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윤이에게 일어 난 마법 같은 순간

엄마 아빠는 너를 믿는다

by 김형준

"채윤이는 엄마 아빠 얼마나 믿어?"

"아주 많이 믿지."

"그럼, 엄마 아빠가 시키는 대로 믿고 해 볼래?"

"......."

"엄마 아빠가 말한 대로 해보면 깜짝 놀랄 일이 생길 거야."


둘째 채윤이는 새 학기가 시작되고 매일 등교를 하게 되면서 하루 두 시간씩 돌봄 교실에서 보냈습니다. 1학년 때부터 다녀서 친구도 여럿 있습니다. 문제는 그중 두 친구에게만 유난히 집착한다는 거였습니다. 채윤이는 제니와 석경이랑만 놀고 싶어 합니다. 제니와 석경이는 둘이서 노는 걸 더 좋아했습니다. 둘이 놀다가 지루해지면 그제야 채윤이를 껴주는 식이었습니다. 껴줘도 다 같이 노는 게 아니라 채윤이를 부려먹는 식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눈으로 보지 못해서 어느 정도 인지는 가늠할 수 없습니다. 친구들끼리니 누구 한 명이 조금 서운하게 느낄 수 있는 때도 있겠거니 했습니다. 채윤이가 하루는 저녁밥을 먹으며 그날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다 눈물을 보였습니다. 제니와 석경이 때문에 속상하다는 거였습니다. 그날은 대놓고 자신을 괴롭혔 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어?"

"그냥....."

"선생님한테 이야기했어?"

"아니."

"네가 많이 속상했겠네. 친구들한테 한 번만 더 그러면 엄마가 혼내줄 거라고 이야기해놔. 알았지?"

"네."

상황을 다 듣고 나니 저도 속상했습니다. 당한 아이는 더 속상했을 걸 생각하니 화도 났습니다. 그렇다고 아이들 문제에 섣불리 끼어드는 건 아니라 생각했습니다. 일단 돌봄 선생님께 상황을 설명하고, 관심을 좀 더 가져주길 바랐습니다. 채윤이 스스로 이겨내길 바라면서요.


"이번 주는 엄마랑 함께 학교 가는 거다. 엄마가 데려다줄 테니 제니랑 석경이랑은 당분간 같이 가지 마."

"연락 와도 같이 안 간다고 해?"

"그래. 연락 와도 엄마랑 같이 간다고 이야기해."

지난 목요일 등굣길에 사건이 터졌습니다.

엄마와 등교하던 채윤이 앞으로 멀찍이 석경이가 보였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채윤이는 엄마손을 이끌며 따라가자고 했습니다. 엄마는 그러지 말라고 했지만 채윤이는 이미 석경이에게 뛰어가고 있었습니다.

"석경아 같이 가자."

"아! 모르는 사람이 나를 쫓아온다. 도망가자!"

채윤이가 따라가자 석경이도 뛰기 시작했습니다.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석경이가 학교 안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눈앞에서 석경이가 가 버리자 채윤이는 당황했습니다. 뒤에 오는 엄마를 보며 어찌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속상한 마음이 들어 엄마에게 달려가 학교 가기 싫다고 합니다. 그 상황을 다 지켜본 엄마도 속상했지만 아이를 달래 학교로 들여보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도 이런 일이 있었다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글로도 아이의 속상했을 마음이 전해졌습니다.


다음 날 채윤이 건강검진을 위해 반차를 냈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생각해 봤습니다. 채윤이에게 어떤 말이 필요할지 고민했습니다. 일부러 1시간 일찍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차를 세워두고 근처 아이스크림 가게로 갔습니다. 베리베리 스트로베리를 먹으며 채윤이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아빠 믿고 시키는 대로 해봐. 아마 제니와 석경이가 먼저 채윤이를 찾아올 거야. 그땐 채윤이가 하고 싶은 대로 선택하면 돼. 함께 놀아도 되고, 다른 친구랑 놀아도 돼."

시키는 대로 해보겠다고 대답은 했지만 눈은 떨리고 있었습니다. 저도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돌봄에서 별일 없었어?"

"지수하고 놀고 있었는데 제니랑 석경이가 함께 놀자고 해서 놀았어."

"그랬어? 제니랑 석경이가 먼저 그랬어?"

"어. 그리고 같이 노는데 석경이가 나한테 내가 싫어하는 장난감 갖고 놀라고 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싫다고 했어. 나는 이거 안 할 거니까 나한테 시키지 말라고 말했어."

"정말? 그랬더니 뭐래?"

"알았다고 하면서 그냥 놀더라고."

예전 같으면 제니와 석경이는 채윤이가 자신들의 뜻대로 따라주는 걸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그 과정에 채윤이가 크고 작게 상처를 받았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채윤이는 더 이상 이전의 채윤이가 아니었습니다.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했고 눈치 보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했던 겁니다. 그리고 다른 친구와도 더 잘 놀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채윤이의 말만 전해 들어서 정확히 어떤 상황인지 짐작만 가지만 분명한 건 이제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모든 처음이 어렵다고 했습니다. 두 친구들 틈에서 둘을 너무 좋아해 이리저리 끌려다니길 선택했었다면,

이제는 둘 만이 아닌 다른 친구들과 노는 걸 스스로 선택했다는 겁니다. 이 일을 시작으로 좀 더 단단한 채윤이가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적어도 그 상황에선 엄마 아빠의 역할은 다 했으니 이제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길 바라봅니다.

"내 딸 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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