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하는 건 접어두기로
오해로 넘어가는 문턱은 낮고, 이해로 넘어오는 문턱은 높습니다.
≪당신이 숨기고 있는 것들≫ 정도언
고등학교 3학년, 졸업을 앞두고 취업과 대학 진학으로 진로가 나뉘었다. 취업을 나간 친구는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진학을 준비하는 친구는 입시 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일상을 보내다 한 번씩 학교에서 호출을 받는 날이 있다. 졸업이 얼마 남지 않은 때라 그 한 번의 만남이 소중했다. 고등학교 입학 후 졸업까지 줄곧 한 반에서 3년을 같이 보낸다. 집에 있는 시간을 제외하면 가장 오래 함께 하는 사이다. 정이 안 들래야 안 들 수 없었다. 입학 후 처음 며칠은 어색했다. 잠시 서로를 탐색하는 시간을 갖는다. 탐색 이후 경계의 빗장이 풀리면 언제 그랬냐는 듯 죽고 못 사는 사이가 된다. 같은 반 54명이 모두 똑같이 친할 수는 없지만, 그 사이에서도 유난히 친하고 정이 가는 친구들이 있기 마련이다. 마음이 통하는 친구 따로, 취미가 맞는 친구 따로, 내 말을 잘 들어주는 친구 따로 각각의 상황에 따라 죽이 맞는 친구가 있었다. 그러니 함께 있는 시간이 지루할 틈이 없었다. 간혹 어울리지 못하는 친구도 있다. 자신의 세계관이 뚜렷해 많은 친구를 사귀지 않는다. 붙임성이 좋은 친구가 먼저 손을 내밀어 보지만 선뜻 잡지 않는다. 그런 친구도 죽이 맞는 친구가 있기 마련이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우정을 쌓는다. 그렇게 따로 또 같이 어울리며 3년을 하루 같이 보냈다.
입학 후 처음 몇 달은 간혹 다툼도 있다. 서로의 성격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마찰이다. 큰 싸움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이내 더 가까운 사이가 되기도 한다. 잘잘한 싸움을 끊이지 않고 이어가는 친구도 있다. 쓸데없는 자존심만 강해 쓸모없는 감정의 날을 세우는 친구다. 티격태격하면서 잔정이 들기도 한다. 다툼은 서로를 이해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각자의 다름을 드러내고 상대방의 다름을 이해해 가는 과정이다. 자주 다툴수록 이해의 폭이 깊어지는 건 당연했다. 나는 성격이 강하지 않다. 주로 상대방의 말을 듣는 편이다. 내 의견과 달라도 쉽게 드러내지 않았다. 속으로 삭이고 만다. 굳이 끄집어내 다툼의 단초가 되는 걸 싫어했다. 나를 공격하지 않으면 나도 공격하지 않는다. 웬만한 공격은 그냥 넘기고 만다. 그랬던 나도 한 친구와 날 선 싸움이 있었다. 1학년, 학교 곳곳에 장미꽃이 활짝 폈을 때였다. 하굣길 버스를 타러 가면서 생긴 일이었다. 심각한 질문은 아니었지만 상대적으로 퉁명스럽게 답하는 그 순간의 친구 모습이 꼴 보기 싫었다. 나도 같이 쏘아붙이며 말다툼이 시작됐다. 몸싸움까지는 아니었지만 말을 할수록 감정이 격해졌고 주변 친구의 중재로 상황은 마무리되었다. 친구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그 친구 거친 욕을 내뱉은 것도 아니었다. 나도 다툼이 생긴 그 순간 친구의 행동이 거슬렸던 것뿐이었다. 다음날 교실에서 마주쳤지만 모른 척했다. 전날의 앙금이 남아 있었다. 먼저 사과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외면할수록 친구도 나를 모른 척했다. 이틀 사흘 한 달이 가도 둘 사이는 침묵이 가로놓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 싸웠던 이유는 이미 잊었다. 먼저 말을 걸면 안 된다면 자존심만 남았다. 다시 한 달 두 달 육 개월이 흘렀고 결국, 2년 반을 한 마디도 안 하며 지냈다. 그러는 동안 서로를 의식하며 피해서였는지 옆자리에 앉는 일도 없었다. 언제나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로를 외면하는 척하고 있었다.
"그때 우리가 왜 그랬는지 기억나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그런데도 3년 가까이 말 안 하고 지낸 너나 나나 참 대단하다."
졸업을 앞둔 마지막 학기에는 학교를 안 갔다. 현장 실습을 위해 취업을 했다. 취업 나간 회사를 잘 다니고 있는지 한 달에 한 번 확인서를 들고 학교를 방문했다. 매일 봐서 식상했던 친구들을 한 달에 한 번 보니 시들었던 꽃에 물을 뿌린 것처럼 생기를 되찾았다. 한 달 동안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친구들과 풀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효과는 대단했다. 데면데면했던 친구도 그때만큼은 친한 척하는 게 용서됐다. 그런 분위기에 휩쓸리다 보니 2년 반을 서로 모른 척했던 친구와도 자연스레 안부를 묻게 되었다. 반가움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말을 텄다. 정작 왜 싸웠는지 잊힌 체 침묵에 익숙해져 외면했던 그 시간들이 아까웠다. 그때 만약 둘 중 아무나 먼저 말을 걸었다면 긴 시간 침묵할 일은 없었을 거였다. 괜한 자존심과 속 좁은 행동 탓에 2년 반 동안 만들 수 있는 추억을 홀라당 날려 버린 꼴이었다. 이유가 있어서 싫어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싫은 이유도 잊은 체 멀어진 사람도 있다. 이유가 있건 없건 입을 닫고 있는 건 빨랫감을 잔뜩 쌓아놓고 있는 것과 같다. 입은 옷 깨끗하게 빨아야 새 옷처럼 입을 수 있다. 입은 옷을 빨지 않으면 퀴퀴한 냄새가 나고 옷감도 빨리 상한다. 다툼이 있는 그때 서로의 감정을 솔직하게 꺼내고 털어내야 안 빤 옷에서 나는 그런 꼬릿 한 냄새가 안 난다. 오해로 시작된 다툼은 솔직한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 침묵은 오해의 벽을 견고히 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