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tter 덕분에 딸과의 관계가 부드러워졌다
"학원 숙제는 다 했니?"
"네. 오늘 학원 안 가면 안될까요?"
"숙제도 다 했는데 왜 안가? 보충하는 것 때문에 그래? 그동안 빠진 만큼 보충해주는 건데 고마워해야지."
"그건 그런데. 3시간 씩이나......"
"머리 감고 갈 준비 해. 늦겠다."
"아빠! 학원까지 데려주면 안돼요?"
"안돼! 걸어서 얼마나 걸린다고 차를 타고 간다고 그래."
"......"
찬 바람을 일으키며 욕실로 들어가 버린 큰 딸.
평소 같으면 그런 행동에 잔소리를 늘어놓는 아내의 반응이 달랐다.
"애가 처음으로 부탁한 건데 들어주지 그랬어."
"그래야 하는 타이밍이었나? 그러고 보니 생전 그런 부탁 안 하던 앤 데. 하긴 요즘은 그럴 만도 하겠다."
"그래. 이럴 땐 들어주는 게 맞지. 당신이 잘못했어."
"그래? 어쩌지. 이 분위기 어떻게 풀어야 하지. 당신이 좀 알려줘 봐."
"내가 어떻게 알겠어. 당신이 잘 고민해봐. 좋은 방법이 있을 거 아."
머리를 감고 나온 큰 딸은 여전히 냉랭했다. 머리를 말려주겠다는 아내의 말도 단칼에 거절하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걸 지켜본 나는 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머릿속이 아득했다.
일단 부딪혀보기로 했다.
"머리 다 말렸어? 10분밖에 안 남았네. 아빠가 데려줄게. 얼른 준비해서 가자."
"아니에요. 혼자 갈 거예요."
"아니야 아빠가 데려다줄게. 아빠도 생각이 바뀌었어. 데려다주고 싶어 졌어."
"안 그래도 돼요. 집에 계세요."
"아빠도 너 데려다주고 도서관에 책 반납하러 가려고. 어서 가자."
"......"
큰 딸보다 먼저 챙겨 입고 차키를 들고 집을 나섰다. 주차장에서 차를 빼 아파트 현관 앞에 대기하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으면 그냥 가지는 않을 것 같았다. 아니 그냥 가지 않길 바랐다. 기다리고 있는 나를 모른 척 그냥 가버린다면 나도 그다음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다. 화를 낼 상황이 아니지만 화가 날 것 같았다.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제스처는 다 했다고 생각했다. 이제 큰 딸의 반응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거였다.
엄마와 아빠의 반응에 속상했는지 한바탕 웃고 나오는 것 같았다. 눈물을 훔치며 세워 둔 차 쪽으로 걸어왔다. 다행이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늦었다. 빨리 가자."
큰 딸이 나오길 기다리며 전날 컴백한 BTS의 신곡 'Butter'를 선곡해놨다. 하룻밤 만에 가사를 다 외웠다며 자랑하던 아이였다. 노래가 아이의 마음을 풀어줄 수 있길 바라는 간절함을 담아 틀었다. 큰 딸의 눈치를 보며 1절을 조용히 듣기만 했다.
"유튜브 조회수 1억 넘었어?"
"벌써 넘었죠."
"그래? 대단한데. 곧 빌보드 1위 하겠네. 그래미도 기대할 수 있겠는데."
"당연히 그래야죠. 월요일에 신곡 발표 무대 있는데 9시라 못 봐요."
"아빠가 눈치 없었네. 미안해."
뜬금없이 사과 멘트를 날렸다. 별다른 반응을 보이진 않았지만 받아주는 눈치였다. 학원까지 5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짧은 대화를 주고받았고 차에서 내리는 아이는 한결 가벼워 보였다. 웃으며 작별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며칠 전 아이에게 큰 변화가 왔다. 축하의 꽃다발을 사주는 나에게도 낯선 경험이었다. 두 딸을 키우기 시작하면서 언젠가 맞이할 순간이었다. 아내 덕분에 아이도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감정 기복이 큰 시기였고, 학원까지 데려다 달라는 부탁은 아이도 큰 용기를 냈던 거였다. 다행히 서로의 감정이 상하지 않으며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둘째도 같은 상황을 맞게 될 테고, 그때는 조금 더 눈치 있게 행동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정의 평화를 지킬 수 있도록 적절한 때에 신곡을 발표해준 'BTS'에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Army'는 아니지만 팬으로서 앞으로 흥할 일만 가득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