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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Nov 07. 2021

좋은 말이라고 다 좋은 건 아니다

아이고 ARMY야!

"아우 씨! 계정 정지당했네. 내가 뭘 잘못했다고, 걔네들은 똑바로 안 하면서 왜 팬들한테만 난리야."

보민이가 스마트폰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뜬금없이 내뱉은 말이다. 

"왜? 무슨 일 있어? 정지는 뭐고?"

"Army 팬 사이트에 글 올렸더니 계정 정지당했어." 

"무슨 글을 올렸는데 정지까지 당하니?" 사이트 관리자가 활동 정지 제재를 가했다는 건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의미 같았다.

"아니 그게 아니고, 방탄 스텝들이 멤버 관리를 엉망으로 하고 있잖아. 멤버들이 싫어하는 일만 시키고."

"그건 그쪽 사정이지. 그렇다고 정지를 당할 정도로 글을 올리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요즘 온라인에 악의적인 글 올렸다가 고소당하는 사람 못 봤니? 함부로 그러지 마라!"

"엄마 아빠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래!"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자기 방에 들어가 버렸다. 앞 뒤 사정을 정확히 알아보지 않고 걱정스러운 마음에 꼰대 같은 말만 했던 것 같다. 무슨 일인지 알아야 할 것 같았다. 방에 있는 보민이를 조심스럽게 불렀다.

"엄마 아빠는 뜬금없이 계정 정지당했다는 소리에 놀라기도 해서 그랬던 거야. 어떤 글을 올렸는지 보여줄 수 있을까?" 한 페이지 분량의 글 안에는 오랫동안 BTS 멤버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취지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 중에서 보민이가 직접 확인한 게 몇 개 정도 될까?" 하나하나 다시 읽어보더니,

"열 가지는 되는 것 같은데." 

"많네, 화가 날만 하겠네. 근데 그거 아니, 소속사에서는 이런 글 올리는 팬을 어떻게 생각할까? 좋은 팬? 나쁜 팬?"

"왜! ARMY면 이 정도는 할 수 있는 거 아냐, 사실을 적은 것뿐인데 뭘."

"그래 맞아. 팬이면 좋아하는 가수가 부당한 대우받는 걸 가만히 보고 있으면 안 되는 게 맞아. 근데 조금 냉정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 BTS는 소속사와 계약을 맺고 활동하는 가수잖아, 얼마 전에 '인 더 숲'도 봐서 알잖아, 그네들의 휴가도 하나의 상품처럼 기획해서 TV 프로그램이 된다는 거." 

보민이가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의아했다. 내가 알고 있는 기업 논리에서 보면 BTS는 철저히 기획된 하나의 상품이다. 또 그에 따른 다양한 파생 상품 또한 기업 이윤을 극대화시키는 도구일 뿐이라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팬이 보는 멤버의 부당한 처우가 못마땅할 수 있다. 전 세계인을 상대로 다양한 영리 활동을 하다 보면 불만이 안 생길 수는 없다. 팬과 소속사 중간에서 사적인 이득을 취하기 위해 악의적인 활동을 하는 이들도 분명 있을 거다. 일부 팬들은 이런 악의적인 사람들로 인해 피해를 본다고도 했다. 


"이 글 내용처럼 팬도 멤버도 소속사의 부당한 대우로 피해를 본다면 팬들이 가만히 있으면 더더욱 안 되겠지. 그런 행동도 어쩌면 순수한 팬심일 거야. 정말 좋아하지 않으면 그렇게 못할 테니까. 그런데 만약 소속사에서 그런 악의적인 글을 계속 올리는 사람들 중 몇몇을 고소한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소속사 입장에서 악의적인 글로 인해 BTS의 이미지가 떨어진다고 판단하고 이를 두고 볼 수 없어서라고 합리화하겠지. 그렇게 됐을 때 BTS는 어느 편에 설까? 소속사? ARMY? 정말 운이 없어서 보민이가 고소를 당했다면 뷔가 앞장서서 도와줄까?"

"......."

"아빠가 조금 극단적으로 예를 들었는데, 그럴 일은 없어야겠지. 아빠가 하고 싶은 말은 팬으로서 가수를 걱정하는 건 당연한 거야. 하지만 선을 지켰으면 하는 거지.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듣는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 보민이는 순수한 팬심으로 멤버들이 좀 더 나은 대우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의미인 건 알겠어, 근데 소속사에서는 같은 말도 다르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게 문제인 것 같아. 아까 말했듯이 그네들은 기업이고, 기업은 돈을 버는 게 목적이고, BTS는 소속사와 계약된 가수이니 말이야."


처음보다 많이 진정된 눈치다. 내 말을 받아들이는 것 같기도 하다. 마음이 누그러졌는지 앞에 놓인 과자 한 봉지를 다 먹었다. 나는 연예인을 극성맞게 좋아해 본 적 없었다. 그때는 요즘처럼 인터넷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도구도 없었을 때였다. 극성팬은 집으로 소속사로 공연장으로 쫓아다니는 게 최선이었다. 도가 지나친 팬은 허락 없이 담을 넘기도 했었다. 그때는 그렇게 눈에 보이는 팬만 조심하고 해결(?)하면 됐었다. 하지만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는 팬심이 더 무서워진 세상이다. 소속사도 그때보다 팬을 상대하는 게 보통일이 아닐 거다. 보이지 않는 실체와 싸운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때와 지금, 방법은 변했어도 변하지 않는 건 소속사의 태도일 거다. 자신들이 관리하는 연예인이 일부 팬의 악의적으로 보이는 활동으로 인해 피해를 본다고 생각하면 당연히 팬을 적으로 세울 수밖에 없다. 소속사 연예인을 지키는 게 먼저일 테니 말이다. 이윤이 목적인 그들의 논리는 소비자보다 상품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번 일이 보민이에게 어떤 의미일지 잘은 모르겠다. 바람이 있다면 팬심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고민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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