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

먹을 땐 즐겁게

by 김형준

5시 59분 39초, 지문 인식기에 퇴근 인증을 남기고 사무실을 나섰다. 횡단보도 앞에 서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교차로에 멈춰 있는 이사님 차가 보인다. 보행신호로 바뀌자 이사님 차로 가서 우산 하나를 빼앗듯 빌렸다. 덕분에 퇴근길에 비 맞을 걱정을 덜었다. 지하철을 타고 영등포역에서 내려 버스로 환승했다. 버스에 탈 때까지는 비가 안 왔다. 한 시간 남짓 달리는 동안 비는 오락가락했다. 8시쯤 버스에서 내렸다. 비가 온다.

빌린 우산 덕분에 집까지 비 맞지 않고 갈 수 있었다.


현관문을 열자 구운 생선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이 시간이면 저녁 밥상이 거의 준비된다. TV 앞에 아이들이 안 보인다. 거의 매일 집에 들어섰을 때 제일 먼저 마주하는 건 둘째가 TV 앞에 있는 모습이었다. 큰 딸도 보이지 않는다. 아내에게 물으니, 둘 다 각자의 친구 집에 갔다고 한다. 저녁밥까지 먹고 올 거란다. 그래서 내가 먹을 밥과 반찬을 차려주고 자신은 라면을 먹겠다며 물을 끓이고 있었다. 아내는 라면을 좋아한다. 신라면에 청양고추를 곁들여 먹는 걸 즐긴다. 아이들이 있으면 라면 먹을 엄두도 못 내고, 설령 끊인다고 해도 한 젓가락만 외치며 들러붙기 일수였다. 두 딸이 없는 틈에 라면에 집중하며 온전히 즐기려 했다.


끓는 물 옆에 라면 한 봉지가 보인다. 식탁에는 노릇하게 구운 조기 한 마리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라면을 끓일 냄비 옆으로 미역국이 한 솥 끊여져 있다. 냉장고에는 반찬 몇 가지가 있다. 갈등이 시작됐다. 아내와 함께 라면을 먹을 것인가, 나는 밥을 아내는 라면을 따로 또 같이 먹을 것인가? 라면을 먹는 아내를 바라보고 있는 내가 상상된다. 나는 아내의 라면을 탐하고 있다. 한 입은 밥과 반찬을 먹고 다른 한 입으로 라면을 건져 먹고 있는 내가 보인다. 입에 들어간 라면을 씹고 음미하며 더 큰 희열에 젖고 있다. 파맛이 우러나고 달걀이 풀린 칼칼한 국물은 입맛을 돋우고도 남을 것이다. 입꼬리가 올라가면서 냄비에 물을 붓고 있다. 아내도 라면 한 봉지를 더 꺼내놓는다. 끊기 시작한 물에 건더기 수프와 분말수프를 넣는다. 달걀 2개를 꺼내 놓는다. 파 몸통 한 줄기를 총총 썬다. 국물이 끊기 시작하자 면을 넣는다. 하나는 온전하게, 하나는 반을 갈라 넣는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쫄깃한 식감을 더하기 위해 끊는 내내 면발을 국물 밖으로 꺼냈다 넣기를 반복한다. 일종의 담금질이다. 끊는 면을 건져내며 차가운 공기를 만나게 해 주면 면발이 탱탱해진다고 들었다. 면이 반쯤 익었을 때 달걀을 넣어준다. 국물에 고소함을 더하고 싶으면 달걀을 풀어준다. 고소함이 더해지면서 본래의 매운맛이 약간 덜한 효과가 있다. 매콤한 국물 그대로 맛보고 싶으면 달걀 풀지 않는다. 우리는 반반이다. 달걀의 노른자는 원형을 유지하고 흰자는 반 정도 풀어준다. 매운맛을 못 먹는 나와, 매운맛을 즐기는 아내의 입맛을 동시에 만족시키기 위한 나름의 방법이다. 총총 썬 파는 불을 끄기 30초 전에 넣어준다. 파를 먼저 넣고 끓이면 파향과 맛을 못 느낀다. 어릴 때 아버지가 라면을 끓여주면 파를 한 움큼 넣어준다. 파 맛을 모를 때라 설익은 파를 씹어 삼키는 게 고역이었다. 질긴 식감 탓에 씹다가 헛구역질을 하기도 했다. 지금은 거의 모든 음식에 파를 넣어 먹는다. 맛도 맛이지만 향을 내기 위해서다. 아이들에겐 여전히 기피 식품 중 하나이긴 하다.


