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을 시작하는 친구에게
새로운 도전을 응원한다
밤늦게 고등학교 동창 단톡방에 메시지가 올라왔다.
'40 중반 넘어 새로운 도전을 한다네.
중국 원자재 수입 업무와 국내 생상 제품 수출 등등(중략)
코 시국에 얼굴은 못 보더라고 응원해 주시게.'
친구 C와는 사연이 많았다. 20대부터 최근까지 여러 일을 겪었다. 서로에게 상처도 줬고, 그로 인해 내가 피해를 입기도 했었고, 갈 곳 없던 나를 재워주기도 했었다. 직장보다 사업이 적성에 맞는 친구였다. 검도를 잘해 십수 년 관장으로 체육관을 운영하기도 했었다. 체육관을 이전할 때면 나를 찾곤 했다. 도와줄 사람이 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친구는 많았지만 선뜻 편하게 만날 수 있는 그런 성격은 아니었다. 동창들 사이에서도 워낙 직설적이라 이런 성격과 안 맞는 친구는 거리를 두었던 것 같다. 반대로 의리 빼면 시체라 친구들 경조사는 빼놓지 않고 앞장섰다.
고등학교 졸업 후 최근까지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는 몇 안 되는 친구다. 내 업무와 관련 있는 분야라며 궁금한 걸 곧잘 묻곤 했다. 대부분 영양가는 없었지만 제일 먼저 나를 찾아주는 게 때론 고맙기도 했다. 내가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말이다. 줄곤 사업을 해온 터라 아이템이 수시로 바꿨던 것 같다. 체육관을 시작으로 보험 영업, 자동차 출장 세차 등 내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은 걸로 알고 있다. 나름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덕분에 결혼도 늦었고, 작년에 둘째를 낳으면 좀 더 안정적인 생활이 필요할 것 같다고 했었다. 아마 그 연장선으로 이번 사업을 시작하는 게 아닐까 짐작됐다.
'40 중반' 나는 지금이 새로운 도전을 하기 좋은 나이라 생각한다. 마흔 살 초반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직장을 다닐 수 있는 동안 최대한 기반을 다져놓고 먹을거리를 만들어 놓고 은퇴를 하는 게 최선의 코스라 여겼다. 그래야 그나마 안정된 노후가 보장될 거란 막 연하 기대를 갖고 있었다. 정작 그 나이가 되어보지도 않고 그렇게 막연히 믿고만 있었다. 그때는 아는 게 없어 생각도 딱 거기까지만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많이 다르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다른 직업을, 노후를 책임 질 새로운 직업을 갖기로 시도하면서 생각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시도하기 위해 제일 먼저 해야 할 건 생각의 틀을 바꾸는 것이었다. 막연히 때를 기다리고 있기보다 당장이라도 시도하는 게 현명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결과를 예측하고 과정의 막연한 불안감만 생각하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결과는 예측하는 게 아니라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었다. 과정의 불안감은 내 노력으로 얼마든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그러니 막연함으로 주저하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하며 과정에 충실해보는 게 실패를 줄이는 방법인 것이다. 내가 뒤늦게 깨달은 이런 이치를 이 친구는 미리 깨달았을 수 있다. 늘 주저 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는 걸 보면 이미 그걸 알았던 거라 생각 든다.
늘 새로운 시작을 할 때면 한결같은 믿음을 가질 수 있었던 친구였다. 자신의 선택에 늘 확신을 갖고 있었다. 이제 또 다른 시작을 한다는 친구의 몇 줄 문자를 보며 또 한 번 믿음이 새겨졌다. 젊음의 치기보다 중년의 노련함이 베어날 거라 믿는다. 한 가정의 가장, 한 여자의 남자, 두 아이의 아빠에서 이제 새로운 사업체의 대표로서 걸어갈 길에 순풍만 불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