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보다 관종
나는 관종입니다.
'관종'은 내 생각과 말과 행동을 중심으로 타인의 관심을 얻으려는 행위라고 합니다.
관종과 비슷한 말로 '눈치'가 있습니다.
'눈치'는 내 것 없이 그럴듯한 말과 행동으로 타인의 관심을 얻으려는 행위라고 합니다.
둘 다 타인의 관심을 얻기 위한 행위라는 의미는 같습니다.
하지만 둘의 가장 큰 차이는 중심을 어디에 두고 있느냐입니다.
행위의 중심에 나를 두는 게 '관종',
행위의 중심에 내가 없이 그럴듯함만 있는 게 '눈치'인 겁니다.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을 땐 내 글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습니다.
어떤 글을 써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글을 쓴다고 사람들이 읽어줄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또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표현하는 방법도 몰랐습니다.
자신감도 없고, 이해도 부족하고, 주장도 없는 글을 쓰려니 당연히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눈치가 눈치를 낳았던 것 같습니다.
관종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속된 말로 '관심 종자', 관심을 끌고 싶어 하는 일종의 정신 질환이라고만 알고 있었습니다.
여러 책을 통해 관종에 대해 다르게 인식 하게 됐습니다.
내가 쓰는 글에는 내 생각이 담기고,
내 생각을 담으려면 그것에 맞게 행동해야 하고,
그런 행동이 결국 자기 삶의 태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한 편의 글을 쓰려면 내가 얼마나 잘살고 있는지부터 돌아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스스로 당당하고 주관을 갖고 의식한 대로 살면서
그렇게 만들어 낸 생각을 글로 표현하면 다른 사람 눈치 볼 일이 없는 겁니다.
눈치를 안 보면 다른 사람의 불필요한 간섭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관심을 즐길 수 있다는 의미일 겁니다.
내 중심 없이 눈치만 보면 잦은 바람에도 흔들리고 맙니다.
생각한 반응이 안 보이면 당혹스럽습니다.
'내가 뭘 잘못한 거지'
'이런 말을 하면 안 되는 건가?'
자기 생각을 쉽게 바꿔버립니다.
이런 흔들림은 건강한 교류를 만들지 못합니다.
내 안에 중심을 단단히 하면 흔들림을 즐길 수 있습니다.
반응을 즐길 수 있을 겁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인정하면 그만입니다.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고,
왜 틀렸는지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됩니다.
중심이 있는 흔들림은 건강한 교류를 만들 수 있습니다.
자신의 역량으로 타인에게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들일수록 관종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답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눈치'보는 사람의 말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요?
내 생각과 행동에 중심이 있는 사람의 말을 더 신뢰할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건 오롯이 자신의 몫이긴 합니다.
그들이라고 완벽하게 옳다고만 할 수 없습니다.
적어도 눈치 보며 줏대 없는 그들보다는 그나마 낫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글을 잘 써서 관종이 되겠다는 게 아닙니다.
관종이 되면서 내 생각과 행동에 중심을 잡아가고 싶다는 의미입니다.
거창하고 대단한 사람만이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작은 행동, 바른 습관 하나라도 온전히 내 것을 갖고 있다면
그것 자체로 선한 영향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관종이 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지금까지, 지금도, 앞으로도 글을 쓰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점점 건강한 관종이 되어 갈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