라면과 김치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아이들의 방해 없이 오붓하게 먹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서두르지 않고 면과 국물 맛을 음미했다. 라면 한 젓가락에 배추김치 한 조각. 밥 한 숟가락에 국물 한 모금 갓김치 한 조각. 아이들과 먹을 땐 아이들 이야기를 듣는다. 오랜만에 아내와 내 이야기가 반찬으로 곁들여진다. 냉장고에서 나올 때만을 기다리고 있는 두꺼비 한 병이 있었지만 양심상 꺼내지 못했다. 라면에 두꺼비까지 먹는 건 평일 저녁 식단 치고는 과하기 때문이다. 라면에 밥을 말아먹는 것까지만 허락했다. 그렇게 호로록 먹고 나니 안 먹었으면 어쩔 뻔했을까 싶었다. 늘 먹던 익숙한 맛이 더 무서운 법이다. 배가 불러도 TV에서 아는 맛을 먹는 모습을 보면 또 먹고 싶어 진다. 그때 그 유혹을 참지 못해 야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나도 한때 그랬었다. 인생에서 먹는 즐거움을 빼면 낙이 없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싶을 때 먹는 건 삶을 풍성하게 해 준다. 다만 건강도 챙길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을 테다.


11개월째 식단관리를 해오고 있다. 라면, 빵 같은 밀가루 음식은 언제나 내 의지를 약하게 만든다. 이런 것들은 언제 어디서든 손이 닿는 곳에 있다. 먹지 말아야 한다고 의지를 다지면 스트레스가 되기 십상이다. 식단관리는 건강을 위해서지 스트레스를 받기 위한 게 아니다. 완벽하게 차단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혼자 살지 않는 이상은 불가능하다. 또 적당히 타협해야 삶의 즐거움도 놓치지 않을 수 있다. 합리화라고 말할 수 있지만 나는 지혜라고 말하고 싶다. 버티기만 하다가는 부러질 수 있다. 부러지면 원래대로 붙이지 못한다. 휘어지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다. 중요한 건 원칙을 잃지 않는 선에서 적당한 타협이 어쩌면 의지를 굳건히 하는 또 다른 방법이라 생각한다. 식단관리든 자기 계발이든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게 아니다. 오롯이 나 자신을 위해야 한다. 남들이 만들어 놓은 방법만 따라가다 내 가랑이 찢어지고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스스로 정한 원칙만 지킬 수 있다면 방법은 달라도 문제 되지 않는다. 가까운 예로 새벽 기상을 들 수 있다. 새벽 기상의 본래 목적은 하루 중 자기를 위한 시간을 만드는 것이다. 그게 꼭 새벽일 필요는 없다. 사람들이 새벽 시간을 추천하는 건 하루 중 외부 자극이 가장 적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억지로 잠을 줄이고 건강을 해치며 자기 시간을 만드는 게 과연 나를 위한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자기 시간을 만들 수 있다면 하루 중 언제라도 상관없다. 시간도 양보다는 질이다. 같은 30분도 얼마나 밀도 있게 쓸 수 있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그러니 적은 시간이라도 자신에게 최대한 집중할 수 있으면 그게 바로 새벽 기상이 되는 것이다.

이 달에만 라면을 두 번 먹었다. 다음 달은 라면 없다. 다신 한 번 식단관리에 의지를 다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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