,6,9년에 한 번씩 매너리즘에 빠진다는 의미이다.
이때 이직률이 높다고 한다.
이때를 극복하면 다음 3년을 버틸 수 있다고 한다.
꽉 찬 3년 차다.
오늘은 반차다.
병원에서 지어주는 약으로 '이석'들을 달래줘야겠다.
반나절 동안 '나'도 달래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