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형의 사진들

by 김형준

큰형은 누구보다 사진에 진심이었다.

마흔이 넘어서야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게 되었고,

그렇게 찾은 게 사진이었다.

몇십만 원의 월급에도 사진 기술을 배울 수 있다며 몇 년을 버티기도 했다.

배운 기술은 자기 안에만 담아두지 않았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기회가 생기면 기꺼이 나누었다.

누구나 더 나은 사진을 찍길 바라며 그간 배운 걸 자신의 블로그에 상세히 적어놓기도 했다.


수학여행,

돌잔치,

결혼식,

각종 행사 등

그들의 인생에 다시 안 순간을 카메라로 담아주었다.

주말도 없이 하루 몇 건의 촬영에도 들뜬 기분을

간직한 채 진심을 다했다.

곁에서 지켜본 나는 그렇게 느꼈다.

해야 하는 일이 아닌

하고 싶은 일을 했다.


때론 이해가 안 됐다.

마흔 넘어 결혼도 안 하고

반듯한 직장도 아니고

생활비도 안 될 월급을 받으며

어머니에게 의지한 삶.


이해하지 못했지만 반대하진 않았다.

그런 삶을 사는 건

오롯이 큰형과 어머니의 선택이다.

장남을 잘 챙기지 못한 죄책감에 평생을 산 어머니.

죄책감을 에너지로 큰아들이 바라는 걸 다 해주려고 했다.

그런 어머니의 기대를 번번이 져버린 삶을 산 큰형.

밖에서 만 바라본 나는 늘 못마땅했다.

하지만

사진 찍는 일에 진심이 큰형을 보면서

이제야 제 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았다.


평생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 줄 알았던 큰형이

어느 날 말없이 떠났다.

영원히.


떠나고 얼마 뒤

카카오 스토리에 올라가 있던

1,800 장의 사진을 내 스마트폰에 다운로드하여놨다.

4년 넘게 저장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음악에 진심인 조카가 있다.

어려서부터 여러 악기를 다루며 음악을 배웠다.

중학생이 되면서 베이스로 밴드 멤버가 되었다.

교회에서

학교에서

각종 행사에서

이름을 알렸다.

실력도 하루가 다르게 나아졌다.

이름만 대도 아는 예술고등학교 두 곳에 당당히 합격했을 정도로 누가 봐도 인정받는 실력을 다져가고 있다.

매일 연습, 레슨으로 이어지는 일정 속에서

틈틈이 곡을 만든다.

만든 곡이 반응이 나쁘지 않다고 한다.

최근에 만든 발라드 곡이 있는데

앨범 표지에 쓸 사진이 마땅한 게 없다며 물어왔다.

저장되어 있던 큰형 사진 중 몇 장을 추천했다.

마음에 들어 한다.

고른 사진에 곡 제목을 입혀 보여줬다.

만족해하며 곡을 등록했다.

묻혀 있던 큰형 사진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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